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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13:53~58 2005-05-0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바울 사도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라고 복음의 위대성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주님의 비유에서 이 복음의 씨가 뿌려지는 장소에 따라 결과가 다름을 비유하셨고 이것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진리이다. 그런가 하면 이 마지막을 향해 가는 역사 위에 좋은 씨인 하나님의 아들들과 악한자가 뿌린 가라지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랄 것이라는 선악이 공존하는 이 역사의 비유도 가르치셨다.

또 천국은 세상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화나 진주로서 우리 인생을 전부 팔아서 사도 오히려 만족하고 감격할 수 있는 귀한 것임과, 이 비유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더 큰 확신과 감격이 되지만 어두움의 아들들에게는 감추어 질 수 밖에 없다는 가르침, 천국의 복된 소식이 처음에는 작아서 있는 듯 없는 듯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자라고 결실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가치를 초월하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라고 비유하시고, 이 비유들 말미마다 천국과 지옥을 반드시 말씀하시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이들의 구별된 영광과 악의 세력의 형벌을 덧붙이시는 비유의 내용들을 이 13장에서 상고한 바 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공관 복음에서 다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마가복음(6:1~6)에서는 본문과 내용이 별로 다르지 않고 누가복음(4:16~30)에서는 비교적 자세히 그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이 누가의 기록을 따르면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내용보다도 나사렛 고향 사람들이 더 심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대우 한 것으로 나타난다. 마지막 부분에 보면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눅4:28~30)는 내용으로 보아 예수를 죽이려 했다는 내용이다.

먼저 육신적으로 안다고 하는 선입견 때문에 영적인 부분은 불문에 붙이고 자기들의 기분대로 사람을 죽이려 하는 간악함을 그 때나 이 시대에나 더러 나타나는 사실들이 또한 우리 사람들의 죄성을 증거 해 주는 사실들이다.

다른 한쪽에서 볼 때 자신의 고향에 위대한 스승이 계시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할 조건이기도 한데 복을 비극으로 바꾸는 어리석음 또한 죄의 종 노릇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것과도 바른 관계를 세울 수 없는 어긋나 버린 인생을 여기서도 배운다. 사실 이러한 비극적인 운명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놓친다면 더 이상 소망은 없다. 죄의 아래 신음하고 사망의 종 노릇 하는 인간들이 하나님과 화목 하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놓쳐서는 절대로 안된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가까운 관계를 회복해 가는 저와 여러분 …



Ⅰ.예수 그리스도의 고향.(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우리 나라나 이스라엘이나 만나면 성씨 물어보고 고향 물어보고 그런 것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헤아려 보고, 좀 유명하거나 특출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냐?’고 탄생을 따져보게 되고 자라온 환경을 헤아려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이 심했던 시대에는 호적이라는 것이 취직에 까지 영향을 미치기까지 했었다. 사실 사람에게 있어서 천성적인 것 즉, 타고 난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라온 환경적인 요소 또한 지지 않는 인생의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교육에 있어서 이론이 엇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적으로도 여러 곳의 고향이 있고 그런 이유에서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동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을 안다고 하는 육신적 사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부분까지 판단하려 드는 독선과 아집이 사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이다.

실제로 ①탄생의 고향.은 사람들에게 감춰진 고향으로 성경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부분들이다. 우리는 고향을 말할 때 태를 묻은 곳을 고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적 고향은 베들레헴이 틀림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베들레헴 탄생의 신비는 하나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약속이지만 이스라엘 속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에 속한 부분이고 헤롯의 간악한 어린 아이 학살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정결예식을 행한 후에 바로 애급으로 피난하게 하셨고 거기에서 최소한 몇 달에서 몇 년 여를 지내셨는데 그렇다면 애급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의 한 장소로 지목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2:13~15)

②자람의 고향.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사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예수와 부모가 애급에 피난 가 있을 때 다시 하나님은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2: 19~23)

하나님의 사람인 요셉과 마리아는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고 천사나 성령의 지시를 따라 사는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계속 되었고 이 사실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명령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데 귀감이 되고 있다.

