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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신구약을 막론하고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우리의 주인이요 아버지이신, 또는 신랑이요 맏형이신 주님께 현실의 삶을 언제나 신뢰하고 의탁할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러한 것이 바로 기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도한다고 하면서 참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자세가 어떤 것일까를 때로는 고민하게 되고 또 응답에 대한 확신에도 기복이 심하다.
구약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도에 대해 당부하신 말씀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 가르치신 기도가 있고 오늘 본문의 바울과 같이 사도들로 통해서 가르치는 기도가 또한 여러 형태로 기록되고 있는 것들을 신약성경에서 읽게 된다. 특히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울 사도께서 로마의 옥중에서 자신을 끝까지 보조하고 협력하는 빌립보교회를 향한 권면이기 때문에 더욱 애정과 확신을 담고 있다.
성경 외에 역사 속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받은 기도의 응답을 증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신앙의 성패가 이 기도의 삶에서 좌우된다고 해도 크게 빗나가지 않은 것은 주님의 역사 없이 우리 사람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영적인 일은 없다고 하는 것과 죄 덩어리요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 늘 適時適所의 필요한 능력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오늘까지 아직도 복음 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잃지 않고 살고 있다면, 자신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기도와 함께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응답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감사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는 로마서8:26의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성령의 기도와 같은 장 34절의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은혜로 오늘 나(우리)는 믿음을 부지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는 확신과 함께 우리 모두에게 가장 귀한 것은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믿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라는 확신으로 오늘도 엎드릴 수 있어야 한다.
죄 없이 애매하게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웃는 낯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리의 처지가 아무래도 바울 사도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하는 감사와 고백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감옥에서 쓴 빌립보서의 주제가 기쁨임을 믿고 같은 기쁨으로 기도함으로 바울과 같은 확신과 기쁨에 찬 천국 백성의 삶이 되시기를 …
Ⅰ.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실 바탕이 중요하다.(4~5)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일반적인 은혜는 평화요 기쁨이다. 바울 사도는 애매하게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기쁨으로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 갈 것을 고대하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1:21, 23) 라고 소원하고 있음을 보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이 고통스럽고 불편한 감옥이기 때문에 죽고싶다는 것이 아니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라는 이유 때문이다. 우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성전으로 산다면 기쁨은 보장된 것이다.
마지막 시대를 예언하면서 경계하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5:16~18)고 권면하고 있다. 기쁨은 억지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고 마음에 평안과 감사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바울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당부는 그리스도인 이라면 당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네가 그리스도인 이라면 기쁨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자신들의 삶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거나 “범사에 감사하라!”는 당부는 조건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형편이 좋은 사람은 불신자라도 얼마든지 기분 좋아하고 감사하는 것들은 세상에서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 움직이고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다. 애당초 그런 것이 구원이라면 불신자들하고 차이가 없다. 신앙의 사람들은 세상의 사람들이 도저히 갖을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근본적인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통한 사죄와 구원의 감격이다. 이것은 세상의 조건에 의해서 빼앗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이르도록 사라질 수 없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기쁨과 감사의 근거이다. 여러분 모두가 이 불변하는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 하시기를 …
바울은 이 빌립보서 서두에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3~5)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 3절에서 중요한 것은 [생각할 때마다, 간구할 때마다, 복음에서 교제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근거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이다. 우리의 몸이나 형편이 IMF 을 당하고 있던, 몇 주동안이나 해나 달을 볼 수 없는 풍랑 속이든지, 건강치 못해서 늘 연약하든, 사업이 잘 안 되서 위기를 당하던,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확실히 서있다면 기뻐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사실이 그저 고맙고 신기하기만 한 헤아려도 헤아려도 그 은혜를 찾을 수가 없어서 감격하는 바울의 보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3~16)는 이 고백을 들으면서 나(우리) 자신과 비교해 볼 때 바울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결코 더 낳을 것은 없다.
그럼에도 사랑 안에 있다는 그저 황송할 뿐이라 육신의 삶이 어떤 입장에 처해져도 이 일만 생각하면 감사해서 저 목 언저리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솟아남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같이 포악했던 사람이 이방인들까지도 포용하고 품어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지게 되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5) 주님께서 나를 받아 주시고 참아 주신 사실을 생각하면 용서 못할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본연의 인간적으로는 참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분감을 삭히지 못하지만 주님께서 나를 받아 주신 사실을 생각하면 모든 거슬리는 사람들 조차 불쌍하고 가련해서 위해서 기도하게 되는 것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볼 때는 참으로 관용의 사람이 되고 이런 주님 때문에 성격도 삭히고 분감도 죽이는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주님은 가까이 하시는 것이고 이런 사람은 무엇을 하나님께 구하든지 당연히 응답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세상의 어떤 조건에서도 잃을 수 없는 주님의 사죄와 용서, 구원으로 인하여 기쁨을 충만이 가지고 그러한 관용이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므로 주께서 더욱 가까운 사람들로 이왕에 믿음생활 하시기를 …
Ⅱ.하나님께서 들으실 기도의 자세.(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서는 기도하기 위한 자세와 기도의 구체적인 모습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열려 할 항목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한가지도 없다. 마태복음6:25~34에서 주님께서 직접 당부하신 염려치 말아야 할 항목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목숨을 위하여, 먹을까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키를 위하여,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이 주님의 당부에서 본다면 우리 삶의 주변에 어떤 것도 염려의 대상은 없다.
