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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의 핵심이요 출발인 성령의 오심을 약속하시고 준비하는 부분이라고 하는 데서 대단히 중요한 출발이면서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의 의지는 역시 성령께서 오시기 이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성급함을 본다.
실지로 성령의 오심은 당시의 보혜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와의 임무교대처럼 주님께서 가심으로 약속된 사실은 예수께서 이미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후에 직접 말씀하신 부분이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물론 이제까지도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셔서 전도를 위하여 보내실 때 성령께서 그들의 사역을 가능케 하시고 능력으로 함께 하셨던 약속이나 증거들을 복음서들에서 더러 보게 된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19~20)
70인을 파송한 후에 그들이 돌아와서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10:17) 라는 보고 속에서도 확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아직도 구약적인 즉, 어떤 사역을 위하여 왔다가 그 일이 완료되면 떠나는 그런 형태였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은혜를 완성하신 후에 영원토록 함께 하실 그 보혜사를 사도들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성령의 약속은 이제 더 이상 사도들에게만 주신 약속이 아니라 그를 순종하는 자들 모두에게 주신 약속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2:38~3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하신 후에 먼저 사도들에게 임하셨던 성령의 임재는 오늘 동일하게 이 약속을 믿고 그 약속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약속에 의심을 갖지 않는 …
Ⅰ.하나님의 권한을 인정해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계신다.(6~7)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아무리 순화된 사람일지라도 거듭나지 못한 인간은 여전히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리석다. 주님께서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2) 라는 안타까움을 말씀하신바 있다.
하늘로부터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조차 구별하지 못한다는 귀중한 교훈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옹위하셔서 로마의 섭정을 몰아내고 거짓을 모두 평정케 하신 후 다윗에게 약속하신 메시아 왕국을 세우실 것으로 기대를 했던 제자들에게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러한 계산을 여지없이 빗나가게 만들었고 예수께서 부활 하시자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것은 비단 당시의 제자들 분만 아니라 오늘 지구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궁금해 하는 부분들이다. 현 시대적인 상황이 어렵고 불투명할수록 사실 사람들은 미래를 더 기대하게 되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 고달픈 세상에서의 삶보다는 하늘의 영광을 동경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면서도 우리의 바람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의 원함보다는 어떤 조건 속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자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복음서에 이런 두 사람 소개하고 있는데 먼저 는 예수께서 어린시절 마리아와 요셉의 손에 들려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 갔을 때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2:25) 하였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아리마데 사람 요셉’(막15:43; 눅23:51)인데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것들을 미리 알고자 하는 의구심(疑懼心)이 강하고 이것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던 사실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 사탄은 늘 미래를 알 수 있게 해준다고 우리를 유혹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미래를 미리 안다고 해서 과연 그 일들을 대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분명치 않기 때문에 미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7) 라는 말씀이 소중한 말씀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29:29)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때와 기한(chronos, kairos)”은 흘러가는 시간이나 어떤 특정한 일을 위하여 정해진 시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길이도 역사 속에 작정된 일도 모두 하나님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의미이다.
주님께서 분명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하신 것은 우리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신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도 다 실천치 못하면서 언제나 남의 영역이나 하나님의 권한 까지도 침범하려는 어리석음으로 설 때가 많다.
이 역사가 계속 존재할 것인가 망할 것인가는 우리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이다. 다만 우리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준행하는데도 너무나 부족하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고 행하게 하신 것들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정해진 시간과 역사들일지라도 어려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충성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4~5) 라고 하여 비록 이 세상에 도적같이 오실 주님이시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음을 확인해 주고 계신다.
우리에게 주님의 다시 오심의 날이 분명히 중요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것이기 때문에 그 때를 아는 것 보다는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들을 행함으로 이 세상의 종말이 되어도 준비된 영광에 들어갈 수 있는…
Ⅱ.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행할 수 있다.(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사도행전의 요약과 같은 말씀이요 중심이 되는 구절이다. 이 말씀은 끝에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내 증인이 되리라!”는 약속인데 누구의 증인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고 무엇의 증인인가하면 바로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의롭다 함을 위하여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실 뿐만 아니라 이 역사에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증인을 말함이다.
