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앞 2~3절에서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또 가장 쉽게 옆의 사람들에게 격려를 줄 수 있는 것도 말이다.
바울은 죄인 된 모든 사람들을 평하기를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롬3:13) 라고 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교회 속에서의 실제적인 신앙의 삶을 당부하면서도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는 경계를 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이다.
본문이 말하는 “혀”는 우리 몸의 가장 작은 것이면서 큰 일을 벌일 수 있는 지체중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만 주신 놀라운 도구다.[소리; 언어, 말]
우리는 각자가 가진 혀로서 고백과 찬송을 드릴 수도 있고 때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주님의 백성을 저주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창조적이고 바람직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Ⅰ. 혀, 잘못 사용될 가능성이 더 많은 지체.(4~6)
(4)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범죄한 인류가 죄를 지은 후에 가장 먼저 바뀌어 버린 것이 바로 혀(말)였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 →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2)
①이 지체의 사용은 우리 인생의 목표를 결정한다.(4)
②많은 것들을 헛되게 할 수 있다.(5)
③지옥으로 이끌기 가장 쉬운 도수이다.(6)
Ⅱ. 혀, 길들일 수 없는 지체.(7~8)
(7)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말을 할 줄 모르는 온 갓 것들을 다 길들이면서도 자신의 혀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사용하게 길들이지 못하는 우리 모두이다. 너무나 쉽게 튀어나온 말로 인하여 “이 놈의 입 때문에…!” 라고 한탄 할 때가 많다. ‘아직 말하기 전의 말의 주인은 나이지만, 그것이 입 밖으로 나갔을 때는 그 말이 나의 주인이 된다.’
①많은 종류의 동물들은 길들일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특권으로 생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길들인다.
각자가 마음에 쌓은 대로 말하게 된다고 주님께서 경고 하신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34~35)
②길들일 수 없기 때문에 누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키를 누가 잡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내 혀의 주인은 누구인가!
Ⅲ. 선과 악, 어느 쪽 도구로 쓰일 것인가!(9~12)
(9)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혀는 오늘 우리가 흔히 쓰는 모니터와 같다. 출력하는 대로 표현하는 데서 그렇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실 더 이중적인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상에서는 독설을 내뱉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그렇다.[불신자들은 저주만 하지 찬양할 줄 모른다.]
자연[샘, 열매]은 이중적인 부분이 없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모니터처럼 사람이나 사람이 만든 것은 이중적인 경우가 많은 것을 더러 본다.
①이중적인 역할은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않다. 그래서 구속 받아야 한다.
②좋은 열매는 칭찬과 찬양하는 도구로 쓰일 때 가능하다.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먼저 입으로 부정해 버려서는 안된다. ‘이래서, 저래서 안되, 안되, 안되’ 이것은 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쫓아버리는 무서운 역할을 할 수도 있다.[민13~14장]
③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두고 긍정하고 감사하고 칭찬하라!
우리는 우리 삶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혀가 십자가의 보혈에 씻기고 구속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