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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王名 22회-나의 힘은 여호와시다)[아사랴(本名 9회-여호와는 도움이 있다)-왕하14:21, 15:1~] 왕의 통치 시기에 유다는 솔로몬 이후 막강한 힘을 회복할 수 있어서(대하26장) 백성들은 겉으로는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신앙적인 부분에서는 점점 하나님을 멀리해가고 있었다. 비록 제사는 있었지만 이사야 1장에서 읽을 수 있는 대로 이미 그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져가고 향락과 사치의 삶이 더욱 유행해가는 상황이었다.
오늘 우리의 시대상과 비슷한 상황으로 물질적 부유와 편리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켜가고 있었다. 주변 정세로는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이 새로운 실력자로 올라서면서 주변의 나라들에는 긴장감이 높아져 주변정세의 흐름이 불확실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고 이런 상황 속에 이사야는 나라의 어려움을 깨닫고 성전을 찾아 올라갔다.
물질은 풍요하고 생활은 편리한 시기는 항상 영적으로는 낙후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영과 육의 복을 다같이 누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세상 속에서 상대적인 상황을 경험한다.
세상일이 바쁘고 편리할 때에 오히려 영적인 일에는 자원자가 적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 시대에도 이사야와 같은 경험과 고백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는 사실적인 고백과 헌신을 드릴 수 있는 …
Ⅰ. 위기의 시기에 거룩한 이상을 봤다.(1~4)
(1)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서서히 기울어져가고 있는 마지막 시대에 남쪽 유다 조차도 물질의 풍요와 편리주의에 빠져가는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해 갈 때쯤 하나님은 그 시대의 역사 속에서 이사야를 부르셨다.
웃시야가 죽은 후 요담도 선정을 한다고 했지만 그 다음 왕인 아하스는 하나님 보다는 당시의 최대 세력인 앗수르에 도움을 구하고 어려울수록 더욱 이방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데 이런 역사의 어두운 면으로 흐르기 시작할 때에 오히려 영안을 열어서 주님의 거룩하심을 보는 경험을 한 이사야는 그들의 신앙을 돌이키려고 애쓰는 흔적을 그의 예언서에서 보게 된다.
①세상의 부귀와 영화 속에서 거룩한 이상을 보기 힘 든다.(1) 세상의 부귀와 영화 속에서 거룩한 이상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②천사들의 역할을 보면서 피조물인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깨닫는다.(2~3)
③영계의 세계의 이상이 현실의 상황에 영향을 미침을 볼 수 있었다.(4)
Ⅱ.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경험한다.(5~7)
(5)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거룩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자신의 초라함과 부끄러움을 탐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이런 탄식의 회개에 주님은 비로소 사죄의 엄청난 감격을 허락하신다.
①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의 초라함을 깨닫는다.(5)
②죄로 인하여 탄식하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사죄의 은혜를 허락하신다.(5~6)
③주님의 은혜로만 악은 제하여지고 죄는 용서될 수 있다.(7)
Ⅲ. 헌신을 고백한다.(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의 일은 사죄의 감격으로 하(감당)는 것이다.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과 저주의 상황에서 의의 나라로 옮겨짐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필요에도 잠잠히 왜면 할 강심장은 없을 것이다.
①사죄를 받은 자라야 비로소 주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있다.
②사죄의 감격을 가진 자라야 자신을 기꺼이 주님께 내어 놓을 수 있다.
③사죄의 은혜를 경험한 자라야 다른 사람을 찾지 않고 자신을 드리려고 한다.
오늘도 우리는 21세기의 풍요와 편리 속에서 하나님을 뵙는 것이 쉽지 않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상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이 시대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주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도 날씨는 예측해내면서도 영적인 분별력을 잃은 사람들을 책망 하셨었다.(마16:2~4)]
진정으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한 죄 용서를 받은 사람으로 주님의 희생을 늘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사죄의 감격을 받은 자라면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사람을 찾으실 때 우리 자신을 기꺼이 들 수 있어야 한다.
마지못해서나 억지가 아니라 주님의 어떤 일에든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는 고백으로 헌신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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