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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12:22~29 2005-03-13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우리가 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역사 즉, 육신으로 계실 때 즉, 복음서들에서의 사역을 이해 함에 있어서 오순절 이후의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오고 난 후의 기록들과 혼돈 하는 부분들이 더러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아래 나셨고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갈4:4) 아직도 구속의 십자가 은혜를 이루시기 이전의 상태로 아직도 율법이 구속력을 가지고 있고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율법과 복음이 함께 나타나는 상황으로 사도행전 이후의 기록들과 더러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성령의 역사와 임재 등등]

그러므로 복음서의 어떤 부분들은 오순절 이후의 구원 역사들과는 구별해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더 쉽게 이해를 한다면 십자가의 구속이전과 복음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신 후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신 완성된 복음의 시대와도 구별을 해야 혼란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복음서의 어떤 부분들은 사실 구약적인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오늘 제목으로 선택한 말씀 역시 그런 부분이다. 물론 구속이 완성된 이후에 성령의 역사로 나타날 어두움의 세력의 제압은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당연한 것이지만 예수께서 아직 육신으로 계실 당시의 성령의 역사는 아직 구약적인 모습과 다르지 않고, 예수께서는 소위 다락방 강화라고 말하는 요한복음 14~16장에서 비로소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성령의 오심을 약속하신다.

주님의 계속되는 치료의 이적 앞에서도 종교 지도자들의 반항은 계속되고 오늘 본문에서 37절까지는 삐뚤어진 바리새인들의 반대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으로 한 마당을 이루고 있지만 깊은 신앙적 진리를 담고 있고, 또 한번에 상고하기는 너무 벅차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그 절반으로 나누어서 다음 주까지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Ⅰ.주님의 치유 은혜에 대한 반응.(22~24)

(22)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22f) 이미 9:27에서 시각장애자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을 상고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장애자는 그보다도 더 비극적이다. 왜 그런가 하면 시각장애일 뿐만 아니라 “벙어리 된 자”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더욱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시각장애는 육신적으로는 분명히 치명적인 장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적으로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각 장애자들 중에는 눈이 멀쩡하게 성한 사람들보다 믿음이 훨씬 좋은 분들이 얼마든지 있다.[F. J. Crosby]

왜 그것이 가능한가 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어쩌면 시각장애가 된 사람들은 성한 사람들보다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여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장애자가 더 비운(悲運)인 것은 그는 들을 수 있는 통로마저 차단되어 버렸고 그 원인을 본문은 ‘귀신들려’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스스로 복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이 사람을 예수께로 데리고 와준 고마운 동료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22b) 오늘도 이런 영적인 장애자들은 성한 사람들인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는 절대로 말씀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이 귀신이 완전히 절망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이 사람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데리고 왔고 주님 앞에 와서 해결되지 않는 비극은 없다. 믿습니까?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영육으로 차단된 장애를 완전히 회복시켜줬고 당사자나 그를 주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러나 여기에도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나게 되는데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23) 단순한 믿음의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면서 그대로 메시아를 만난 기쁨을 표현하며 감격하고 있다. 특히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는 표현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그리스도의 대명사 즉, 메시아의 별명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을 회복 시키시는 일이 바로 그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는 메시아께서 오셔서 하실 일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사건을 두고 보는 시각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또 다른 무리가 있었는데 다름아닌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었다. “…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24)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들은 가르침의 자리에 있다고 하는 것 때문에 이 예수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하다는 인간적인 계산이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소화하지 못하고 마는 비극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일찍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고 아주 여기에 딱 맞는 말씀을 하신바 있다.

Aiden Wilson Tozer(1897~1963)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있으나 예배가 없다. 기도회에는 참석하지 않으면서, 단지 교회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교회의 예산을 얼마나 지출해야 할지 계산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교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그를 기도회에 참석하게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예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운영하고 이끌고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모순이다. 교회 운영위원회에 속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의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투표할 자격이 없다.”[A. W. 토저, 예배인가 쇼인가!, 서울, 규장, 2004, p39]라고 경계했다.

영적이지 못하면 교회 일조차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어 가려는 육신적인 정치력을 발휘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단순히 구제하는 일을 맡기기 위한 사람을 뽑으면서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들’(행6:3)을 선택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을 섬기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엄청난 불경건(不敬虔)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는 주님의 은혜를 온전히 은혜로 받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를 …



Ⅱ.스스로의 분쟁은 모든 것을 깨뜨린다.(25~27)

(25)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27)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주님께서는 이 바리새인들의 사악한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도 인간과 사회 관계에 있어 귀중한 영적 진리를 가르치시고 계신다.

주님은 어떤 말하는 사람의 그 소리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을 하게 되는 마음 즉, 생각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 그래서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여기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저의 생각을 아시고 이 말씀을 들으면서 판단하고 있는 여러분 모두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계시다. 믿습니까?

