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하고 하나님의 낯을 뵙는 것이 두려워 수풀 사이에 숨어버린 아담에게 물으시는 인류 최초의 안타까운 하나님 아버지의 질문이다. 그러나 아담이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는 데서 오늘 우리(나)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일 수도 있다.
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미 숨어있는 아담을 알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이 질문은 우리 각자의 상태에 따라 오늘도 물으시는 주님의 물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너는 나와의 관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느냐?” 라는 의미로 각자가 들어야 하고 답변을 드려야만 할 질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의 “네가”에 각자의 이름을 넣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들어야 한다.
역사의 시초에 최초의 사람 아담이 범죄하고 숨는 부끄러움을 보시고 “네가 어디 있느냐?” 찾으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조금은 멀어져 가고 있는 우리 각자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며 우리의 각자의 신앙의 상태를 돌아보게 하신다고 믿는다.
오늘도 우리를 찾으시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수치나 부끄러움 없이 감사로 하나님의 은혜에 나아가는…
Ⅰ. 진노보다는 긍휼로 찾아 오시는 하나님을 뵙는다.(8~9)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어떤 일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면 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역시 하나님이시다. 진노로 나타나시는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담을 찾으시는 시간 선택에서부터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배운다.[베데스타 못 가의 38년 된 중풍평자를 찾으신 주님처럼]
①상황과 시간조차도 고려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8f) 주님께서 찾아 오시는 시간, 부르시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시간임을 알아야 한다. “때가 차매”
②낯을 피하고 숨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8b) 오늘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그것은 바로 나에게 문제가 있음임을 알아야 한다.
③문책을 하시기에 앞서 상태의 고백을 바라신다.(9) 우리의 사실을 물으시는 하나님이시다.
Ⅱ. 죄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고 있다.(10~11)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속담에 “제발 저린다.”는 말이 있다. 평상시 늘 만나고 교제하던 하나님이 갑자기 부담스럽게 느껴진 이유는 자신의 수치스러움 때문이었다.
①하나님의 음성을 두려움으로 들었다.(10f) 듣고 반가운 음성은 분명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의 관계일 것이다.
②두려움은 죄로부터 온다.(10b)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28:1) 진리와 진실은 참으로 편한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③죄의 수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데서 온다고 말씀하신다.(11b)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19)
Ⅲ. 해결점을 주시기 위한 질문이시다.(12~13)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리려 하심이 목적이지 죽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12:47b)
①사람들은 핑계하기에 바쁘다.(12)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마25:24)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요15:22)
②선물이 불평의 이유가 됨을 본다.(13) 죄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떤 경우는 좋은 것이 오히려 어려움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주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기 위해서 주시는 것은 없다.[반대로 불리함이 진정한 선물일 수도 있다.]
③여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하나님께서 준비 하시고 물으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예배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세상에 있을 때, 의의 자리가 아닌 죄의 자리에 사랑의 자리가 아닌 미움의 자리에 용서의 자리가 아닌 미움의 자리, 화평의 자리가 아닌 불화의 자리에 있을 때도 “네가 어디 있느냐?”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육신의 눈에 안보이면 편하고 괜찮으리라고 숨어버리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로부터 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오히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이사야 같은 응답을 들 수 있는 준비된 심령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담의 비극을 해결 받은 이유에서였음을 본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 사함 받은 우리 모두는 이사야와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