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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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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24~30, 3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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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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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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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3:24~30, 36~43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지난번의 첫번째 비유와 상당히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그 의미하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씨를 뿌리는 밭의 비유에서는 씨가 떨어지는 곳이 의미하는 것은 각자의 마음이었지만 여기서는 바로 세상을 의미하고 지난번의 씨앗은 복음이었다면 오늘 본문의 비유하는 씨앗은 하나님의 자녀와 원수 마귀라는 상징을 가진다. 앞의 비유는 씨가 떨어지는 밭이 문제였다면 여기서는 같은 밭에 떨어진 씨앗이 문제가 되고 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 했는데 사실 이 비유는 농사를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는 가장 일반적이고 익숙한 내용이다. 저는 어려서 보리와 귀리, 벼와 피가 함께 자라는 것을 경험한 내용이라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이렇게 가장 일반적인 일들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가장 신령한 의미를 일깨워 주고 계시는 것 또한 주님의 가르침이시다.
이 역사 속에서 선과 악이 세상 끝까지 함께 하고 있음을 비유하시는 말씀이시면서 하나님의 밭인 교회 속에 좋은 씨앗과 암께 가라지가 자랄 수 있는 경계도 주고 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이 천국 비유 중에서 예수께서 직접해설하신 귀중한 교훈이다.
Ⅰ.좋은 씨와 가라지의 출처를 말씀하고 있다.(24~25, 37~39f)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37)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세계에 언제나 좋은 것들 만을 주셨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지으신 바요 당연히 주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한가지 한가지를 지으실 때 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 10, 12, 18, 21, 25)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심으로서 창조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31)고 확인해 주고 있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이라 했는데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이라 했고 이를 해설하시기를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 동산 이름 자체를 [환희의 동산] 이라는 의미로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생명과 까지 풍성히 두셔서 마음껏 그리고 영원히 기쁨과 환희를 누리도록 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간격일 뿐 그런 복된 동산에 악한 씨가 뿌려지게 되는 내용이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 내용이 바로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25) 라는 내용이다. 특히 주님께서 해설하시는 내용에서 이를 더욱 분명히 하고 계신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38~39f) 하나님은 세상에 좋은 것 주시려고 하시지만 언제나 어두움의 세력은 틈을 타서 가라지를 심는 악한 짓을 세상에서 쉬지 않고 계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좀더 열심으로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25) 라는 경계 역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영적인 잠을 경계하시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두움의 시간과 역사, 어두움의 장소는 마귀의 활동무대요, 가라지가 뿌려질 수 있는 경계의 시간이다. 가라지는 언제나 잘 때 뿌려짐을 명심하고 영혼의 잠을 자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의 변할 수 없는 확신은 악한자들의 역사는 언젠가 끝날 때가있다는 사실이다. 틈만 나면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 마귀를 결박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악의 세력은 이미 묶임을 당하고 남은 발악을 다하면서 마지막 까지 할 수 있는 온 갓 방해 공작을 동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절망적이지 않은 사실은 좋은 씨와 가라지를 해설하시는 말씀 속에서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는 말씀은 본질적으로 종자가 변할 수 없음에도 여기서 “아들들”이라고 말씀 하심으로써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은혜로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의 자녀로 호적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심성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힘을 다해 이 역사의 밭에 좋은 씨를 심고 영광과 기쁨의 추수의 날을 기다리는 소망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Ⅱ.가라지를 마지막 추수 때까지 두는 이유.(26~29)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가라지의 특징은 ①곡식과 함께 자라는 가라지이고 ②결실할 때까지는 곡식과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③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날 때부터 구분을 한다.[모판의 피사리]
보리 밭이나 볏 논을 보면 가장 구체적으로 일반인들조차 모두 구분할 수 있는 차이는 바로 “결실할 때” 즉 이삭이 나올 때이다. 보리밭에 귀리나 벼논에 피는 곡식보다 반드시 키가 더 커서 곡식위로 이삭을 내민다. 알곡과 가라지를 숨길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열매라는 사실을 또 한번 확증해 주고 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6~18) 아무리 숨기려 해도 자연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열매가 실체를 폭로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좋은 씨앗도 가라지도 여기에 예외가 없다.
