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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의 삶은 생명이 없는 무덤 같을 수도 있고 사람들 중에 가장 생기 발랄한 군인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 죄악으로 죽음의 땅이 된 세상에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가진 우리들을 두셨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이 사건은 마치 공관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고 있는(마8:28~34; 막5:1~20; 눅8:26~39) 거라사 지방의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 군대귀신 들린 자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도 수많은 죽음들이 널려있는 공동묘지를 같은 곳을 가보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주신 이상과 역사는 보이는 모습보다도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골짜기에 즐비한 마른 뼈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언했을 때 힘줄과 살이 입혀지고 사람의 형체들이 회복되고, 마침내 생기들이 들어가서 군대를 이루는 이 모습은 생명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단순히 뼈대만 가진 우리의 모습이거나, 완전한 사람의 형체는 가졌으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 없는 모습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면서 군대가 되는 모습은 주님께서 가장 기대하시는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1절에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2b) 주님께서 물으시고 에스겔이 응답한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
이 말씀은 어쩌면 이 절망의 땅에 은혜를 베푸시려는 주님의 은혜의 역사를 회복하시려는 도전의 시작이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종(성도)을 참여시키는 또 다른 은혜의 사역이다.
Ⅰ. 생명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만 가능하다.(4~6)
(4)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마른 뼈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마른 뼈같이 앙상하고 섬뜩한 우리의 모습을 빗대어 말씀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어떤 것보다도 사람의 뼈들을 보면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신앙하는 사람들에게는 교리는 믿음의 골격 같은 것이다. 교리가 없으면 믿음이 주저앉을 수도 있는 중요한 것이지만 뼈만 있다면 거기에는 기쁨도 화평도 없다. 분명히 신앙의 체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결국 교리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삶을 살게 하는 틀이지만 그것이 신앙의 균형 잡힌 삶을 살게 하지 못한다면 삭막할 수 밖에 없다. 이래서 이 골짜기의 이상은 뼈에 힘줄을 입히고 삶을 입히고 생기를 불어 넣어서 산 군대가 되게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①말씀을 들으라 요청한다.(4)
②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셔야 살아난다.(5)
③주님은 완전한 회복을 명하신다.(6)
Ⅱ. 말씀이 순종되었을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7~10)
(7)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뼈와 뼈가 제 위치를 찾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게 할 뿐만 아니라 가죽이 덮이게 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고 안으로는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써 그 죽어 있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 말씀의 역할이 결국 이런 것이다.
①말씀이 증거될 때에 역사가 일어났다.(7~8)
②그러나 육신의 모양을 회복했다고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9)
③생기가 들어가야 살아났다.(10)
Ⅲ. 죽음에서 나오라는 도전이다.(11~13)
(11)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황량한 골짜기에서 군대를 일으키신 주님은 거기에서 끝내지 않으시고 그 원리를 설명해 주신다. 주님께서 에스겔과 함께 이루신 역사가 단순히 그 상황의 사건으로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의 교훈이 있다는 것이다.
①죽어 있는 삶이 있을 수 있다.(1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5:14)
②주님께서 생명 없는 곳에서 나오라 하신다.(12) 이미 완벽한 준비를 해 두시고 말씀하신다. †
③무덤을 열고 나온 자라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알게 된다.(13) 주께서 주신 생명을 제대로 맛 본 자라야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도 확신하게 된다.
생명이 없는 뼈들만 가득한 죽음의 동산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말씀을 따라 온전한 모양이 갖춰지고 생명이 회복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에스겔에 주신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고 죽음에서 나오라고 명하신다.
소름 끼치고 두려운 죽음의 그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의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생명의 삶으로 회복하도록 오늘 우리를 부르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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