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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히 7:1~10 2022-05-15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이 7장은 앞뒤에 6장씩의 13장의 가운데이기도 하지만 실제적인 내용에서도 중심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OT의 제사의식에서 계속 백성을 중보 하여 제사직을 계승했던 레위 가문의 제사장직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 레위가문의 제사장직에 비교될 수 없는 우월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직을 멜기세덱이라는 신비의 인물이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내용이다.

그런 가 하면 앞에서도 이 사실을 이끌어오는 서론 격이었고 이런 거룩하고 신령한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초보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권면이 5:11~6:8에 끼워져 있는 형태를 다루어 왔었다.

이렇게 이 히브리서의 중심 격인 7장을 3번으로 나눠서 다루고 다음장부터는 그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와 그 효과가 미치는 영향까지를 10장까지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먼저 오늘은 영원한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특성과 그 제사장직이 후에 나타날 레위가문으로부터 십분의 일을 취함으로써 이미 레위가문의 제사장으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았다는 것을 아브라함으로부터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취하는 것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다고 증거한다.

다음 시간에는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기 때문에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 지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OT의 제사와 같을 수 없는 것을 먼저 지적한다. 다음으로 레위 가문의 제사장은 육신에 속한자들이었기 때문에 죽는 것으로 인하여 제사장의 직분이 계속 바뀔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영원할 것이라는 내용을 다루게 될 것이다.



Ⅰ. 왕이며 동시에 제사장(1~3)

멜기세덱의 단어 적인 의미는 앞에서 이미 간략하게 다룬 바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써의 멜기세덱의 특성을 거론하고 있다. 사실 멜기세덱이라는 명칭 자체를 OT에서 두 곳(창14:17~20; 시110:4) 그리고 이 NT 에서는 이 히브리서만이 거론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성경을 어느정도 아는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은 인물이다.

창세기14:1~16에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세 왕(시날-아므라벨, 엘라살-아리옥, 고임-디달)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신29:23), 소알 왕을 쳐서 소돔에 살던 롯까지 포로로 잡아가자 집에서 훈련시킨 군사들을 데리고 밤에 이 왕들을 쳐부수고 조카 롯을 찾아오는 길에 이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고 전리품의 1/10를 바치는 내용이 오늘 말씀의 배경이다. (17~20)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1f) 이 사람의 직책이 여기 두가지가 거론되는데 “살렘 왕”이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왕은 왕인데 “살렘 왕” 즉 평화의 왕이 첫째이다.

어쩌면 이 왕이 의미하는 것 자체가 양쪽의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고 빼앗은 양편의 왕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평화를 위한 왕이라는 것인데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적수요 죄인들인 우리를 죽이는 대신에 자신이 죽음으로 희생하는 세상의 군왕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와 평강의 왕이시다.

다음으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하였는데 이 역사 속에 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로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고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범죄함으로 그 섬김의 대상에서 하나님을 제하여 버렸지만 반드시 누군가를 섬기게 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 역사에 나고 또 태어날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어떤 대상을 섬기게 되어 있는데 여러가지 신이라고 이름 붙여진 섬김의 대상들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 섬김의 대상은 단 두가지이다. 즉, 하나님이 아니면 우상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섬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오늘 우리가 이 세상만민 가운데 누구보다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된 것은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않다.

본 말씀이 인용되고 있는 창세기 본문에서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데 “지극히 높으신[ὕψιστος, 가장 높은] 하나님을” 반복하고 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14:19~20f)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1b) 이 말씀도 좀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도 보여진다. 결국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이지만 여러 왕을 쳐서 죽인 손에 피를 묻힌 아브라함에게 오히려 복을 빈 자라는 내용이 그렇다. 여기도 비폭력 주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면모를 생각하게 된다.

OT의 제사장들은 왕직을 함께 가질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에서 대선지자직을 제외한 2가지 직임을 가지고 있었음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는 부분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복을 빌어주는 평화의 왕에게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2f) 했는데 율법이전이면서 족장 시대에서도 맨 먼저 등장하는 십분의 일이다. 나중 야곱이 벧엘(루스)에서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서원하는 내용이 그 다음이다.

