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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살전 5:12~18 2024-06-09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서의 중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자세를 가르친 다음에 마지막 안부와 인사를 하기 전에 교회 전체의 신앙의 자세와 개개인의 신앙생활에 대한 지침을 주고 있는 말씀이 오늘의 메시지이다. 이제 다음시간에는 좀 더 영적인 은사의 부분을 다루고 마무리되고 있다.

오늘의 제목은 각자의 신앙에 대한 자세 속에서 권면하는 자세가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임을 하나님의 뜻이라 하였지만 교회 전체이든지 개인이든지 모든 움직임이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당연한 것은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말씀대로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미 거론된 대로 그렇게 하나님의 의도하시고 이루어져 갈 때 그러한 교회는 세상과는 구별되고 모든 신앙의 모범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이 될 것이고 이를 비로소 거룩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4:3)라는 당부를 이미 준 바 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범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고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회들이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공동체의 이상이나 자기 실현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보다도 우선하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신 교회라면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메시지의 뒷부분 개인의 신앙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이것은 당연히 모든 교회의 지체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그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Ⅰ. 헌신을 격려하고 유효하게 하라(12~13)

앞에서는 주로 “권하노니”(4:10)란 표현으로 ‘그렇게 하여야만 한다.’는 투의 당부로 저들의 재림에 대한 신앙을 다잡았다면 여기서는 사뭇 겸손한 말투와 함께 이러한 자세로 교회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지향해야 할 것을 부탁하는 내용을 본다. 중심이 되는 표현들은 교회를 위해 섬기는 자들을 알아주고 또 귀히 여겨서 그 헌신들이 복된 역할을 하게 하라는 것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12) 먼저는 표현이 사뭇 정중하면서도 진지해졌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ἐρωτάω, 묻다, 요청하다, 간청하다]” 우리가 마치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조차 생각하게 하는 표현으로 교회 공동체 생활의 자세를 부탁하고 있다.

그 대상은 3가지이다. ①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κοπιάω, 열심히 일하다, 애쓰다], 교회에서의 섬김이나 봉사는 사실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는 수고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빌3:3f) 라고 바울은 권면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섬기는 사람의 입장이고 그 섬김이나 헌신을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수고를 모르는 체하지 말라는 당부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한다고 해도 하다하다 지치거나 시험을 당하는 경우에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지체들의 격려를 듣는다면 그런 시험을 넉넉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특별히 “너희 가운데서”라는 범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②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προΐστημι, 인도하다, 돌보다, ~에 관심을 갖다, 수행하다], 여기서는 좀더 신령한 범위를 한정하고 있는데 “주 안에서”가 그것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너희 가운데서”와 차이가 없겠지만 특별히 옥중서신에서 자주 사용하는 주 안에서는 좀더 중요한 역할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지도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런 이유에서 장로직 같은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지체들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③권하는[νουθετέω, 경고하다, 충고하다] 자들을, 이 세번째의 알아주고 순복해야 할 대상은 교회전체를 치리하고 다스리는 지도자들을 두고 구하는 부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세가지를 말하면서 그들에 대하여 너희가 알고[εἴδω, 인지하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깊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시면 그만’ 이라고 성경은 가르치는데 그럼에도 이러한 권면을 하는 것을 보면 신앙의 지도자들에게도 사람을 통한 격려도 역시 더러 당부함을 다른 성경들 에서도 보는 내용들이다.

물론 이런 믿음의 행위들이 자기 과신이거나 경쟁의식이 되어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역시 그런 신앙적 행위들을 격려하는 것을 권면하는 말씀들은 더러 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5: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교회 안에서의 모든 수고와 봉사와 헌신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나의 생명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해 주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만 다른 지체들이 이를 모르는 체하지 말고 격려하고 알아줄 것을 마지막 시대의 경계를 주로 다루는 이 데살로니가 서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13)

어떤 직분이나 명칭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물론 그들이 하는 헌신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상을 준비하시겠지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이므로 어떤 것 보다도 “가장 귀히 여기”라는 당부를 주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권면이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것으로 그러한 지도자들의 다스림이나 권면을 잘 받아들여 교회 지체 간에도 화평을 유지하며 주님을 섬길 것을 당부하고 있다.

교회에서의 수고와 헌신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이 세상에서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역사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으로 협력하고 감사하며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Ⅱ. 항상 선을 따르라(14~15)

계속되는 권면도 역시 교회 안에서의 관계를 다루는 내용으로 앞에서는 긍정적으로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격려나 칭찬을 권면하였다면 여기에서는 조금은 부정적인 사람들에 대한 권고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보훈에서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 속에서의 교훈과 같은 내용과 함께 바울이 로마서12장에서 교회의 실제적인 교제를 다루는 말씀과도 더러 비슷한 내용들이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14) 부정이거나 나태해진 상태의 자세를 바로잡는 좀더 구체적인 교훈들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 라는 공동체는 각자의 경건을 하나님 앞에 세워가는 하늘에 속한 기관이기도 하지만 함께 격려하고 훈계하여 더불어 가는 천국의 백성들이며 군사들이기 때문에 [함께] 또는 [따로]가 모두 중요하다.

①“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우리가 쉽게 읽는 것 보다는 조금은 복잡한 의미들을 가지는 낱말들이 사용되었다. “게으른[ἄτακτος, 무질서한, 대열을 벗어난]” 본래 군사용어로 낙오된 병사에 대해 사용한 말이었다. 훈련받지 못한 병사로 오히려 대열을 분산시키는 자들이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감당하지 못하고 남의 신세를 지며 사는 게으른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한 말이기도 했다.

