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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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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7: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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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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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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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신 후에 다시 세상에 남겨두고 가실 자신의 사역을 이어갈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부분으로 v19까지 계속되지만 편의상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상고하겠지만 역시 중복되는 부분도 더러 있을 것이다.
또 v20~는 제자들을 통해서 믿게 될 우리들 까지를 위해 기도하셨다 하였지만 당시의 제자들 즉, 사도들은 분명히 일반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는 달랐다. 공관복음에서는 이 사도들에 대한 선택과 이름들과 역할을 좀 더 분명히 다루고 있다. “사도[ἀπόστολος, 전권대사, 전령, 보내심을 받은 자, 복음의 대사]”
특별히 사도들을 택하시기 전에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6:12~13)
그들의 이름들은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10:2~4; 막3:16~19; 눅6:14~16)고 거론된다.
직접 주님께서 사도들을 사용하실 목적은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3:14~15)
사도의 자격은 위에 거론한 목적대로이지만 사도행전1:21~22f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할 한 사람을 뽑는데 거론된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직접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기적을 행했으며 [눅9:51~55, 사마리아-하늘에서 불을 내려…10:17 귀신들도 항복] 공생애 기간 항상 주님과 함께 하였고 복음의 핵심인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로 정리를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주님께서 처음 부르셨던 12제자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고 오늘 본문 v12의 주님의 구속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를 판 가룟 유다는 OT의 예언대로(시109:8) 이 사도직을 버렸고 그 자리를 바울 사도가 채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울이었던 바울(행13:9)은 앞에서 거론한 자격조건에 맞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다메섹에서 직접 부름을 받았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8)고 스스로 부활을 목격했다고 증거한다.
특히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1:1) 이라고 함으로서 자신의 사도권을 직접 거론하고 있다.
좀더 확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말하거나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사도행전 13장 말미에서부터 14에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바울과 함께 활동한 바나바를 사도로 거론하고 있다. “두 사도”(14:1, 3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5)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그대로 이어받을 사도들이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좀 더 많이 기도하신 것을 그 사도들을 택하시기 전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그들을 택하여 새운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는 자신이 떠나고 그들 스스로 물론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시겠지만 복음을 감당해야 한다는 중요한 그들의 역할 때문에도 아버지께 그들을 기도로 맡겨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서 흔한 표현은 소유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주신 사람들, 아버지의 것, 내게 주신 말씀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 같은 형태들이다. 주신 것과 받은 것을 반복하시면서도 소유 개념은 다르지 않다. “아버지 것이 나의 것 또는 나의 것이 아버지의 것”과 같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Ⅰ.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고 믿었나이다! (6~8)
앞에 16장에서 불완전한 고백이긴 하였지만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16:30) 라는 고백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셨다.
그리고 이 불완전함은 장차 자신이 구속(救贖)을 이루신 후에 오실 성령께서 채우실 것을 확신하시면서 이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 세상에 보내지심 같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이나 계획은 빗나간 적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시는 고백의 기도이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6f)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 어두움의 수하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비치되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이름을 깨닫는 사람들을 주셨다. 하나님의 이름이야 말로 귀하신 이름이며 이 우주 중에 존귀한 이름으로 어떤 대상에게도 더렵혀서는 안되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존심이다.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5b)
십계명에 첫 부분에 명시해 두신 이름이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신5:11)
그럼에도 범죄하는 이방인 중에 대수롭지 않게 더럽혀진 이름이 되었다. 이런 입장에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6f) 라는 보고는 귀한 회복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24) 라는 탄식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6b) 사실 이미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였기 때문에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이 제자들의 귀중한 인식의 변화는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7) 라는 이해의 변화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신 신성이나 능력은 사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으로 아들의 구속 역사를 위하여 주어진 것이고 제자들조차도 이제는 이를 알게 되었다는 주님의 고백이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신 모든 것들; 그것이 치유의 능력이든지 사죄의 은혜이든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고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없이 특히, 이 요한복음에서는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7:16)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물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를 인정할 수 없어서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죽이려고 애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모든 면에서 그들과 비교될 수조차 없는 제자들이 이를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이라고 감사하신다.
다시 지금까지 되어 온 사실들을 자연스럽게 보고하시듯 기도하신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제자들에게 주셨고 그것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믿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이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이라는 표현을 모두 10번을 말씀하셨다, (5:36, 6:57, 8:42, 11:42, 17:8, 18, 21, 23, 25, 20:21).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을 또한 세상에 보내셨다.