그 십분의 일을 바침에는 어떤 평가도 없이 다만 그 십분의 일을 받은 멜기세덱에 대하여 평하기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2b) 했는데 여기서는 그가 비록 선지자는 아니었지만 왕의 지위를 세가지로 말하고 있다.

①의의[δικαιοσύνη, 올바름, 공정함] 왕, ②살렘[Σαλήμ, שָׁלֵם, 온전함, 결함 없는] 왕, ③평강[εἰρήνη, 전쟁에 반대되는 평화의 상태]의 왕, 이 세가지가 모두 사람으로부터는 불가능한 하늘의 상태를 의미라는 것이라는 데서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적용되는 표현들이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3) 대부분의 OT 성경이나 히브리 적인 사상은 중요한 인물은 반드시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형태이다. [기스의 아들 사울, 이세의 아들 다윗]

대부분 성경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어떤 경우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일지라도 어느 아버지가 아니면 누구와 누구 사이에 나고 그의 족보나 탄생의 배경, 그리고 삶을 끝낸 형태나 이유를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 인용된 v3의 내용이 창세기 14장에 기록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하늘로부터 나타난 천사도 아니고 땅에서 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사람의 출생이나 계보를 기록하지 않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3)는 중요한 상징을 주시려는 의도인 것으로 밖에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멜기세덱과 다르게 전혀 신비한 인물도 아닌 오늘 내(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Ⅱ. 율법시대 이전에 십분의 일을 취함(4~6)

이제 오늘 나누는 말씀의 나머지 부분(4~10)에서는 이 멜기세덱이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존귀한 일을 하면서 나머지 다른 열 한 지파들로부터 십 분의 일을 받아 그것으로 자신들의 기업을 삼았던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십 분의 일을 받으므로서 레위지파보다 높은 제사장이었음을 증거한다.

민수기18:20에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하셨고 이것은 율법의 확인이라고 하는 신명기에서도 다시 확인하는 내용이다(신18:2).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4)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생산물의 십 분의 일을 레위지파에게 주었던 것은 사실에 있어서는 자신들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율법이 주어지기도 전에 그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 분의 일을 바친 것을 보면서 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이나 레위보다 얼마나 높은 가를 헤아려 보라는 것이다.

제사장에게 제물을 주는 것은 그 제사장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주었다’는 표현보다는 ‘드렸다’는 표현이 오히려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멜기세덱의 특별한 대제사장직은 후에 레위와 전혀 다른 계보와 그럼에도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십 분의 일을 바친 것에 대해서 계속 설명하고 있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5) 이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의 지위가 얼마나 특별하고 높은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다른 지파들로부터 십 분의 일을 받았던 레위가문에서도 제사장의 직책을 행하는 사람들이 더 높은 위치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증거한다.

여기 허리에서 난 자라는 표현은 후대에 아브라함에게서 날 것이라는 히브리 사람들의 독특한 표현이며 v10에 다시 쓰여지고 있다.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35:11b)

좀더 구체적인 예들이 부정적이긴 하지만 같은 레위지파에서도 제사장직을 행하는 아론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가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를 민수기 16장에서 볼 수 있다. 고라는 레위지파였음에도 제사를 드리는 일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장손인 르우벤 지파의 지휘관들과 함께 모세와 아론에게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하고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의 경우는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의 온 가족을 삼키는 내용을 불 수 있다.

모세가 제사 드리는 일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으로 불만을 가진 고라 일행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게 하신 것 자체가 작은 일이 아닌 귀중한 일임을 증거하는 내용을 민수기16:8~11에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9) 라고 책망하는 것을 본다.

다음 구절은 십 분의 일을 받는 레위지파와 전혀 관련을 갖지 않았으면서도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십 분의 일을 받고 축복한 멜기세덱처럼 이 거룩한 일을 감당할 것에 대해 축복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6) 뒤에서 다시 거론되지만 영원한 인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 계속 자자손손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제사장 역할을 해온 레위 가문이 아닌 유다 지파로부터 난 것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바울은 이방인 출신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누리게 된 사실에 대하여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롬11:17) 자랑하지 말라고 경계를 주고 있다.