③본래의 고향. 무엇보다도 육신으로도 완벽하시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하늘의 영광의 보좌가 주님의 계시던 곳이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시작도 끝도 없으신 알파와 오메가의 주님이시다. 예수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 할 지라도 이것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주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고 비극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아는 사람의 고백이 바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라는 고백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음을 직접 증거 하셨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요6:6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23)]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선언하고 그분이 왜 이 땅에 내려 오셨는가를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이러한 영광의 사실에 눈이 감긴 나사렛 사람들을 비롯한 죄의 사람들은 눈을 가졌어도 볼 것을 보지 못하는 비극의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대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신 말씀은 진리일 수 밖에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100% 인간이시면서 100% 하나님이신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깨닫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Ⅱ.육신적인 것이 가려서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비극을 본다.(55~57f)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심오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1~14)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도 행하시는 일들에도 다 놀라고 있다.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54b)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57f) 두 번씩이나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영원을 위한 영혼의 놀람이 되지 못했다. 마치 마술을 보고 그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복음을 듣고 놀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 놀람 속에 나를 맡기는 의탁과 순종에 까지 가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 지신의 부활이 되고 주님의 재림이 나를 위한 것이 된다. 믿습니까?

또 가까이서 예수 그리스도를 뵈면서도 구원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저들의 비극적인 판단과, 수 만리나 떨어져 있으면서 오늘 우리가 구원의 주님을 뵙게 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이들은 철저하게 육신적인 관계만을 계산해 내고 있다.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신비를 맛 봤다면 그것을 왜 좋은 쪽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쪽으로 끌어가는가도 문제이다. 배우지도 않고 들은 것도 아닌 것을 봤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라고는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비꼬아 버리는 인간적 자세도 경계해야 할 비뚤어진 죄의 인간적 심사이다.

사실 이 나사렛 사람들의 이런 판단이 얼마나 단편적인가를 객관적으로 보는 우리는 확실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때로 우리의 판단이 이렇게 맹목적일 때가 더러 있다는 사실을 경계로 삼아 신앙의 부분을 판단하는데 조심해야 함을 배운다. 우리는 쉽게 나와 조금 틀리면 ‘이단’이라고 쏴놓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판단은 세심할수록 좋고 주님께 맡기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대성인(四大聖人)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봐야 할 것을 못 보는 나사렛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하다는 나머지의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초월해 게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 이런 입장에서는 차라리 육신적인 것들을 보지 못한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교훈이 오히려 저들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본다.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4:22)

은혜의 말씀이 믿음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넘어짐의 도구가 되는 것을 본다. “예수를 배척한지라”는 표현은 난 외주를 보면 “예수를 이하여 넘어진지라”로 번역이 되고 있음을 볼 때 더욱 분명해 진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기 지역 출신의 권력자나 유명인은 자랑하고 의지하려는데 반해서 영적인 선지자들은 오히려 냉대하는 안타까운 사실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그의 사역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서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 …



Ⅲ.믿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다.(57b~58)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라”

같은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눅4:24~27)는 말씀을 하셨고 들은 나사렛 사람들은 분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 마지막 부분의 내용은 예수께서 자라신 나사렛에서 선지자로 인정을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 아들의 은혜의 사역이 저들에게도 구원의 능력으로 누려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역사와 민족을 초월해서 중요한 사실이다. 1세기의 나사렛 사람만이 아니라 21세기의 이 부산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육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와 영원한 심판주로서의 진정한 그리스도로 받아 드려지기를 주님은 바라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귀중한 것이 무엇일까? 직장, 가정, 국가, 그런 것들은 귀중히 여기면서 신앙(信仰)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 사회와 그런 사상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가련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람들에게 가장 요긴한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 수 있다면 그것부터가 참으로 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은 선택항목으로 생각할 뿐, 인생에 가장 귀중한 필수항목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은 비극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박애정신을 가진 4대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만 알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안타까움 이요 인생에 있어서 영원과 연결되는 크나큰 손해이다.

이 말씀이 마무리 되는 부분에서 나사렛 사람들의 가장 치명적인 손실을 마태와 마가는 기록하고 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라”(58)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막6:5)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시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표적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거절하셨던 것을 앞에서도 이미 본바 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2:38~39)

하나님은 능력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라 우리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함께 일하신다. 바꾸어 말하면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주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고 우리에게 당부하는 것이다.

이미 허락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나의 믿음을 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쓸데 없는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믿음으로 주님과 가까이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 속에 이루시는 놀라우신 주님의 역사를 기뻐하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고향과 이 역사 속에 오신 의미를 알고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날마다 우린 삶 속에 놀라운 기적들을 베푸시는 놀라운 경험을 늘 경험하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