이러한 내용은 복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구세주이심을 믿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 즉,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은 다시 세상에 하나님의 소유의 사람들을 찾기 위하여 보내지는 것이다. 오늘날 사도들은 없지만 사도들의 일은 여전히 계승되어 이 역사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번째 오실 때까지 이 귀중한 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일, 사도들이 했던 귀중한 일을 오늘 그의 사람들인 우리가 여전히 감당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Ⅱ.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에…(9~10)
오늘 이 두번째 부분에서는 지금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이유를 다시 말씀하신다. 먼저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9f)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9m) 어쩌면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은 그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핍박하는 자 모욕하는 자들까지도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8)
그러므로 이 말씀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맡겨 주신 그 제자들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계신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9b) 하심으로서 결국 주께서는 하나님의 소유를 지켜 주실 것을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말씀이다.
오늘 우리의 주된 기도도 우리 주변과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더욱 기도하겠지만 하나님의 것 즉,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당부하신 바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 기도는 바로 산상보훈에서 가르치셨던 기도의 실천인 것이다. 그럴 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0) 여기에서는 다시 소유에 관한 이해로 제자들을 통한 감사를 드리고 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10f)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만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라고만 말씀하셨다면 대단히 독선적인 욕심꾸러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얼마든지 선언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이미 바로 앞장에서도 선언하신 바 있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16:15f)
또 앞에 모든 피조물들이 드려야 될 고백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고 계시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사실 이것이야 말로 진실한 고백이다. 엄밀히 말하면 하늘의 백성들은 이 땅에 분 깃을 챙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라는 고백이 안되어서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나의 가진 소유를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사용할 수 있는 청지기 정신으로 살 때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소유를 가지고 제자들을 바로 가르치고 훈련하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0b) 라는 감사를 드릴 수 있으셨다. 실제로 첫 표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제자들은 믿었다는 기록도 상고한 바 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2:11)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영광은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받으신 영광임은 말씀속에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도 귀하게 되고 주님의 기도의 대상이 된 것은 우리 자신들의 본연의 가치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임을 우리가 이해하고 감사로 섬길 이유가 된다.
Ⅲ. 이들을 지켜 주소서! (11~12)
세상에 두고 가셔야 할 이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을 오늘 말씀과 다음주의 말씀을 둘로 나누면 오늘의 내용의 결론은 보존(保存) 즉, 지키심이고 다음 주의 내용은 성결(聖潔) 즉, 세상과의 구별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키셔야 가능한 부분이다.
비록 세상에 남는다 해도 세상에 깊이 파묻혀 세상과 다를 것이 없는 제자들이라면 이미 존재할 가치를 잃는 것이고 이런 자세로는 세상의 원리와 정 반대인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속에 세워 가는 것을 불가능할 것이다.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 아버지 옆으로 가셔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고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11f) 조금 더 가볍게 이해하기 위하여 정리해보면 “나는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라고 바꿔볼 수 있다.
여기 주님과 제자들에게 천상과 세상이 운명적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인류의 저주를 모두 짊어지고 이 세상을 떠나시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시고 3년을 훈련시켜 놓은 제자들은 각박하고 힘겨운 세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물론 세상을 떠나 가시는 것 자체가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기에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셨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11m)라는 요청을 드리고 계신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께로 가는 거칠고 힘겨운 과정은 자신이 감당하시겠지만 제자들이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 달라시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1b) 아직은 성령의 오시기 전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판단이나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제자들이겠지만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성령께서 오심으로 제자들이 영적인 사람들이 되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항상 하나 이셨듯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시는 기도이다.
이제 17장의 마지막부분인 v21~23에서는 이 제자들의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우리 까지도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속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복음의 맛을 보았지만 기적의 떡을 맛보고도 떠나간 사람 즉, 잃어진 사람들을 6장에서도 봤지만(6:66) 그래도 직접 지명하여 택하신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지 않고 지켜 오신 것이 사실이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12f)
그럼에도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12b) 라는 안타까움은 그것이 성경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 안타깝게 사용될 가룟 유다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가끔 거론하는 내용이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은 삼십에 팔고 죽도록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예정하시고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 본래 그런 성격의 사람을 쓰임에 적당하도록 쓰신 것이다(잠16:4).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12:5~6)는 요한의 평가도 그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오늘 우리들도 이왕에 선한 도구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복이다.
제자들의 실족치 않고 보존해 주실 것을 아버지 앞에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먼저 당시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시고 오신 것을 믿게 된 사실을 통하여 오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이 주님의 기도의 응답임이 분명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하셨고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고 고백하신다. 우리를 위해서도 희생되셨고 위하여 여전히 기도하신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셔야만 당연하다.
아직 성령의 오심의 이전의 제자들이 하늘로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계시지 않으심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셨고 이 기도도 응답되었다. 오늘 하나님 우편에서 이 역사 속에 다시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우리가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역시 기도하신다.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기도로 우리 믿음이 지켜지고 있음을 감사하고 제자들의 헌신과 순종을 보면서 우리 역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제자들의 남겨진 역할을 감당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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