일반적인 농사법은 잡초를 뽑아 주는 것이 농사일 중에 하나이다.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은 언제나 가라지가 곡식보다 더 왕성하게 잘 자란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일손을 핑계로 주로 제초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환경적으로나 곡식에나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가라지를 뽑는 일은 결실할 때에는 사실 불가능한 이유는 대개의 가라지의 뿌리들은 곡식의 뿌리와 얽혀 있어서 주님께서 비유로 주신 경계가 추수를 앞둔 시기에는 어렵다.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28b) 이것은 비단 종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세상에 악이 이렇게 우성 하도록 왜 버려두느냐?”고 항의 하는 사람들은 비단 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조차 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이 일조차도 택한 백성들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다.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29)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시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밭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우리각자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존해주시기 때문임을 확신하시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Ⅲ.알곡과 가라지의 처리의 분명함.(30, 39b~43)
(30)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3)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마지막부분에서 주님은 좀더 분명히 좋은 곡식과 가라지의 종말에 대해서 분명히 하시고 또 가라지의 악영향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계신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30) 하셨는데 가라지가 먼저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이고 곡식은 “내 곳간에 넣으라”는 선언을 하신다.
이를 다시 해설하여 이르시기를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39b~40)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사람보다 유용하게 사용하신다. 그것은 불순종으로 타락한 일련의 천사들 외에는 철저한 순종을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특권을 주시지는 않으셨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들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길 뿐만 아니라[히1:14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이 역사의 마지막에 추수꾼으로 가라지 같은 어두움의 세력을 섬멸하는 심판의 도구로도 쓰신다. 오늘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들을 천사들보다 유용하게 귀하게 쓰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유용한 하나님의 도구로 역할 할 수 있기를 …
여기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30)하신 내용을 해설하시면서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41~42) 하신 말씀에서 두 가지의 가라지들의 역할을 말씀하시고 계신 사실이다. ①‘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 ②‘불법을 행하는 자들’인데 이 두 가지는 언제나 주님께서 경계하셨던 항목이다.
①‘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6~7) 라 경계하셨고 이 사실을 바울 사도의 경계에서도 읽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우리가 형제 자매건 어린 아이건 실족케 하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것임을 이 비유에서도 지적하고 계신다.
②‘불법을 행하는 자들’ 더불어 어디서나 한결같이 경계하시는 내용 중 하나이다. 산상보훈에서도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하심으로써 불법을 행하는 것이 결국 가라지의 역할임을 아울러 경계로 말씀해 주시고 계시다.
그러므로 오늘도 마지막 추수 때를 향하여 달려가는 역사 위에서 이 두 가지의 경계를 우리의 삶 속에 교회 속에 점검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1b~42) 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곡들에게는 영광이 약속되고 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43)
하나님은 구약의 다니엘을 통하여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밭에서 충실하게 결실한 알곡들에게도 같은 귀한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Conclusions :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은 다 아름답고 좋은 것들 뿐이었다. 그러나 방심한 하와의 마음에 가라지를 덧뿌린 마귀는 잠자는 어둠의 시간과 장소마다 계속 가라지를 덧뿌리는 역사를 이 역사의 마지막 주님께서 의의 심판을 위해서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이 역사의 중심에 보내셔서 생명의 씨앗을 지속적으로 뿌리고 계신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3:7~10) 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씨로 인한 하나님의 자녀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을 구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악을 제하실 수 있으신데도 악을 뿌리 뽑지 않는 이유는 역시 좋은 알곡들을 다칠까 봐 아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 역사의 마지막까지 좋은 씨앗과 가라지는 함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좋은 씨를 뿌리는 일에 더욱 열심이어야 함을 도전 받는다. 왜냐하면 가라지가 계속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려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씨앗을 더 열심히 뿌려야 한다는 이유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추수 이후의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통치를 이사야를 통해서 증거 하신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65:25)
좋은 알곡과 가라지의 결국은 분명히 다름을 알고 추수 때가 다가오는 이 역사의 밭에서 우리 좋은 알곡을 키워 하나님의 곡간에 추수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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