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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17:20~26 2021-03-07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의 땅에서 올리는 제사장적 기도의 마지막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내용은 복음전파를 맡긴 사도들의 증거를 듣고 순종하여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이 땅 위의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고 오늘 우리를 포함한 기도라는 데서 더 큰 감사를 갖는다.

독특한 것은 오늘 본문에 제목 같은 내용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21)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22)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23)

에덴에서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버린 결과는 만물이 다 완전한 조화가 깨어져 버리고 다만 고통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기까지 탄식하며 기다린다고 바울을 통하여 안타까움을 기록하고 있다(롬8:19~22).

그러므로 범죄한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안에서 하나를 이루고 만물이 다시 통일되고 회복되어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화평과 조화를 이루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고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이 기도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예언하셨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사65:25) 언약하심을 읽는다.

결국 이 세상의 진정한 통일은 복음을 통해 이루실 것을 바울을 통해서도 확인하셨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그러므로 오늘 이 주님의 기도의 내용은 불신자였던 우리를 포함한 사람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회복을 위한 기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됨의 바탕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이심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도 포함되고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21)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22)

이 기도가 유효하기 위해서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하나됨을 위하여 성령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하나됨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해야 할 것이다.



Ⅰ. 기도의 확대(20)

제자들과 최후의 유월절만찬을 나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자세하게 말씀하시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떠나는 자리를 성령께서 오셔서 감당하시되 다른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아 가르친 바로 그 진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에는 하나님께 인류를 위한 기도를 드리셨는데 먼저는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두고 가실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지난 주까지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기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으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20) 그럼으로 적어도 이 기도는 우주를 품은 기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도의 범위는 그 기도하는 사람의 규모를 요즘말로 스케일(scale)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너무 막연한 기도는 의미가 없겠지만 그런 입장에서 우리 주님 기도의 넓이를 여기서 가늠해 볼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창세전부터 가지셨던 영광(5)에서부터 앞으로 자신의 이루시는 복음을 받아드리고 믿게 될 우주적은 교회에까지 기도의 규모를 넓히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간적으로도 시작에서 끝까지 소위 말하는 Α와 Ω적인 기도를 드리고 계심을 배운다.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20b) 여기 “그들은” 당연히 앞에 먼저 기도의 대상이었던 사도들임에 틀림없다. 또 “그들의 말”은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연히 아버지께 받은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셨고 오실 성령 역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교훈을 주실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다.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6:13~14)

또 한가지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 즉, 말씀으로 인해 믿는 사람들이다. 말씀신앙은 어느 때나 중요하고 말씀으로 인하여 믿는 믿음이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신앙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의 범위는 단순히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나 제자들에게서 그치지 않고 우주적인 공간과 창세전부터 영원에 이르는 규모로 기도하셨다. 같이 하나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기도의 모범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의 영역도 하나님의 나라와 더불어 세계와 영원을 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



Ⅱ. 모두 하나가 되려 함이라(21~23)

우리 주님께서 이 마지막 기도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하나되는 것을 구하셨다. 그럼으로 나눠지고 흩어지는 것은 우리 주님의 뜻에 거꾸로 가는 것이다. 바울의 모범을 보면 고린도전서9:19~22에서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를 복음 속에서 구원 얻은 하나가 되기 위함이라는 고백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21f) 기도이지만 자의적인 고백과 함께 모범을 그대로 나타내신다. 이 요한복음 속에서 그것도 앞의 다락방강화에서 더러 나타나는 표현중의 하나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10:38,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11, 20, 17:23) “알리라, 믿으라” 하셨지만 여기에서는 보다 실제적인 상황을 고백 드리는 것이다(21f).

이런 모델을 제시하신 후에 곧바로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21m)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실제적인 모습을 미래의 영원한 새 예루살렘 성전을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 하심으로 완벽하게 하나된 모습을 계시록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미래에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이러한 하나됨이 미치는 영향을 말해주고 있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21b)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신앙하는 사람들이 완벽하게 하나되었을 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믿게 될 것이라는 우리의 책임을 증거하시는 기도를 하신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보고 듣는 실제적인 문제이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면서까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그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고백하신다.

