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 선택된 대단한 민족이라는 긍지를 가진 유대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손상하시면서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족보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을 우리는 생각했었다. 오늘은 그 족보의 말미에 죄악의 역사에 구원의 주님을 탄생시킴에 필요했던 요셉과 마리아의 헌신적인 순종을 통하여 구세주 탄생의 구체적인 모습과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이름 지어진 주님의 언약과 그것을 성취하시는 신비의 역사를 헤아려 보도록 하자.
Ⅰ.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18~20, 24~25f)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4)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이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는 어느 시대 속에서나 경건한 사람들을 사용해 왔다. 어떤 종파에서 처럼 한 인간인 마리아를 신으로 받드는 것 까지는 성경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도구로서의 요셉 마리아 부부는 대단한 신앙의 사람이었음에 틀림없고 오늘도 역시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어져 간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여기에 표현 되는 대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요,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는 자신의 신세나 운명은 이미 하늘에 맡기는 절대적인 순종의 사람임을 본다.
1.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불려진다.(19~20)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한가지 신기한 것은 구약의 열 두 형제 중에서 애굽으로 팔려가 집안을 구원한 의로운 요셉도 야곱의 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보호자로 선택된 사람, 육신의 아버지 역할을 한 사람 요셉의 아버지도 야곱이라는 사실이다. 과연 역사 속에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은 요셉에게서 나타나는 신앙의 덕목은 어떤 것인가?
①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는 사람이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19f) 하나님께서 보실 대 의로운 사람이라는 의미처럼 …
②나보다 상대를 배려 하는 사람이었다.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19b) (헬, paradeigmayizo) ‘본보기로 만들다’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6)
③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20f) ‘기도의 사람’ 이라고 해도 좋고 이 안타까운 일을 하나님과 의논하는 사람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④꿈의 사람이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20m),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24) 구약의 요셉도 꿈의 사람이었고 예수를 보호하고 키운 아버지 요셉도 꿈의 사람이었다. 이 후에도 중요한 역사가 있을 때 마다 하나님은 꿈으로 경고와 약속을 주셨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마2:13)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2:19~20) 요즘 우리의 꿈이 성경 속의 요셉의 꿈과는 같지 않다고 하더라도 신앙의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⑤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24b)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25b) 많은 거리끼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
⑥사랑의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8)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24b)
⑦절제의 사람이었다.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25)
나는 오늘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아니 모든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는가?
2.순종의 여인 마리아.( 눅1:26~38)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두 번씩이나 은혜를 얻었다고 선언하는 천사의 말은 결국 정혼하고 결혼할 마리아가 아직 요셉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전인데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선고 였다. 우리가 여기서 이해 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경우 하나님의 은혜 받은 것이 현실의 우리의 절망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은혜는 반드시 현실에서 좋은 것 만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상황과 종류에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합력하여 선이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사악함으로 이루어 지는 일이라면 애써 거절 해야 하겠지만 마리아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라거나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는 주님의 역사를 자신의 미래의 운명과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자세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는 순종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역시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의 입장과 처지 다 재보고 ‘예, 아니오’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감당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세에 의해서 요셉과 마리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 시킬 일은 없겠지만 오늘도 여전히 순종과 믿음으로 믿음의 후손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Ⅱ.이것은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확인 된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0)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2)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육신을 입고 오심에 대한 계획은 적어도 창세 전부터 계획 하신 것이요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전의 예정은 정확하게 말하면 구속의 예정이요 교회 예정이며 십자가의 희생의 계획이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서두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4~5)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일을 가장 구체적으로 예언한 선지자는 바로 이사야 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했고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에게서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징조라는 것이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자체를 가리켜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눅2:12)고 증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엄청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지만, 사실 가장 귀중하고 중요한 표적과 기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탄생과 삶과 역사였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사람과 함께 호흡하신 것 자체가 신비요 기적이며 이 기적이 사람의 영원한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하는 데서 더욱 신비이다. 즉 믿고 순종하면 영생이고 거절하면 지옥이 된다는 중요한 표적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시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이 믿어지고 그 분이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이 역사 속에 오셔서 우리의 당한 온 갓 시련과 고초를 다 겪으시고 최종적으로 십자가를 나를 위해 기꺼이 지셨다는 흥분과 감격을 감추지 못하지만 불신의 사람들은 ‘처녀가 애기를 나! 거 사생아 아니야?’ 라는 식이다. 그러나 요즘 과학이 발달 하면서 이런 전혀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신비가 이해되는 수준에까지 가고 있으니 감사와 우려를 갖게 할 뿐이다.(204:1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아멘-)
우리는 다른 기적을 다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바로 기적의 핵심이 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신비임을 고백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 이상 어떤 기적도 중요치 않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이 엄청난 기적을 품고 살고 있는 것이다. (믿습니까?)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라는 말씀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로 통해서 우리의 역사 속에 왔고 오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과 일꾼들은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힘쓴다면 바로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라고 확신하고 행해도 무리가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천사를 통해서만 이루시는 것이 아닌 오늘 바로 나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라는 확신으로 열심을 내는 모두가 되시기 바란다.
