제6과 죽음에 관한진리-(3))
예수진리, 잭 카트렐 (태광출판사, 1986) 59~65
Ⅱ.죽음은 원수이다.
사람이 죽을 때 그가 자연히 오는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의 생각을 사로잡는 낯선 공격자로 부터 공격을 당하고 압도된 것이다. 그는(적어도 잠시나마) 그의 잔인한 적인 죽음에게 넘겨진 것이다. 죽음을 원수로 두려워할, 싸워야 할, 정복해야 할 원수로 생각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
히브리서2:14~15는 사탄을 “죽음의 권세”와 죽음 그 자체를 가진 자로서,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는 체포자로서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16:18에서 예수님은 교회를 사망의 맹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피난처와 견고한 성으로 묘사하신다.(여기서 죽음의 장소인 “음부의 문들”은 그 희생자들을 장악하는 사망의 권세를 상정한다)고린도전서15:25~26은 마지막 부활에 의해 멸망 받을 “최후의 원수”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죽음을 “친구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런 것에 대해 흐뭇해 하거나 무관심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죽음의 망상은 두려운 것” 이란 글을 쓴 그리스도교 편집자에게 동의 할 수 없다. 그는 죽음은 인간들이 연상 시키는 그 공포를 절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죽음은 “은혜로운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관한 인용은(시편23:4) 죽음이 단지 그림자, 망상, “실존하지 않는 허깨비”임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의 일부이기때문에, 또 죽음은 최후 심판의 전주곡이기 때문에(히9:27) 죄인들이 마땅히 죽음을 두려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명료하게 만든다. 결국 “죽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무서운 것이다”(히10:31)
많은 현세의 운동들은 사탄의 영감아래서, 죽음은 자연적인 것이며, 심지어 그것은 아름답고, 친밀한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을 확신 시키기 위해 과외 작업을 하고 있다. 진화론은 이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신비학(Occultism ) 역시 이 메시지를 설교하고 있으며, 특히 영주의(spiritism )의 형태에서 그러하다. 영주의의 주요 메시지는 “사망이란 없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당신이 통과할 문이라는 것이다.
현대 영주의의 가장 속기 쉬운 부산물은 레이몬드 무디(Raymond Moody)와 엘리자베드 쿠불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 )에 의해 주도되는 인기 있는 “생후 생” 운동이다.(이들 영주의자들의 교제는 비밀이 없다.) 이 논쟁의 대상인 사이비 종파의 주요 메시지는 “죽음은 친구이다. 두려워 하지 말라” 라고 하는 것 같다. 생후 생의 경험을 해본자들 대다수가 그들 종교적 믿음에 관계 없이 ‘죽음은 아름답고 죽음은 모두에게 축복 된 것이다’ 라고 믿고 돌아왔다.
이들의 경험에 대한 설명이 무엇이든간에, 그들에게서 나온 경험이 사탄의 술수이며 반(反 )성서 적이다. 그들은 그리그도의 복음을 부정한다. 우리는 이것을 대항하며, “최후의 원수”인 죽음과 친구가 되게 하려는 사탄의 모든 노력에 대항하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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