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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16:8~15 2021-01-2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오늘의 제목은 우리에게 많은 소망과 기쁨을 기대하게 하는 약속이면서 우리에게는 이미 이루어진 약속이다. 지난 시간의 이 16장의 첫 부분에서는 성령과 세상의 관계를 말씀하셨고 오늘 앞부분에도 역시 그것에 연결되고 있는 내용이다.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저들에게 오셔야만 이해가 가능할 것이고 그 성령의 약속은 반드시 주님께서 가셔야 한다는 말씀이 제자들에게 계속 주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성령의 가르치심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받아 말씀하신 그것을 역시 가르치실 것이며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도 확인하신다.

다만 제자들과 세상을 다루시는 성령의 역할이 완전히 다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주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할 제자들에게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평안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을 향하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과 뜻을 전하려는 제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성령은 심판하시고 책망하실 것이라고 증거하신다.



Ⅰ. 세상을 책망하심은…(8~11)

지난 시간에 이 v8을 마지막으로 간략하게 “…세상을 책망[ἐλέγχω]하시리라”는 이해만을 나눴는데 그 해설이 v9~11에 주어지고 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의 주석보다 성경의 이해야 말로 가장 명확하고 중요한 해석일 것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9) 사람들은 이 부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 아닌 다른 성인을 믿는다고 그것이 무엇이 잘 못인가!’ “죄[ἀμαρτία]”는 하나님의 정하신 규정에 미치지 못함을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이 역사 속에 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요구에 미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것이 세상의 가장 큰 죄,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류가 죄를 범함으로 죽어 창조주와의 단절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여기 세상이라 할 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이가 없는 것은 불신하는 모든 사람들을 [세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8:23~24)

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3:22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10:12)고 바울은 선언한 바 있고 예수께서도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 말씀하신 바 있다.

이렇게 믿음이 생명과 멸망의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하고 아직 어둠에 있는 세상을 일깨우기 위하여 성령께서 감동하여 믿게 하시는 것을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b)고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제목에서 두번째는 “의[δικαιοσύνη]”에 대하여 책망하시리라 하신 v10의 말씀으로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하신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상대적인 옳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으로 앞의 죄의 반대로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라고 말씀 하심으로서 자신의 십자가 구속을 통하여 이루실 것을 증거하신다.

단순히 말해서 하나님의 마련하신 “의[δικαιοσύνη]”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에서 책망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죄[ἀμαρτία]”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표적을 맞출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의 구속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 자신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 속에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①사람 스스로 세워놓은 의의 기준이 불완전함을 세상에 드러내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②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세상은 이 마지막 방법을 거절한다면 남는 것은 책망[ἐλέγχω] 밖에 없다.

이 제목의 세번째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1)는 말씀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하심으로서 죄의 주체가 마귀이며 에덴에서부터 범죄하였다고 증거한다.

히브리서에서도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2:14)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구속을 이루신 목적이 바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2:2)라 거나 또는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엡6:12)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세상 임금”을 멸하시기 위해서였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람을 굴복시키고 종 노릇하게 만들던 “이 세상 임금”의 심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은 주님께서도 이미 말씀하신 바 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12:3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고통 당하시고 죽으심의 구속(救贖)은 마귀 사탄이 심판을 받아 더 이상 자신들의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노략질할 수 없게 만드신 엄청난 역사의 변혁이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세가지를 드러내고 책망하시기 위해서도 구속의 은혜를 통하여 이 역사에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선언하고 있다.

바울은 이 역사의 변화를 선포하기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롬5:17)고 주님의 희생을 찬양하고 있다.

조금 뒤에서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롬8:3f)라고 다시 감격을 고백하고 있다. 할렐루야!



Ⅱ.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12~13)

여기에서 부터는 다시 성령과 제자들의 관계를 말씀하신다. 비록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심을 다해서 장래일을 설명해 주시지만 아직은 육신의 기준 그대로인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조차 주님께서는 인정하시고 그럼에도 약속으로 오실 성령께서 저들에게 임하실 때 비로소 이 모든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지금도 이 원리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신령하고 영적인 진리를 수없이 가르친다고 해도 세상에 마음과 기준을 그대로 가지고 듣고 있다면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2) 앞에서 이미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성령께서 오셔서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는 말씀도 제자들에게 온전히 소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두고 되어질 일을 설명하고 그것 만이 다가 아닐 것이지만 그것을 듣고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면서도 여전히 뒤에 오실 성령을 의지하라는 당부는 계속하신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2)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그 첫째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12f) 예수께서 십자가로 나아가시기전 아직도 당부하고 일러줘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우신 것은 주님뿐이셨고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2b) 하신 것인데 그럼에도 여기에도 소망이 담겨있는 것은 다만 “지금은”이라는 단서이다. 이 말씀은 지금은 못할지라도 시간이 되면 반드시 감당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감당하다[βαστάζω, 짊어지다, 들어올리다, 담당하다, 용납하다]가 의미하는 모든 것들은 장성한 사람이라야 가능한 의미들이다. 그런데 당시의 제자들은 영적으로는 이해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고전13:11f)는 형편임을 주께서 인정하신다.

