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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어떤 종교나 대부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종교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인류는 예외 없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왔다. 피부색에 관계없이 이것은 사실이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행17:26) 때문에 첫 사람 아담의 대를 이어 나는 사람은 아담처럼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그러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죽음으로 인하여 탄식하는 것이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5~56)
이 죽음의 저주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사람이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바로 생명의 길 즉, 살 수 있는 길이다.
바로 저주의 혈통에서 벗어나 영광의 반열에 이르게 하는 것이 구원이고 생명이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의 방법으로는 어떤 것도 불가능할 뿐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주어진 방법을 지금 주님께서 니고데모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고전2:6)
Ⅰ.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1~2)
(1)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당시의 최고의 신앙적 지식과 권력, 그리고 영광의 자리에 있었던 니고데모도 깨달을 수 없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 속의 사람들에게 모두 마찬가지이다.
①지식적으로 알 수 없는 원리이다. 고전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②종교적으로 알 수 없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행13:27)
③삶의 경험으로도 알 수 없다.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욥32:9) 마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④믿음으로만 깨닫는다. 최고의 복음의 증거자였던 바울도 이것을 고백하고 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3)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시111:1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시119:130)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Ⅱ. 물과 성령으로 나야한다.(3~5)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x2 진실은 하늘로부터만 주어진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참으로 귀중한 교훈이요 원리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이다. 저주의 끈, 죽음의 계보에서 도망해야만 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근거를 버릴 수 있는가?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3)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①물로 나야 한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3~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3:21)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②성령은 새로운 피조물의 인침이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로 나고 거듭난 사람들 속에, 새로운 피조물 속에 하나님은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절대로 더러운 불순종하는 옛사람 죄의 사람 속에 성령께서는 와계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물론 역사하실 수는 있지만)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분명히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 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나니아를 통해서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22:16)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기적과 같다. 이전에 유월절 양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적이다.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역사는 동시적인 것이다. 듣고 믿고 회개하고 주님만이 구원이심을 고백하고 최종의 순종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계속 하나님으로 자라가야 한다.
Ⅲ.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6~8)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소는 송아지를 개는 강아지를 어떤 동물이든지 같은 종류의 새끼를 낳는다. 이 이야기는 결국 육신은 같은 육신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육신으로 난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나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고 주님께서 지금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말씀도 이것이다. 마찬가지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같은 종류의 자녀를 가지게 된다.(Abr. Iss. Jam)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난 구체적인 모습을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육신의 사람이 죽고 성령을 입은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거듭남은 외형적으로도 나타나야만 한다. 그래서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지만 구원받은 모습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구원을 누리는 사람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구원받은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 복음으로 변화된 바울이라는 사람에게서 이것을 볼 수 있었고 오늘 우리에게서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2:16)
여전히 죽음의 사람으로 살면서 ‘나는 죽었다, 죽는다’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안된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객관적이다. 즉,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죽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여전히 그의 옛사람이 뛰쳐 나오는 모습은 분명히 죽은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거듭난 사람의 고백이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는 고백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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