증인은 어떤 역사의 현장을 본 사람만이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증인의 역할의 범위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 말씀은 복음을 증거 해야 할 범위를 이르시는 것인데 출발지로 복음의 발생지인 [예루살렘]에서부터 주변인 [유대와 사마리아]그리고 이방 세계를 넘어 [땅 끝까지 이르러] 라고 증거 하신다.
이 약속이 사도들의 시대에 물론 완전히 마쳐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언제 마무리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님께서 마지막을 예언하시면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하셨는데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을 가려서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완료의 시기는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로 이일이 마쳐지는 것은 더욱 불가능함에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땅끝을 향해갈 수 있는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마태복음말미에 약속하신 것처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하시고 바로 그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는 권능을 가지고 라야 땅끝까지 복음을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능력)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다. 앞에 “오직”을 붙인 것은 이외의 다른 어떤 힘과 능력도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증인이 되는 것도 단순히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닌 성령의 눈, 하늘의 눈으로 가능하고 우리의 가까운 곳에서 땅끝까지 갈수 있는 힘도 세상의 어떤 힘이 아닌 하늘의 힘 즉, 성령의 능력이며 이모든 일의 권능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귀중한 약속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이성의 판단을 너무 쉽게 하나님의 지혜라고 단정해 버린다. 그런 결과들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바라시는 방법과 목표를 절대로 감당할 수 없고 오히려 영적인 세계에 불협화음(不協和音)을 일으킬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진정으로 성령의 권능을 힘입을 수 있는가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귀중한 과제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하셨는데 이 자유는 무슨 자유를 의미하느냐 하면 모든 인간적인 굴레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하셨는데 이러한 말씀들은 다름아닌 말씀에 전적인 순종을 의미한다.
마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는 명령이 당시에는 두렵고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순종하며 기다린 그들에게 약속대로 성령께서 오셨고 그 모든 공포와 어려움으로부터 자유하고 주님의 이 약속을 감당한 것처럼, 오늘의 시대에도 인간의 이성과 감정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일지라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과제도 ‘오직 성령의 충만’이다. 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 아니고 “충만”이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하여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들은 오직 충만함을 받으면 그만이다. 주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통해서 “…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b)고 당부하시기 때문이다.
Ⅲ.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오늘 마지막 부분의 말씀은 이제 성령과 임무교대를 위하여 하늘로 가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제자들로 하여금 직접 보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제자들은 어쩌면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을 보면서 속으로는 또 다른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을 인하여 숨어 떨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오셔서 다시 용기와 힘을 얻기도 했는데 또 다시 자신들을 땅에 남겨두고 하늘로 가시는 주님을 보면서 공포의 땅에 남겨진 두려움과 슬픔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보이지 않으실 때까지 어쩌면 허전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하는 말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는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였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어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천사들이 주님의 양편에서 부축하여 하늘로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저희 곁에 서서’ 말했다는 사실이다.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천사가 붙들고 올라가야 할 그런 육신의 몸은 이미 아니었다.
이 주님의 승천의 모습은 이제 또 하나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기대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고 바울의 말처럼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도 나이가 들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일지라도 더 이상 무개를 느끼지 않는 모습으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점하기 위하여 하늘로 올리우신 주님처럼 올라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로 가실 때는 갈릴리 사람들과 제자들만이 보았지만 장차 죄와 상관없이 심판주로 오실 주님은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슥12:10)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주님께서는 다시 이 모습을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하셨다.
우리 신앙의 성패는 이 때에 나눠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확신에 가득 차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리와 성령께 순종치 못한 자들은 이 때에는 애곡하게 될 것이고 멸망 받을 땅에 남게 될 것이지만 세상과 환경과 조건이 어떠하든지 순종한 사람들은 더 이상 힘겹고 무거운 육신의 고통을 벗어 던지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은 변화된 몸으로 영광스러운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바울은 당부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1~4)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 인생들과 흐르는 역사의 때와 시기는 우리의 알 것이 아닌 하나님의 권한에 있음을 인정하고 우리는 다만 말씀하신 것들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해야 할 것들을 묵묵히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늘로 올리우신 주님은 가신 모습 그대로 구름과 같은 천군 천사들과 천만 성도들이 옹위하는 가운데 영광스러운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 그 주님의 다시 오심 앞에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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