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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엡 4:25~32 2006-09-03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우리는 바울 사도의 옥중서신 중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들을 계속해서 생각해오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내용은 썩어질 옛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방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고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누리게 될 거룩한 하늘의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삶의 자세들을 가르치면서 신령한 삶을 격려하는 말씀이다.

오늘 첫번째로 “그런즉”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은 앞의 21절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라는 말씀에 연결된다. 물론 21절의 뒤로 계속되어지는 당부의 말씀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2~24)는 부탁과 연이어 오늘 본문으로 이어짐을 본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3:10에서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말 함으로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면 생각과 가치에까지 새로워져야 함을 가르치고, 당연히 그러한 새로운 가치관은 외관상으로 나타나는 삶에 있어서도 새로워야 함을 오늘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안의 새로운 삶이라고 하는 것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미움을 받고 멸망을 당한 것은 애급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유케 하셨음에도 여전히 애급의 종 노릇 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애급에서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적응치 못한 이유에서였다.

우리에게 ‘향수(鄕愁)’가 아름다운 것이고 그리운 것이지만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세상의 향수, 죄악의 향수에 젖어있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딸이여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러하면 왕이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시45:10~11) 결국 과거의 집착은 특히 그것이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경우에는 오늘 자신의 현재 신분을 잊어버림으로 지금의 아름다움 조차 일그러지게 되고 사랑 받지 못할 모습이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거듭났다면 하늘의 가족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고 과거의 죄에 살 때의 모습 그대로를 지켜간다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는 물론이고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결코 사랑 받을 수 없는 일그러진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모두 애급과 같은 세상의 사람으로는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하늘의 가족다운 면모를 확인하여 하나님께는 순종으로, 같은 천국의 백성으로서는 서로에게 힘과 위로와 용기와 격려를 끼치는 …



Ⅰ.교회는 가족 그 이상이다.(25, 29, 3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오늘은 먼저 중요한 부분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이 말씀은 교회의 가장 구체적인 조직을 말씀하시는 부분들에서 바울 사도가 사용하는 표현과 같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거나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7) 하신 것이다. 사실 지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몸의 부분이라는 말씀이고 이것은 가족의 보다 결속된 의미를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시고 우리가 그 지체가 된다고 하는 가르침은 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중심 사상이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2~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8)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거듭난 공동체인 교회는 몸이요 가족이라고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마귀 사탄의 종이 아닌 이상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에 있어서도 그런가 하는 것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요8:41f) 라든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요8:44f)고 책망 하심으로써 진리이신 주님을 불순종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 즉, 어두움의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으신다.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할 때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7가지 정도를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가족이요 지체이다. 가족은 일차적으로 같은 피가 흐르는 관계이다.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연하여 흐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같은 몸이 아니며 가족이 아니다. 수혈을 할 수 없는 피는 혈액형이 같지 않은 피다. 가족은 반드시 연관된 혈액형을 가지고 태어나고 살아간다. 그것이 곧 가족이라는 증거이다.

교회의 가족이란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나눈 공동체이자 가족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자격이 없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인 우리들이 매주 그리스도의 피를 포도즙으로 기념하며 나눔으로 이를 더욱 분명히 확인하는 것이다.

이 주님의 만찬을 나눈다고 하면서도 가족의식을 갖지 못하므로 차별대우를 하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바울 사도는 강하게 책망하는 것을 본다.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고전11:21~22f)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흐르고 있는 지체요 가족 공동체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2.이권의 관계나 거래의 관계가 아니다. 특히 요즘 가족을 구성하는 결혼의 관계가 순수한 사랑의관계가 아니라 거래처럼 되는 까닭에 깨어지는 것도 그만큼 쉬움을 본다. 즉 거래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거래할 것이 없어지면 깨어지기 마련인 까닭이다. 이런 이유에서 거래관계로 이루어지는 결혼은 깨어지기 쉬운 것이다. 사랑은 절대로 거래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고 거래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고전13장은 역 거래적이다.)

하늘의 백성으로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 ~ 때문에” 라는 이유는 교회 안에서 오로지 한가지 뿐이다. “하나님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때문에” 교회에 만약에 육신적인 유익을 위해서 속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옳지 못하다. 사랑 받은 이유 때문에, 구원 받은 이유 때문에, 하늘의 가족이라는 이유 대문에, 천국을 함께 가는 가족이기 때문에, 때로는 나 자신이 손해 보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 함께 속하여 같은 무리로 움직이는 것이다.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육신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하늘의 가족으로서 합당치 못한 것이다. 하늘의 가족은 오히려 스스로 손해를 각오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임을 잊지 말자.

3.계급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속의 대상들에게 가족처럼 대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1~2) 이것이야 말로 가장 가족적인 모습이다.

사회적인 계급이 가정에서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가정 속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자녀요 형제라는 관계의 이유로 불러지는 것이 가정이다. 그런 이유에서 하늘의 가족인 교회에서는 직분은 존재하되 직위는 없다. 즉 횡적인 관계는 있어도 종적인 관계는 없는 계급이 아니라 지체의 자리, 섬김의 자리가 있는 가족관계요 지체의 조직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곳이 가족 관계이다. 오늘날 이러한 자연적이고 당연한 모습이 일그러져 가고 있어서 영적인 가족의 모범을 세상의 교회 속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4.서로 협력하여 몸을 세워가는 관계이다. 요즘 가정들이 이런 역할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성경에서의 역할을 분명히 따른다면 교회나 가정들이 절대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전12:19~21)고 각 지체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말씀의 앞부분에서도 교회의 직분을 주신 것을 말하고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11) 라고 지적한 다음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고 가르치고 있다.