베드로 사도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고 당부하고 있다. 주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이야 염려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같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염려는 어울리지 않는 옷 같은 것이다.
어떤 조건도 주님 앞에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염려의 이유로 부적합하다. 대신에 “아무것도”와 비례해서 “모든 일에” 있어서 해야 할 것이 바로 기도와 간구다. 늘 하는 [기도, 헬, 프로슈케(proseuche), ~로 향하여 + 소원하다, 구하다, 바라다, 기도하다]가 있다면 [간구, 헬, 데에시스(deesis), 스스로 졸라매듯 구하다, 즉 탄원, 간청하다, 기도하다, 청원하다]는 보다 간절할 때 그 형편을 주님의 손에 들려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영적인 호흡’이라고 하지만 때로 긴장된 일을 위해서는 때로 심호흡을 해야 하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뒤따르고 있는 “오직”는 두 말 할 필요 없이 뒤의 연결되는 내용만이 방법임을 강조한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을 오늘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도의 모습을 비교해 보게 한다. 우리는 힘겹고 어려울 때일수록 그 힘겨움을 인하여 찡그리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님께서는 어떤 절망스러운 어려움에서도 감사함으로 아뢸 것을 명하신다.
그러므로 불평으로 구하는 기도는 응답을 받고 싶지 않는 기도의 자세와 같다.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면 자신만만하게 감사로 다가서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시면서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십자를 지신 주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구하면서 감사 없이 불평을 한다면 그 모습 자체가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주님은 웃음과 감사와 기쁨으로 그에게 나아오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감사함으로 우리의 문제를 그분의 손에 옮기는 것이야 말로 믿음의 사람들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그런 기도가 향기나는 기도가 될 것이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5:8b)
염려조차도 주남께 온전히 맡기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 응답 받는 …
Ⅲ.하나님께서 들으신 기도의 응답.(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리하면”은 역시 앞에서 이미 지적한 부분을 전제로 받는 말씀이다. “모든 [지각, 헬, 누스(nous), 마음, 지능, 사고, 감각, (하나님이나 사람에 있어서) 이해]에 뛰어난 하나님”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어리석고 사리판단을 할 수 없는 나무 우상이나 금속의 우상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3~36) 하는데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그러면 여러분은 인간의 이해를 훨씬 더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현대인] 기도의 결과로 오는 최고의 또는 최초의 응답은 마음의 평화이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부터 하나님은 평안케 하시고 고요케 하셔서 보다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판단을 가능케 한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가치 기준이 흔들려서 상황을 바로 판단할 수 없게 되는데 믿음으로 기쁨으로 하나님께 맡김으로 흔들림 없이 바른 판단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그리스도인의 시험준비의 양면성-실력과 기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국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주님께서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하셨고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했는데 이런 모든 말씀은 결국 우리의 천국이 환경이나 조건의 변화이기 보다는 자신의 변화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님은 우리의 환경도 뒤집으시고 바꾸시기도 하시지만 보다 근본적인 역사는 우리 각자의 중심에서 시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인 말씀이 곧 생명이며 영생이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8)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요12:50)
하나님 아는 것이 영생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하나님의 나라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통치의 개념으로 이해함이 옳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이삭에게 처럼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창26:2) 하시는가 하면 야곱에게처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창46:3~4f)는 상반된 명령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서로 다른 명령은 이 세상의 형편의 변화 때문이고 보이는 것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기준을 둬서는 안됨을 경험케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갈등해서는 안되며 교회당 속에만 하나님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이다. 말씀 안에 순종하며 산다면 세상에서도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6~7)는 분명한 약속을 들으면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많은 신앙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만든 영화나 연속극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그 내용에 빠지고 몰입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고, 믿음의 사람들조차 연속극 같은 경우는 그 시간이면 모든 것을 중단하거나 마무리해 놓고 어김없이 TV 앞에 앉게 된다. [연속극 할 시간 전에 이것 끝내야 되]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함을 보면서 역시 인간은 거짓됨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기도의 내용보다도 기도하는 사람 자체를 먼저 보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4~5) 짜증스러운 얼굴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겠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우리 내면의 깊은 심연에 주님의 고요가 있고 그 감사와 기쁨이 어떤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자체가 구별된 모습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다.
그 응답도 우리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6~7) 폭풍처럼 우리의 주위를 휘졌는 어려움 속에서도 염려는 불신자의 몫으로 알고 어떤 상황이든지 기도와 간구를 감사함으로 아뢰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 생각을 지키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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