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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님에 대한 적대적인 여러 가지 불신의 징조들과 행위들을 11장에서부터 이 12장에 이르기 까지 상고해 왔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36) 라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던 세례요한의 제자들을 통한 회의감(懷疑感)과(11:1~19)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는 갈릴리 도시들의 불신과(11: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들과 같이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초대(11:25~30) 그리고 좀더 적극적인 주님에 대한 반대의 행동들을 보았는데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이삭을 비벼먹은 것에 대한 반항과(1~8) 안식일에 병 고침으로 인한 트집(9~21), 주님의 치료의 이적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은 것이라는 비난(22~37), 그리고 지난 이 시간에는 표적을 요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대한 주님의 무덤 속에 지내신 3일간의 표적과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와 스바 여왕의 지혜사랑의 행위를 비롯해서 불신하는 악한 세대에 대한 일곱 귀신의 점검을 당시 세대를 비유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불신에 대한 증거를 상고해 왔었다.
오늘은 주님의 혈육들의 불신기사(不信記事)와 함께 진정한 하늘의 가족에 대한 조건과 자세를 보게 된다.[막3:31~35; 눅8:19~21]
성경에서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후에도 최소한 4형제와 둘 이상 되는 누이들을 낳은 것으로 예수께서 고향에 가셨을 때 그 곳 사람들이 증거 하는 것으로 이 마태복음에 나타난다.[13:55~56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
마가복음3:21에 보면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는 기사를 접하게 되는데 육신으로서 안다고 하는 것이 믿음에 있어서는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깨닫게 하는 내용이다.
또 다른 기사는 요한 사도의 기록인데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7:2~5)는 내용은 육신의 형제들의 불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울 사도는 평가하기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3~14)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주님의 육신의 형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육신적인 관계로 생각하고 불신한 것인데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가지고서도 신령한 영적인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
Ⅰ.육신의 혈연의 관계를 무시 하신 것이 아니다.(48~49)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사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의 메시아를 낳으리라는 전갈을 듣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는 믿음의 고백을 드렸지만,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일로 수많은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예수를 낳은 후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갔을 때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눅2:34~35f)는 축복 아닌 축복은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로서의 삶이 한 순간도 편치 못했을 것이다.[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 갔다가 잊어버렸다가 찾았을 때나(눅2:41~52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막3:21 친족들이 예수를 미쳤다고 붙들고 나왔을 때나, 특히 십자가에 달리실 때(요19:25~27)
더러의 사람들은 이 본문을 오해 한 나머지 믿음의 사람들은 혈육의 관계를 전혀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체적인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그 모진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고 계신 기록을 본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7)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다음 계명이 맨 먼저 부모 공경인 율법 정신은 물론이고, 나중 바울이 에베소의 디모데에게 주는 교훈을 볼 때도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는 가르침은 이것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하나님의 법 정신을 왜곡시킨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안다고 큰소리쳤던 바리새인들이었다.(마15:4~6; 막7:10~13)
혈육의 관계가 영적인 관계로 거듭 난다면 그보다 귀할 것이 없다.[영육의 형제] 믿음의 가정들이 영적으로 하나된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정으로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가족 관계야말로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그만큼 신앙이 쉬울 수 있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들이 육적인 관계에 영적인 관계로 하나가 되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는 가족관계가 되시기를 …
Ⅱ.하늘 가족의 의미.(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제자, 헬,마데테스(mathetes) 배우는 사람, 훈련 받는 사람, 스승을 닮고자 하는 사람, 스승을 좇아가는 사람]
성경은 최초의 가족으로 시작하고 계속 한 가족의 역사로 시작하여 완전한 가족을 추구한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된 하늘의 백성으로 거듭난 새 사람들이 모인 하나님의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기도 하지만(롬12:4~5; 고전12:12) 가족으로 표현한다.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묘사하는 부분은 NT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히3:6)
우리는 이러한 영적 공동체인 교회를 가장 자연적이고 흔한 가족관계에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고 또 가족관계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야 한다.