베드로 사도도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고 당부하고 있다. 교회는 각자가 가족으로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하늘의 가정 교회를 더욱 견고케 해야 한다.

5.가족은 서로를 위하고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하는 존재들이다. 보는 것 만으로 감사의 관계요 기쁨의 관계이다. 바울은 떨어져 있으면서도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살전2:17)고 고백하고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하여도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살전3:10) 한다.

비록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로마 교회의 교우들이지만 같은 하늘의 공동체요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롬1:11) 라고 고백하고, 친 자식은 아니지만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딤후1:4)라고 고백한다.

우리교회의 지체들 모두가 참으로 그러한가? 마치 친 혈육의 그리움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 한 주간을 얼굴 보기를 사모하는 하늘의 가족인가? 모기를 사모하고 기대하는 얼굴로 만나는 모습 자체가 세상에서의 어려움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이것은 사람이 너무 많으면 퇴색될 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누가 누군지를 모르는 관계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고난과 영광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이다.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이다. 이런 입장에서 교회를 방주에 비유한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고전12:26) 세상은 행복을 슬픔을 진정으로 함께 나누기 어렵다.

그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온전한 가족이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 결혼 주례를 할 때 자주하는 말이 결혼이란 거친 폭풍도 함께 견디고 순풍에 낚시질도 함께 즐기는 것이라 했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즐거워 할 수 없다면 가족 됨의 모습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잇다.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란 함께 가는 공동체이다. 가족은 같은 목표를 향하여 간다. 그래서 가훈(家訓)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영원한 가족인 교회 공동체의 가훈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이요 말씀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마리아에게 “…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요20:17b) 라는 기록을 읽을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원리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다. 서면 가족 여러분들은 고난과 영광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가?

7.격려하고 위로 받는 공동체다.(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세상에서 일하다가 실수를 하고 상사에게나 부하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돌아오면 가정에서 그런 상처는 치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면서 모함 당하고 저주를 당하고 미움을 받고 이 교회의 가족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배를 통해서 치료되고 격려되어야만 한다.

말씀대로 의롭게 세상과 투쟁하며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교회에서 더욱 상처를 받고 힘겨워 한다면 그런 교회는 문제가 있다. 교회는 죄를 짓는 자들에게는 범죄에 대한 경계를 주고 죄와 세상과 더불어 의를 위해서 투쟁하는 선한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용기와 격려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늘 말하지만 죄를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더욱 죄질 담력을 얻게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의로운 하나님의 가족들을 격려하는 곳이다. 영적인 일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담대함을 가지도록 격려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다. 도적질하고 거짓말 하는 자를 두둔하는 가정은 병든 가정이다.

이해되고 소화되는 공동체이다. 먼저 정죄하기보다는 감싸고 서로 나눠 연대책임을 지는 관계가 가족공동체다.

가족으로서의 가장 치명적인 병패는 남의 가족과 같지 못하다고 불평하는, 그것도 옳지 못한 다른 가족을 부러워 하고 본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이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8:5b) 라는 요청에 하나님이나 선지자 사무엘은 대단히 섭섭하게 생각하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



Ⅱ.그러나 관계에 있어서 질서는 분명히 존재한다.(26~28, 30~31)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28)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가족은 여러 연령계층으로 존재한다. 나이 연만한 노인도 중년도 청년도 그리고 어린 아이도 함께하는 것이 가족이다. 이런 각각 다른 연령의 계층이 투쟁 없이 공존하는 기관은 가족 외에는 없다. 세상의 회합은 이권에 의해서 연령에 의해서 취미에 의해서 여러 형태를 가지지만 가정이라고 하는 기관은 그것과 전혀 다르다.

세상은 어떤 단체건 규범을 만들고 그 규율에 의해서 제어 되지만 가정은 특별히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혼란이 없이 질서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기록된 법률이 없어도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위계질서(位階秩序) 라고 한다. 세상에서도 명문의 집안일수록 예의를 챙긴다.

사실 가정이 법으로 존재한다면 대단히 삭막할 것이다. 우리는 이 가족이라고 하는 교회 속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과 필요한 자세들을 나머지 본문 속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분냄으로 어려움을 일으킬 수 있다.(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가족이라는 공통체는 약점이 잇기도 한데 그것은 서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보다 말에 상처를 입기 쉽다고 하는 데서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는 한마디의 말에도 신중할 것이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시4:4)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2.서로 헌신하는 공동체이다.(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늘의 가족 공동체는 게으름을 권장하지 않으며 헌신하는 자들이 칭찬을 받고 격려되어야 한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살후3:10~11)

열심이 일하여 끼치는 공동체로 물론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소비만 할 수 밖에 없지만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한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3.거룩한 공동체를 힘있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함께 하신다.(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4.세상적인 것, 정욕적인 것을 사용할 수 없는 공동체이다.(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이것은 다 거룩한 공동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2~5) 너도 나도 다 아버지로부터 용서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서로”라는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