사실 이것 만으로 절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 각자의 믿음과 신앙의 문제가 지금은 감당이 안되고 장래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감당만 된다면 기대해 볼만 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속 가르쳐도 지금은 비록 이해되지 못하고 오해하는 그들일지라도 자신이 구속의 역사를 이루고 하나님 아버지 곁으로 올라가신 후 보혜사 성령께서 저들을 움직일 때 저들이 감당 되리라는 확신을 제자들에게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3)

신앙에 있어서는 사람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게 하셔야 가능하지만 그 조건은 세상의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임을 여기서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신앙을 잘 하는 것은 주님을 잘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들 한다.

앞에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2) 부정하셨지만 여기서는 “그러나”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로 서두를 시작하신다. 그 조건은 오로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완성된 약속이기 때문에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엡5:18)는 말씀만 순종하면 된다.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불린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14:17) 하였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14:6)시고 성령은 사람들을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문제는 거짓 영이 진리의 영인 체 위장하는 것인데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4~15)고 바울은 경계하였다.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진리를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함께 역사하시지만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2)하여 사탄의 활동을 따라 거짓과 속임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하나님의 성령은 주님의 백성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속이며 어떤 거짓된 것을 가르치는 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영이 아님을 확신해도 절대로 손해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어쩌면 이것은 그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그 진리에 대한 확증이다. 성령께서 바로 뒤에 연이어 말씀하고 있지만 스스로 말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직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으로 보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또 이 땅에 오셔서 그 아버지께서 주신 것들을 증거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실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직 들으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므로 성경에 없는 새로운 것을 증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대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다.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시는 데 성령께서는 이미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창조의 사역에도 함께 하신 내용은 태초의 창조의 현장에 이미 나타나 있다.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그러므로 이미 과거부터 이 역사의 종말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나도 영원히 함께 하실 분이시다. 그러므로 여기의 “장래 일”은 당시의 앞으로 벌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의 구속사를 포함하는 모든 역사를 제자들에게 점진적으로 알려 주실 것이고 요한계시록은 그 절정이다. 그것은 분명히 보여지는 세상의 역사 그 이상이다.

그 대상은 “너희에게 알리시리라”하신 것이다.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알게 하실 것이라는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 사탄은 물론 세상은 절대로 미래를 알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 된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만 알 수 있다.



Ⅲ. 다른 것을 알리지 않으심(14~15)

앞의 말씀에 바로 연결되는 내용으로 역시 보혜사 성령의 사역을 계속 증거하신다. 성령의 가르침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데 그의 인도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르침은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아 말씀하신 것이라는 데서 결론적으로는 성령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가르치시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는 확인이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4)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애쓰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순간의 기도 속에서도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12:28) 하셨다.

잠시 후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도 또 다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라고 고백하시는 것처럼 성령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4b) 확인하신다.

앞에서도 이미 거론했지만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하셨고 그 영광을 우리 마음에 비추신 것은 바로 성령의 사역이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그 영광을 아버지께 돌려 드리려고 애쓰셨고 성령께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순종의 사역을 믿음의 사람들에게 들어 내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되돌려 드리려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것이요 함께 하시는 일이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15) 꼭 같은 고백이 다음 장의 기도에서도 그대로 고백되어지고 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17:10f)

이것은 소유의 개념이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5:20)

특히 인류 구원에 관한 전 역사를 마음에 두시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를 통한 인류 구원을 계획하시고 예정하셨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예정을 몸소 감당하셨다.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롬5:9; 엡1:7)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1:5b)라는 말씀들이 다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이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역사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었고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15b)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이 역사의 완성후에 제자들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알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모두가 믿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히3:12) 경계한다.

또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귀하게 받들고 산다면 심판에 관한 책망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만 주님께서 당시의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2) 하셨던 우려(憂慮)가 구속의 역사가 완성되고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와 임마누엘을 사시는 삶에서는 없어야 할 것이다.

행여라도 아직 이 구원의 진리가 감당 되지 않는다면 성령을 의지하여 깊은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령께서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알려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씀 된 진리를 더 확신시키는 일을 하신다. 만약에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서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한다면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것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할 때 넉넉히 감당 되고 이해될 것이다. 성령은 이를 위해서 우리 속에 와 계신다. 온전히 성령을 의지하여 세상과 함께 정죄 받는 일이 없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