1.가족은 무엇보다도 피로 맺어진 혈연(血緣) 관계이다. 우리는 이 세상 도처에서 피가름의 무서운 관계들을 가장 자연스럽게 본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흔히 듣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사실이다. 세상의 형제 자매들이 같은 혈통과 같은 피를 타고 났다면, 거룩한 가족인 교회야말로 더욱 피를 나눈 관계이다. 이것은 그냥 이념적으로 생각으로만 그렇게 여기려고 애써서는 안된다. 이것이 사실적으로 실감 되는 자만이 하늘의 가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려진 거룩한 피는 오늘도 교회라는 거룩한 공동체 속에 속한 모든 형제 자매들 속을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다. 믿습니까? 이것이 의식되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진정한 하늘의 가족이라고 할 수 없다.[실제로 육신의 가족보다 더 가깝게 여겨져야 한다.] 세상의 혈연은 세상에서 썩어지고 없어질 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속에 지속적으로 흐를 것이다. 믿습니까? 우리가 매 주님의 날마다 나누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역시 이것에 대한 확신이다. ‘우리는 이 피로 가족이 되었고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었다’고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같은 피를 나눈 형제 자매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거룩한 하나님의 집인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족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애급에서 문인방과 문설 주에 발린 피가 삶과 죽음의 기준이 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마귀적인 죄악 된 세상의 가족으로부터 하나님의 가족을 분리해 내는 기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고 거듭난 자들마다 이제는 썩어질 세상의 피가 아니라 영원하신 생명이신 예수의 피가 계속 여러분들의 몸과 영혼 속에 흐르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사랑의 공동체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우리 모두는 신부로서 존재하는 복된 신혼살림을 계속하는 곳이 교회 공동체이다.[이래서 처음 사랑을 잃어서는 안된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사랑으로 구성되는 공동체이다. ‘강충성군은 이겸손양을 진실과 마음과 진실을 다하여 사랑하는가?’ 라는 결혼 서약과 함께 가정은 비로소 이루어지고 이 육신의 결혼관계조차도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시는 바울 사도의 당부를 듣는다.
①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이다. 노아의 가족이 바로 여기의 모형이다. 영원을 함께 나누는 가족 속에서 우리의 가치를 찾고 살고 죽는 것을 함께 하는 가족이 바로 교회이다. ②모든 것이 나누어지는 관계다. 남들은 좋고 궂은 일에 진정으로 하나되지 못하지만 아픔도 고통도 진실과 사랑으로 분배되고 나눠지는 곳은 사실 가족밖에 어디 있겠는가? 교회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렇지 못하다면 회복해야만 한다. ③허물이 감추어지는 관계다. 어떤 수치스러움도 가족이기 때문에 감추어지고 가려지는 것이 가족이라면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이다. 어떤 것이 수치로 드러나고 조롱 당한다면 그것은 벌써 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④희생하는 공동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희생하셨듯이 이제는 주님의 희생으로 은혜를 입은 자가 희생할 각오로 섬기는 기관이 교회이다. 진정으로 혈연의 자식들을 위한다면 교회 속에서 더욱 희생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3.영적인 가족은 수평의 공동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시는 말씀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맏아들로[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히1:6] 우리 모두는 말씀처럼 주님의 동생들로 대우하시고 계신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의 앞에서 평등한 관계이다. 어떤 직책을 가진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직책이 없다고 해서 낮아지는 것도 없다. 교회라는 가족 속에서 존귀를 받으셔야 하는 분 높임을 받으셔야 하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와 맏형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23:8~10)
아직도 우리의 맏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OT적인 형태를 고수한다면 거듭난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할 수 없다.[창49:5~7특이한 기록을 본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 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34장 디나)]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한 동일한 제사장직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복음 시대에 대제사장은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셔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실 뿐이다.[롬8: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거듭난 가족 속에 우두머리는 더 이상 이 지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는 주님의 약속을 확신하시기를 …
우리 서면교회는 끊임없이 또 변함없이 이런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Ⅲ.하늘 가족의 조건.(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가족 특히 형제 자매의 관계는 무조건(無條件)으로 구성되지지 않는다. 그 가문에 나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성씨를 가지게 된다.[내가 李家인 이유는 …] 하나님의 가족으로 거듭난 성씨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새이름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에 의해 거듭나야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 가문에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하셨는데 죄악의 몸과 영혼이 물속에 완전히 장사 지냄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하나가 되고 물에서 올라옴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흐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나는 것이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가족이 절대로 될 수 없다.
특히 여기 주님께서 하나님의 가족의 조건으로 말씀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 라는 말씀을 쓰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데도 역시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요9:31)라는 말씀은 진리이다. 가족은 분명히 가장이신 분의 뜻을 존중하고 받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 라고 할 때 거기에 반대되는 자는 분명히 포함되지 않는다.
범사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하나님의 가족이다. 예배하는 주님의 날은 물론이고 세상에서도 자신의 욕심이나 욕망보다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하늘의 가족이다.
사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많은 돈도 요구하지 않으시고[조선시대에 양반이 되려면 돈을 많이 지불하고 양반을 샀지 않았는가], 학벌도 요구하지 않으시고[세상의 기업체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만 요구하지 않으시고[세상의 시험처럼], 체격이 좋은 사람만 요구하지 않으시고[육군사관학교], 누구든지 세상의 어느 가문에 낫든지, 어느 지역 출신이든지 상관치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단순한 사랑 때문에 OT의 모세도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1~14)고 말하고 있지만 복음 시대의 조건은 더더욱 쉬워서 단순한 순종만 있으면 가능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이렇게 단순함에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더 복잡한 조건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도 있었고 오늘날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는 일은 절대로 복잡하지 않음을 기억하자. 십자가의 피로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자는 누구나 형제요 자매이다. 하늘의 가족은 운명을 같이 하며, 모든 허물이 감추어지고, 스스로 희생하는 수평적인 공동체이다. 천국 가족의 조건은 단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것 외에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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