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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해야 할 것과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내용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1) 모든 불가능하거나 나약해 질 것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도 주님께서는 교훈을 주셨다. 최고의 방비가 최고의 해결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유비무환(有備無患) 이라는 일반적인 교훈 속에서도 확인되지만 신앙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위해서도 늘 대비하고 훈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기도를 잊어버리고 기쁨과 감사보다는 늘 쉽게 낙심하기 쉬운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경계의 교훈이다. 우리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세상 속에서 소망을 가진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대부분 묻혀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이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내다보시고 제자들을 통해서 이러한 교훈을 주셨다.
‘우리 평상시의 삶 속에서 주님이나 사람들이 나에게서 믿음을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고백이 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주님께서는 자주 “사람 앞에서”의 행위가 미래의 하나님 앞에서 받을 대가가 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마10:32~33; 눅12:8~9; 고후8:21)
세상은 육신의 삶이 더욱 편리해지고 풍요로워 지면서 영적인 삶이 중요함을 별로 느끼지 못하면서 믿음은 점점 빈약해지고 확실치 않은 무덤 넘어 두려움을 없애려는 사람들은 신앙을 보이지 않은 생활의 액세서리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런 경계를 주셨다.
이왕에 천국을 알고 영원을 귀하게 여기며 믿음생활 하는 우리에게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안타까움이 들려지지 않는 …
Ⅰ. 불가능하게 보이는 환경을 의미한다.(2~3)
(2)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율법 속에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존재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고아와 과부인데 ‘지극히 적은 소자’로 불려지는 사람들이 고아라면 거기에 가까운, 분명 어른이면서도 힘없는 사람들이 바로 보호자를 잃은 과부이고 주님께서 사회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약자를 말씀하기 위해서 과부를 비유하셨다고 본다.
이런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법이나 보호의 장치들이 사실은 별로 무의미하고 구제받을 수 없는 사람들로 재판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호소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되어 갈수록 이런 사람들의 호소는 더욱 무시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부르짖을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믿음으로 나타나고 의지 가지 할 데 없는 이 사람들의 보호자는 하나님이시다.
①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 속에 있다.(2)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창20:11)
②힘없는 과부와 같은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은…(3)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Ⅱ. 세상의 일반적인 모습을 그대로 말씀하신다.(4~5)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세상의 힘을 가진 자들이 약자들의 요구를 들어 주는 경우는 물론 하나님과는 완전히 다르다.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계산하는, 이성적인 계산으로 힘없는 과부를 대하는 재판장.
①손익, 득실을 따지는 세상이다.(4f)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자세는 아니다.
②불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4b)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의 인격을 귀중히 여긴다.
③번거로움 때문에, 귀찮기 때문에…(5) “나를 번거롭게 하니 … 늘 나를 괴롭게 하리라”
Ⅲ. 주님께서 오실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6~8))
(6)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운다.”라는 말이 있었다. 형편이 어렵고 힘겨우면 하나님을 의지할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마지막 시대가 될수록 의지할 것이 많고 하나님을 부르지 않아도 힘겨움이 적기 때문에 이 가난한 과부와 같이 부르짖지 않는 경우가 많다.
①세상의 모습을 비유로 사용하셨다.(6)
②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믿음에 당연히 응답하시지 않겠는가!(7) ○하물며(더우기)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잠11:31)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6:30; 눅12:28)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눅11:13)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 의지할 데 없어 밤낮 기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역사의 마지막에도 가능할까!
○원한[에크(ek)+디케(dike)(공의 정의)→에크디케시스(ekdikesis) 의와 정의를 실행하다, 변호하다, 옹호하다.→원한을 풀어주다, 원수 갚는 것]
③주님 다시 오실 때 과연 이런 믿음을 보실 수 있을까를 안타까워 하신다.(8b)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의존하는 믿음을 보시겠는가 하는 말씀이다.[방주처럼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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