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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사 36:4~7 2012-09-09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의 생각했던 질문과는 사뭇 또 다른 형태이다. 전혀 불신의 사람이 믿음의 사람을 대적하면서 “너희는 무엇을 믿고 그처럼 태연하냐?”는 내용이고 적어도 당시에 보이는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감을 깊이 가지고 있었지만 히스기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자신들과 나라의 운명 앞에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정도의 의문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자세를 가질 수 있어야 정상이다. 이런 정도의 모습이 될 때 어둠의 세력들은 하늘의 백성들 앞에서 도망갈 것이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될 것인데 같은 모습을 우리는 욥에게서 볼 수 있었다.

이 내용은 황하18:13~; 대하32:1~ 함께 기록되고 있는 내용인데 이스라엘의 신앙회복의 운동에서 히스기야처럼 철저한 사람도 드물었다.

먼저는 어떤 상태에서 이런 질문을 받고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랍사게와 같은 질문이 신앙이 올바르지 못한 상태에서 받는 것이라면 참으로 조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열왕기하18:3~6에 성령께서는 다음과 같이 히스기야의 영적인 상태를 증거하고 계시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비록 상황적으로는 당시의 엄청난 세력으로 세계를 정복해 가고 있는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를 당한 가운데 있었지만 히스기야는 신앙의 지도자인 이사야와 함께 하늘은 열려 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면서 오로지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 갔다.

이렇게 완벽하게 신앙으로 무장되어 있는 히스기야에게 당시의 최고 세력인 앗수르 산해립의 졸개였던 랍사게는 자기의 보이는 배경을 믿고 믿음의 사람인 히스기야를 능멸하고 하나님 여호와의 위엄을 우습게 여겼다.

또 다른 경계는 이렇게 철저하게 믿음으로 무장했던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으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고 죽을 병조차 치유함을 받았음에도 나중에는 믿음이 해이해져서 말년의 삶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 신앙의 긴장은 지속적으로 가져야 함을 경계로 배우게 된다.

오늘 우리도 세상으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각자의 상태가 이러한 히스기야의 믿음과 같이 강건한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비록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 해도 수치심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과 감격으로 십자가의 은총을 고백할 수 있는 …



Ⅰ. 불신자들은 우리가 믿는 것을 묻고 있다.(4~5)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진 힘이나 권력이 어떻게 될 줄도 모르고 그저 가지고 있으면 큰소리 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고 그 사라질 권력아래 자신을 숨기려고 별별 수완을 다하지만 마침내 잃어버리고 수치를 당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권력은 친히 주시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13:1) 그런대도 이 어리석은 랍사게는 지금 그 권력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 앞에 큰소리를 치고 있는 꼴이니 가소롭기 이를 데 없다.

①“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대왕, 히, hagadol meleck, 위대한(심히 큰) 왕]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나 붙임직한 명칭을 자신의 섬기는 왕에게 붙이고 있다. 결국 이것이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의 의지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

호흡이 멎으면 어떤 위대하다는 권력가도 자신의 몸 하나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주님 보시기에 수에 칠 가치도 없는 것이 권력과 재산과 명예를 가졌다고 큰소리치고 밑의 사람들의 아부를 들으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두가 다르지 않으시다는 말씀이다.

②“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열왕기서 기자는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왕하18:19)

③“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이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참으로 경계되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의 믿음이 다만 ‘입에 붙은 말뿐’이라면 참으로 주님께나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랍사게의 이 말이 오히려 부끄러웠던 것은 당시의 히스기야는 [갈5:6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꼭 같은 질문이 우리 각자의 믿음의 형태에 따라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고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가 수치를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야고보의 경계를 들아야 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4) 계속해서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7~18) 바로 히스기야야 말로 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고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세상으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언제든지 자신만만하게 히스기야와 같은 자세로 이 질문에 응할 수 있는…



Ⅱ. 세상은 실지로 믿을 것이 못된다.(6)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이것은 랍사게가 히스기야를 잘못 알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웃기는 것은 세상의 권력이나 힘을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의지하는 사람들 조차도 그것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양대 세력인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신흥제국인 앗수르가 오히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애굽을 비웃고 있다.

이것은 히스기야에게 사실도 아닌 랍사게의 단순한 판단이고 생각이었겠지만 이것은 사실이고 우리가 짐짓 실수하기 쉬운 현상이다.

애굽 즉 세상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으로 그것을 의지하면 부러져 오히려 손이 찔리게 되리라는 것인데 일면에 사실이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이런 사실들을 알면서도 세상을 의지하고 살고 있고 믿음의 사람들조차 더러 이런 모습들을 기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 대문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 의해 움직여 가는 세상은 영원한 약속과 불변하는 보호를 그의 백성들에게 약속하는 하나님의 진리와 약속을 싫어하고 거역하게 부추기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에게 경계를 주고 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세상은 강한 것 같지만, 진실하고 영원한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게 만들고 마침내는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찌를 것이다. 영원한 권력도 영광도 약속도 세상에는 없다. 오직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만이 영생을 그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약속하고 계시다.



Ⅲ.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7)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 하리라마는 그는 그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

이러한 표현 역시 이스라엘이나 히스기야가 아닌 랍사게의 입으로 나오는 말이다. 일반인들이나 당시의 랍사게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신이라 이름하는 것들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사실 여기서 다른 종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과의 가장 큰 차이를 가지게 된다.

히스기야가 산당과 다른 많은 제단들을 헐어버린 것은 제단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고 제사하는 것이 진정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누릴 수 있다는 올바른 믿음에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바른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이방 사람인 랍사게는 그것이 복을 차버리는 것이라고 히스기야에게 빈정거리고 있다. 하나님은 이 어리석은 불신의 사람의 입을 통하여 부정적인 경계를 주고 계셨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다른 제단이나 다른 교훈이 필요 없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4~6)



결론적으로 베드로 사도의 권면으로 마무리 하면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