레위지파도 아니요 이스라엘도 아닌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생명을 함께 누리고 제사장으로 섬기게 된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여 얼마나 더 열심으로 섬겨야 하겠는가를 생각하는 …



Ⅲ. 레위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음(7~10)

이 부분에서는 앞에서 말한 내용을 보충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이 히브리서 기자도 이러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자신의 동족들일지라도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것으로 이해 된다.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7) 이제는 십 분의 일을 바친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다는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없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이 모두가 당연시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의미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이 말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함께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실이다. 성경 속에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고유 풍속인 새해에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해도 어른들은 세배를 받고 세배돈을 주면서 덕담을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 올 해는 건강하고 편안하고 모든 일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싸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이 축복한 사실을 두고 멜기세덱은 축복한 아브라함보다 높은 분이고 아브라함은 레위보다 당연히 높은 것을 의미하는 내용이다.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8) 다시 한번 멜기세덱과 레위, 더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레위의 제사장직의 대조이다.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8f) 먼저는 역사 속에 대대로 나서 죽을 때까지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밖에 없는 제사장들의 인간됨의 문제와 여기에는 대제사장들의 살아 있을 동안에는 도피성에 피난해 있는 사람들의 운명 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다음 대제사장의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 물려 받기는 하지만 실수로 남을 죽이고 도피성에 피해 있던 당대의 사람들은 오히려 자유를 얻고 자신의 가족이나 삶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운명의 변화까지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아니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시행하지 못하여 제사를 드리다가 즉시로 죽은 자들 즉, 나답과 아비후와 같은 제사장들도 포함하는 표현이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레10:1; 민3:4, 26:6)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8b) 인용된 창세기의 내용에서는 역시 기록되지 않은 내용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부분 이해하기는 하지만 역시 영원히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둔 기록이라고 보인다.

다음으로는 당시로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레위였었고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은 레위의 증조할아버지 격이었고 십 분의 일의 제도 역시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금은 확대된 듯한 논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들리는 내용이이다.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9)

우리 말로 옮긴 것과는 다르게 본래의 쓰여진 내용으로 보면 “ὡς ἔπος εἰπεῖν”(말하자면) 쉽게 사용하는 표현으로 “예를 들자면”이라는 말로 시작되어 멜기세덱은 제사장위의 제사장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논리로 강조적이다.

귀중한 제사장으로 하나님과의 중보적인 일을 하므로 다른 모든 형제 지파들로부터 십 분의 일을 받아 사는 영화를 누렸던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 분의 일을 바친 것과 다름이 없다는 확인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마지막으로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10)고 설명하는 것으로 말씀이 마무리되고 있다. 시간이나 공간적인 근거는 육신의 한계를 가진 우리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만 사실 하나님께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한계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해나 역사를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억지로라도 그런 것들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덤비는 것이 사실이다.

레위가문 출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이 이런 입장의 유대인들에게는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 같은 경우에 이것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성경에 흔치 않은 인물인 멜기세덱을 예를 들지만 그럼에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더러 있고 신앙의 부분이 더욱 그렇다. 어떤 입장에서 우리는 바울과 같은 자세로 믿음생활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5)

하나님을 뜻을 깨닫고 순종하려는 자세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불신하려는 옳지 못한 이론들은 적극적으로 경계하고 믿음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는 가르침이다.



멜기세덱은 우리 주님의 그림자로 의의 왕이요 살렘 왕이고 평강의 왕이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버금가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이 신비한 인물과 다름이 없는 지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과 감사로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빈말이 아닌 것은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놀라운 역할을 하게 된 것 역시 어떤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 속에 레위지파 제사장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의 일을 받고 복을 빌어 준 멜기세덱처럼 OT속에서 예언된 메시야를 통하여 제사장이 되었고 원수까지도 축복하는 복의 사람들로 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12:14)

우리는 멜기세덱과 비교될 수 없는 땅에서 난 천한 존재들이었지만 영원히 살 제사장으로 택함을 받았다면 거저 받은 이 엄청난 축복의 권한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끄는 복된 역할을 감당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