성경은 교회의 구성원들을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지칭하는 표현들을 더러 볼 수 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빌2:25)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몬1:2)

그런 대상에 대해서는 “권계[νουθετέω, 경고하다, 충고하다, 이해시키다, 바로잡다(고치다), 명심하게 하다, 가르치다]하라”는 권면을 주고 있는데 대열에서 이탈된 훈련병을 버리는 군대는 세상에도 없다. 얼차려(선착순)를 줘서 라도 대열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의 군대가 그렇다면 하늘 나라의 군대는 더욱 당연하다.

②“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약한 지체들은 강하게 될 때까지 붙들어 주어야 함을 가르친다. “마음이 약한[ὀλιγόψυχος, 겁많은= ὀλίγος 작은, 적은 + ψυχή, 영혼, 내면의 존재, 생명, 호흡]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로 ‘기가 죽어 있는 상태’로 가족이나 동료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들(4:13)이나 어려운 형편으로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격려[παραμυθέομαι, 위로하다, 용기를 북돋우다]” 옆에 앉혀두고 여러 가지 격려가 되는 말들로 소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힘이 없는[ἀσθενής, 강하지 못한, 약함]” 일차적 의미로 육체의 연약함으로 병든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연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1:27)

그럼에도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들어왔다면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 더불어 든든히 세워져야 만한다. “격려하고[ἀντέχομαι, 고수하다, 굳게 잡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1:9) 세상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들거나 가치를 찾기 어려우면 포기하고 버리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런 자들이 오히려 복음 속에서 강하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쓰임을 받기를 기대하신다(삼상30:11~20).

③“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μακροθυμέω, 참다, 인내하다, 기다리다]” 오래 참음은 신앙에서 계속 강조해오는 것으로 성령의 열매이면서(고전13:4; 갈5:22)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이다(렘15:15) 사람의 성품이나 행동은 여러가지이고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그 대상에 관계없이 즉, 모든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의 죄인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 같이 용납할 것을 권면한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4:2) 여기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 그리고 사랑 가운데 오래 참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본래 성품으로서는 오래 참음이 불가능하여 우리 대한민국 사람의 특징을 얘기할 때도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평할 때 “빨리 빨리”를 특징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잘 대해오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음은 쉽지 않지만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이 권면을 이루어 갈 수 있었으면 한다.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역시 교회지체 간의 관계의 자세가 당부되고 있다. 본래 율법에는 이런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출21:23~24) 보복의 원리가 계속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복음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이와는 반대의 자세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당부하셨다. 대표적인 곳이 마태복음5:44~였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교회 속에서 실제적인 교훈을 당부하는 바울도 같은 당부를 주고 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 어쩌면 이 v15의 말씀과 가장 가까운 표현이다.

특히 여기도 대상의 한정이 없다. “누가 누구에게든, 서로 대하든, 모든 사람을 대하든, 항상 선을 따르라” 사실 복음 외에는 이런 배려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사죄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당연한 갚음일 것이다.

교회라는 특별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화목의 관계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는 소중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Ⅲ.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16~18)

이제 여기서부터는 개인적 경건의 권면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까지 이르러 영원에까지 이루어 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어쩌면 이 말씀이 믿는 사람들 속에 가장 자주 거론되고 암송되는 말씀이기도 하다. 또 그런 이유 때문에 너무 가볍게 취급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서 오늘은 좀 더 깊이 되새겼으면 한다.

“항상 기뻐하라”(16) 첫번째는 우리의 감정과 관련된 당부이다. 어떤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누구나 기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렵고 고달플 때는 기뻐하는 것이 어렵다.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항상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정신병자에게나 가능한 것이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삶으로 경험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는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는 이 세상이 뒤집혀도 바뀔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우리가 이런 구속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3: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왜, 기쁨을 가지고 있는데 웃지 못하느냐!”라는 의미의 확인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17) 주님께서 누가복음18:1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 바울은 신앙의 실천을 당부하면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과 임마누엘을 확신한다면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지속되는 기도 속에서 어려움을 만난다면 그 어려움은 이미 어려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기도의 모범을 가진 사도들의 한결 같은 당부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6:18)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18f)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결과와 함께 역시 앞의 두 항목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당부하는 내용이 여기서는 앞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많은 신앙인들이 3가지 권면 즉,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당부에서 끝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은 마치 우리의 호흡처럼 들이 쉬고 내쉬는 영적인 호흡처럼 느껴지고 성숙한 신앙의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서가 강조하는 이 역사의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도 변함없이 신앙적 호흡을 이 3가지 형태로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8b)는 귀중한 의지를 놓치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서론에서 이미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4:3)라는 말씀을 인용한 바 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 밖에서는 스스로의 경건이나 노력과 어떤 정진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육신의 호흡처럼 영적인 호흡을 할 수 없고 그럼으로 당연히 하나님의 의지 즉 바라시는 뜻을 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조차 할 수 없다는 데서 역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쉼 없이 말씀하시는 장소도 복을 주시는 장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뿐이다.

또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는 더 넓은 세계로 확산되고 이것이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의 완성이며 이렇게 복음의 확산이 완료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자신의 피로 구속한 의의 사람들을 데리러 두번째 오실 것이다. 이 약속이 바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는 말씀이다.

거듭나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에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의 섬김이 헛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 함께 하나님과 사람들과 복음으로 화평을 이루어 가야 한다.

아직까지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복음으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을 말씀으로 충고하여 바로잡되 그들의 허약함에 그대로 반응하지 말고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이시고 가르치신 선을 따라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전체 공동체 속에서 바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구원받은 감격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하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교회에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