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죄에 관한진리-(2)
예수진리, 잭 카트렐 (태광출판사, 1986)pp49~58
전통적인 로마 천주교 교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담의 죄 때문에 단죄와 징벌이 우리 머리 위에 있다고 주장하며 이 견해(반펠라기우스 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가장 극단적인 견해는 A.D. 5세기 초에 어거스틴에 의해 착상된 견해이다.(그래서 이 견해는 어거스틴 주의 또 때로는 칼빈주의 라고 불리운다)
이것은 원죄에 대한 전적인 고전적 교리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육체의 죽음은 물론, 전 인류는 모든 영적 문제를 아담으로부터 유산 받는다는 것이다.
첫째는 모든 유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유죄이며, 지옥에 갈 운명으로 태어 난다.
둘째, 그들은 타락한 영적 본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셋째, 이 타락은 아주 전적인 것이어서 유아들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상실했다.
즉, 그들은 선한 일을 선택하기에는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로 성장한다. 이 마지막 조항을 “완전타락” 또는 “의지의 속박”이라고 한다. 성경을 믿는 루터 교회와 칼빈주의자들(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은 이 견해를 고수한다.
B.로마서5:12~21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이 견해가 참된 성서적 가르침이라고 주장된다. 그들 대부분은 그들 교리의 주된 자료인 로마서 5:12 - 21로서, 다른 성경 구절들에서 같은 내용의 성경 구절들에 호소한다.
여기 바울 사도는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하여 사망이 왔나니”(12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18절)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19절)
어떤 이들은 이 성경 구절들은 단지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또 다른 이들은 제한된 타락도 포함한다고 말한다. 어거스틴은 여기서 육체의 죽음, 영적 죽음(완전타락), 영원한 죽음(지옥에로의 정죄) 까지를 포함하여 말한다.
이 어려운 성경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실제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적어도 아담의 죄 때문에 우리는 모두 육체적으로 죽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더 이상을 말하는가? 바울이 “정죄”와 “죄인들”이라는 18절, 19절의 말에서 물려받은 죄(전가된 죄)와 타락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고 답한다. 그러나 기다리라! 이렇게 중대한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궤변적이고도 우유부단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 마지막 분석에서 보면, 정말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인류가 아담으로부터 무엇을 물려 받았던지 간에 정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의하여 제거되고 취소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문단, 특히 15절, 19절의 전체 요점이다.
홉스(A. I. Hobbs)는 그것을 “우리의 의지나 동의에 상관없이 우리가 첫째 아담 안에서 상실한 것을, 우리의 의지나 동의에 상관없이 둘째 아담 안에서 다시 받았거나 다시 받게 될 것이다” 라고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
우리가 아담의 죄 때문에 죽는가? 상관말자.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
아담의 죄 때문에 유죄와 완전타락까지도 잠재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가? 상관 말자,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전 인류를 위해 취소 되어진 것이다.(롬5:18) 그것들이 효력을 발하기도 전에, 십자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것 까지도 취소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분석에서, 어떤 사람도 아담의 죄 때문에 오는 영원한 고통을 받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아담의 죄에 대해 조목조목 필적하여 그 독소를 상쇄시킨다. 지금 우리가 어떤 유죄와 타락을 가지고 있던지, 그것은 아담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개인적 죄 때문에 온 것이다.
만약 우리의 육체적 죽음이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부활에 의해 무효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개인적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우리가 다시 몰수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은 이것도 역시 모두 처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이 말씀에서(15, 17절) “더욱‥‥넘치게”를 강조한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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