Ⅲ.나시기 전부터 이미 그 사역이 결정되어 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어떤 얘기 보다도 오늘 말씀의 핵심은 바로 나시기 전에 지으신 “예수” 라는 이름,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 이름은 가끔 나타나는데 “여호수아” 또는 “예수아” 라는 명칭들로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는 말이다. 오늘 본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말씀은 바로 구약 성경에서부터 계속 적으로 나타났던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속성을 담은 이름이다.
1.나시면서부터 죽어야 하는 이름이다. 모든 사람은 다 살기 위해서 나고 오래 살기를 소원하고 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이름은 나시면서부터 죽어야만 되는 이름으로 나셨다. 그럼으로 “예수” 라는 이름 속에는 처절한 고난과 절망과 고독과 수치, 죄로 인해 인간에게 왔던 모든 저주들이 다 올려진 절규의 이름이다. 인간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죄로 인한 저주가 모두 안겨진 인류의 죄를 모조리 져야 하는 이름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3:14)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33세의 인생, 살아야 될 나이에 죽어야 할 이름 “예수”는 바로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이름이다.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하여 죽음을 박차고 일어나신 이름이다. 그 이름 때문에 오늘 내가, 우리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 사망의 늪을 벗어나 영원한 영광을 기대하며 소망의 삶을 살게 되었다. (믿습니까?)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또 다른 의미는 제한된 이름이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자기 백성” 만이 구원 받는 다는 제한이 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또 하나의 초청의 음성이다. 자기 백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순종으로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5~16, 6:40)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9)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요일5:1f)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저희의 어떤 죄가 되었던지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 이제 죄에 대한 공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의 제사 앞에서 해결 되게 되었다.
2.사람과 가장 가까운 이름이다.(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전부터 하나님은 오로지 두려움의 하나님 뵈면 죽어야만 하는 것으로만 아는 분, 죄의 인간이 도저히 가까이 하지 못할 분이셨던 그 하나님은 이제 사람과 장막을 같이 하시기 위해서 임마누엘로 우리 곁에 오셨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자 마다 그분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분의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계실 때도 사람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육체의 한계를 패하시고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육체로 오셨다가 죄를 해결하시고 가심을 오히려 기뻐 하셨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위하여 육체로 오셨다가 이제는 그의 백성들 모두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약속하셨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Conclusions: 이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도 의로운 사람 요셉과 자신의 처지나 입장을 돌아보지 않고 순종하는 마리아와 같은 충성된 사람들이 쓰임을 받았고 오늘도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들을 통하여 육신으로 오셔서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사망을 멸하신 생명의 복음은 확산되어 진다.
이 구원의 역사는 창세 이후로 지속적으로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이면서 표적 중의 표적으로 “…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사49:23; 롬10:11) 믿지 못하는 자는 걸려 넘어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28:16) 라고 약속하고 계시다. 사도 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는 은혜의 약속을 확인해 주고 있다.
나시기 전에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는 제물로 죽기로 결정된 이름이요, 두렵고 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주신 이름 임마누엘이시다. 믿는 여러분 모두에게는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 순간마다 신기하게 여기는 이적중의 이적이 되시고,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약속대로 예수의 이름이 구원과 소망의 이름이 되시기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