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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빌 4:4~7 2012-03-25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기뻐하라[히, 카이로(chairo), 유쾌하게 되다, 은은히 행복하다, 유복하다, (만남이나 헤어짐에 있어) 안녕, 인사하다, 환영하다, 축하하다]

사람들 특히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편지를 보면 바울을 로마 감옥에 가둬 둔 상 때에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바울은 적극적으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는 권면을 주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기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삼스럽게 “기뻐하라!”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것 때문에 짐짓 웃음을 잃어버리고 근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짐짓 이런 부분에서 오해를 하는 경우들도 더러 있다. 만약에 성도로 사는 것이 근엄한 표정만을 짓고 사는 것이라면 오늘 이 제목은 옳지 못한 신앙의 과제일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기쁨을 찾고 받을 데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을 받지 못하므로 세상에서 다른 것으로 신령한 기쁨을 대신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오히려 시편 기자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37:4)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행복임을 권면해 주고 있다. 나는 오늘 (삶에서 예배에서) 진정으로 주님을 기뻐하고 있는가!

오늘 빌립보서를 써서 빌립보 교우들과 우리들을 격려하고 있는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도 같은 당부를 주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그런데 여기에 이유를 쓰고 있는가 보면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이유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포로의 삶에서 돌아왔음에도 기쁨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느혜미야를 통해 격려하시기를“…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우리는 주님의 명령과 계명을 귀중하게 여기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쉽게 어길 수 있는 계명 즉, 하나님의 뜻을 순종치 못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뻐하라!”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살필 필요가 있다.



Ⅰ. 장소와 상황(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비정상적인 상황일 때만 가능하다고 한다. 인생에 편하고 쉬운 일보다는 힘겨운 일이 더 많기 때문에 항상 웃고 있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사실 그렇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들의 보기에 분명 비정상적인 사람이고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위인들은 한결같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술에 취하거나 성령에 취해있을 때 지속적으로 기뻐할 수 있고 계속 웃을 수 있다.

①기뻐할 수 있는 장소- 주 안에서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세상에서의 기쁨은 순간적이고 제한적이다.

②언제-항상 행16:24~25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1:14~15)

③격려-~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할 바를 다하므로 기쁨이 올 수 있으므로 최선의 도전이다.



Ⅱ. 방법(자세)(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①관용 :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기다릴 줄을 모른다. 일의 결과가 아닌 시작을 보면서 쉽게 판단해 버리고 정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기에 과연 기쁨이 있는가! 모든 사람이 알 정도의 관용은 또 다른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오래 참으심과 같은 성품이 그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관용”이라는 성품이다.

너무 쉽게 좌절하고 절망해 버리면 남을 정죄하는데도 바쁘다. 하나님은 분명 기쁨을 잃어버린 이러한 자세를 기뻐하지 낳으실 것이다.

②재림을 기대 :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 말씀은 “마라나타!(고전16:22b;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계22:20b,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과 거의 같은 말이다. 우리의 현실은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1:13)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16)



Ⅲ. 기도하라(근거) 기쁨을 받는 방법.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뻐하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의 염려에서 있게 된다. 염려는 주님께 대한 신뢰를 잃은 데서 믿음의 약함으로 나타난다. 이런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기쁨을 잃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당연히 다가오는 어려움과 절망조차도 하나님께 맡기고 또 그런 상황을 만나더라도 담담히 받아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이다.

①기도로 맡기는 삶.(6)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②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심.(7) 오순절 날 사람들은 사도들에게 새 술에 취했다고 놀렸다. 사람은 두 가지에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미쳤다고까지 오해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의 기쁨도 그와 같은 것이다.

주님 안에만 진정한 기쁨이 있음을 잊지 말자. 시간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기뻐할 수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더라도 멀리보고 기다리는 관용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오실 주님께서 가져오실 온전한 은혜를 기대함으로 기뻐할 수 있다.

현실의 절망적인 상황을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맡길 때 하늘로부터 오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므로 기쁨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