또 우리가 온전히 하나될 때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영광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임을 깨달으며 우리의 진리 안에서 하나됨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인가를 깨닫게 된다.

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을 선포하기를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사람임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니 많은 신앙의 사람들조차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고 믿음 생활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 새롭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빛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되게 하시려는 뜻이 계심을 깊이 깨닫고 오히려 그 영광을 가리는 역할을 하지 않도록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오로지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를 좀더 분명히 하시는 말씀이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23)

이것이 사실적인 상태여야하고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됨을 누리는 상태이며 그렇게 될 때 역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기원하신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23f) 적어도 성경속에 초대 교회 일세기의 교회는 적어도 이런 모습을 분명히 나타냈고 그런 까닭에 복음은 세상 끝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이런 모습을 잃어버린 듯이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역사의 마지막에 오셔서 그런 성도를 가려서 영광에 데리고 들어가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23b) 이 역시 세상에 구원의 영향을 끼칠 것임을 말씀하시는데 v21b에서도 이미 말씀하신 바 있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바른 복음의 증거는 소리만이 아니라 보다 호소력이 있는 보이는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믿게 하고 알게 할 것이라는 두려운 사명을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 각자가 다시한번 도전하는 이 말씀이 되었으면 한다.



Ⅲ. 함께 있게 하옵소서(24~26)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 창세전부터 하나된 영광을 누려 오셨고(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이 영광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새롭게 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내용이 오늘 말씀의 마무리이다.

먼저는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 믿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창세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안에 함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24)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단순히 아들을 사랑하신 것에 머물지 않고 아버지의 그 영광을 아들에게 입혀 주셨고 복음 속의 모든 사람들이 그 아들에게 입혀 주신 영광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신다.

바울은 이를 표현하기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증거하고 있다.

사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24f)는 예수 그리스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24b)”는 결과이면서 지속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정리해야 하는 것 하나는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는 현재적으로는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주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처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보고도 진리로부터 도망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서로 상관관계를 가진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25) 자연적인 세상 사람들은 막연한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세상과 다르고 구별되어 계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알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요한 사도는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2:23)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결과에서 당연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는 말씀도 진리인 것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세상의 죄와 우상과 구별 되 계신 그런 이유에서 다른 표현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 영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신데 아들이신 예수께서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리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께서 어느 귀족의 가문에서 난 영웅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에 죽을 인류를 위해 우리와 꼭 같은 사람으로 보내 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미 선택하신 사도들이 이를 알게 되었고 그 사도들을 통해서 진리의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를 더 미래적으로 내다보시는 모습이 마지막 구절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26)

이 사실은 과거의 먼저 보내심을 받은 많은 선지자들도 알게 할 수 없어서 막연한 것이었지만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f)가 해답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26f) 이미 당시의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신 것을 앞에서도 말씀하신 바 있지만 여기에 지속되는 “또 알게 하리니” 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가 또한 알게 되었고 주님 오실 때까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믿음의 결과로 같은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됨의 최종적인 결과는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26b) 한 것처럼 독생자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믿는 자들 속에 함께 머무르는 사랑으로 통일되고 하나되어 함께 있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완벽하게 완성되고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약속안에 있는 “그들”로 이 역사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딛2:11)났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인 구원의 기대는 우리 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는 말씀이 우리 주님의 기대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이 늦춰지는 것도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시는 이유이다.

이런 많은 사람들의 구원의 역사도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방법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하나 되기를 원하신다. 각자가 다 다른 생각과 다른 판단은 안된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되심 같이 하나님의 진리안에 하나이기를 원하심이 이 주님 기도의 중심이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 역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이듯이 모든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는 사람들이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머물기를 원하신다. 이 사실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에베소서4:3~6 계시하셨다. 이 말씀을 읽는 것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