여기에 계속해서 “스스로 분쟁하는” 이라는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나라’, ‘동네’, ‘집’ 황폐해지고 서지 못하리라고 경계하신다.[주님께서는 영적인 것에서 가장 일반적인 교훈을 주고 계신다.] 그것이 비록 ‘사단의 나라’일지라도 그럴진대 ‘스스로 분쟁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영적(靈的)이던 육적(肉的)이던 관계없이 쪼개지고 나눠질 것이라는 경계를 주고 계신다. “여기에 [교회]가 해당될까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이것은 신령(神靈)한 것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분쟁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위이다.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27m) 하셨는데 누가복음9: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막9:38) 라는 내용들을 말씀하시면서 그러면 그들도 바리새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낸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하심으로써 저들이 답변 못한 논리로 꾸짖고 계신 것이다.

물론 후에 사도행전19:13~16에도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는 기록들을 읽게 된다.

오늘 날도 귀신을 쫓아내는 것 같은 많은 방법과 모습들이 성경에 검증되지 않은 방법들로 행해지고 있는 것들은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마지막 시대에 있어질 거짓 기적과 어두움의 세력들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경계를 가져야 할 것이다.(고후11:14~15; 살후2:1~12→ v9~12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의 중요한 요지는 어떤 단체이든지 ‘스스로 분쟁하는 것’은 깨어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경계이다. 여러분 모두가 진리와 성령으로 하나되어서 어두움의 세력과 거짓을 몰아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목표인 천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편에서 진리와 하나되어 행함으로 영광에 이르는 모두가 되시기를 …



Ⅲ.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이미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28~29)

(28)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주님의 가르침은 점점 핵심으로 다가서고 있다. 아담의 범죄 후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마귀 사탄의 수하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특별한 피조물로서의 인간 됨을 잃어버리고, 헛된 것들에 종 노릇 하는 허약한 존재, 만약에 하나님께서 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찾아 주시지 않으셨다면 그대로 두어도 멸망으로 갈 가련한 운명의 인간 군상들…, 에덴에서 잃어버린 자유의지와 범죄 할 수 밖에 없는 가시와 엉겅퀴가 난 환경…, 그래서 물로 한번 쓸어버림을 당하고도 여전히 마귀 사탄의 수하에서 이제는 불로 태우기 위해서 예비 된 이 지구촌과 우주 그리고 마지막 죄에 대한 심판, 이것이 범죄 한 우주의 중심인 이 초록별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두의 운명인데…, 이렇게만 계속 한다면 그야말로 절망 뿐이다.

그러나 이 범죄 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도 구원의 메시지를 계속 외치셨던 주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리스도를 그 혈통에서 나게 하시고, 이 구세주의 최종적인 사역은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祭物)이 되심으로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요일3:8) 모든 어두움에서 종 노릇 하는 순종하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이미 창세전에 이를 계획하셨다.

이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28)고 확인해 주고 계신다. 마귀는 하나님의 영(靈)이 아니고는 제압될 수 없고, 이런 입장에서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셔서 능력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마다 이미 하나님의 통치는 시작되고 있었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후에 이러한 권능은 더 완벽하게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다.

어두움의 세력에 잡힌 한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성령의 감화와 함께 들려지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세례를 받고 거듭나는 심령마다 어두움이 아니라 이제는 빛의 통치가 시작되는 놀라운 언약이 오늘 우리의 역사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약속을 바울은 확인하여 이르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더 이상 정죄는 중단되고 구원의 자유와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을 다스리게 되어 비극과 정죄의 종말이 아니라, 영광의 약속을 바라보고 즐거워 하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28)는 말씀처럼 바울 사도는 다시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5:18)고 선언하고 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29)는 가장 평범한 진리는 역시 영적인 논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씀은 범죄 후에 뱀에게 선언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하신 말씀에 확증이다.

영원히 영원히 인간세계를 지배할 것 같던 인류의 영원한 원수 마귀 사탄은 십자가의 은혜로 제압되고 귀신과 마귀의 처소가 되었던 모든 범죄자들의 마음 밭은 이제 십자가의 은혜로 인하여 성령의 처소가 되어 광명이 비치게 되었다. 할렐루야!

이 우주의 영원한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제아무리 강한 마귀 사탄일지라도 결박하고 그 귀신들의 처소들을 깨끗케 하고 광명의 등불을 키게 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통치를 받아 들이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영원히 그리고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 다시 오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십자가의 희생으로 통한 성령의 역사로 어두움의 세력인 마귀 사탄이 제압되고 광명과 구원의 빛이 권능으로 역사하시기를 …

육신의 정욕인 스스로의 분쟁을 중단하고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1~3) 더 이상 마귀 사탄이 발붙이지 못하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