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하나님에 관한 진리2-(3)
Ⅱ.우리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여망.
죄인들에게 대항하는 하나님의 진노 하심에 관한 강한 성서의 강조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코자 갈망 하신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정말 그러하시다.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 라”(벧후3:9)
구속을 위한 이 하나님의 여망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다.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선한 의지의 자세이며, 다른 이가 잘 되도록 돌보는 자세이며, 그의 번영을 위한 자비로운 관심이다. 이것이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의심 없는 근본 태도이다. 요일4:8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선한 의지가 고통 받고, 처참하고, 가련한 사람들을 향할 때 그것을 자비라 부른다. 우리의 영적 위기와 결핍의 상태를 우리에게 보이시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비 하심으로 우리를 그러한 상태에서 구원 하시려고 간절히 원하신다. 이 속성에 대한 다른 표현들은 자애, 동정이다. (신명기5:10; 시편57: 10, 86:5, 136편을 보라)
우리는 그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 대한 이런 관심을 가지셨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로마서5:1-11; 에베소서3:19를 보라)
사랑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 받을 가치조차 없는 자들을 향할 때, 그것을 은혜라고 부른다. 은혜는 사랑 받지 못할 자들에 대한 사랑이요. 그것을 받을 자격을 상실한 자들에 대한 호의이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에베소서1:6~7, 2:7-9; 로마서3:24를 보라)
Ⅲ.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실지라도 그분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신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가? 우리는 이미 무에서의 창조를 통해 나타난 위대한 권능과 우주를 관할 하시는 절대주권을 보아왔다. 확실히 그와 같은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은 죄와 죄인을 처리하실 수 있음이 틀림없다.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능력인지 다시 말하면 단순한 힘인지, 아니면 완력인지를 살펴보자. 확실히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악과 행악자들을 파멸 하심으로 죄를 처리 하실 수 있으시다. 말세에는 회개하지 않는 모든 죄인이 파멸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종류의 힘만으로 죄를 처리하시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사랑이 그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 때문에, 하나님은 다른 종류의 권능으로 죄를 정복할 것을-할 수 있는 것을-선택 하신다. 즉 파멸이나 말살시키는 권능으로서가 아니라 이끄는 권능, 도덕적인 권능, 마음의 체능으로서 하신다.
로마서1:16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복음의 성취나 선포에 있어서 그렇다. 복음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의 행동, 하나의 행위이다. 복음은 하나의 사랑의 행동이다. 그것은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한 가장 심오하고 가장 감동적인 사랑이다. 십자가는 행동하는 사랑이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분노를, 자기 독생자의 무한한 수난을 통해 만족시킴으로서 압도하신다.
선포된 복음이 능력-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 동기를 주는 능력, 의지를 움직이고, 마음을 녹이는 능력이라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예수님께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십자가 위에)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요12: 32)고 선포 하셨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고전1:18), 사랑스럽지 않은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가를 우리가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압도되어서(어떤 의미에서) 그분의 사랑에 우리의 사랑으로 응답하게 된다.(요일4:19)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섭리적인 권능 앞에 두려움으로 선다면, 우리는 그분의 구속의 능력에 한층 더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에(구속하는 능력에) 모든 능력 중 가장 위대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솝의 우화 가운데 해와 바람이 누가 더 강한가에 대해 서로 다투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행인의 코트를 누가 벗길 수 있는가 하는 시합으로 경쟁을 하는데, 바람은 강하고 매서운 바람으로 행인의 코트를 벗기려 했으나, 바람이 강할수록 행인은 오히려 코트를 움켜잡고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해는 다른 종류의 권능, 즉 따뜻한 햇볕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러자 행인은 이마에 땀을 닦게 되었고 결국은 코트를 벗고 말았다.
우리의 하나님은 두 종류 모두의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 죄인들은 무한히 감사해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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