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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후 9:6~15 2006-08-20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 아는 말을 왜 새삼스럽게 하는가!’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사실 보이는 세상의 어떤 존재들에게 보다 주님께 너무 소홀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이 쓰여지던 시대인 일세기에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많은 증거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름은 그리스도께 드려진 것과 같은데도 사실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에게 헌신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죄의 영원한 저주와 죽음에서 사 주신 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자들이다. 그 받은 것들을 헤아려 보면 참으로 엄청나다. 죄의 용서에서부터 소망 없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소망과 하나님 영광의 나라 상속권 절망의 단절, 마음의 평화 악으로부터의 영원한 보호[…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창조주 하나님의 동행, 영원까지 함께할 천국 신앙의 동료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받았고 누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 헤아려보면 참으로 죄송하기까지 한다. 주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에 비교되지 않을지라도 주님께 드리는 것들을 손꼽아보면 너무나 황송해서 참으로 주님 앞에 고개를 들기도 부끄럽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들은 마음만 있다면 더러 있다. 물질과 시간과 마음과 기도와 말씀을 읽거나 듣는 것과 받은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도 역시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각자는 과연 무엇을 드리고 있으며 특히 우리 육신의 삶과 관계된 것에 사용하고 있는 것보다 충분히 드리고 있는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어서 못 드린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한다면 모든 것을 다 주님을 위해서 드려야만 할 것이다. 바울은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7) 라고 책망하고 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로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은 마게도니아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기꺼이 풍족히 드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말씀은 주님으로부터 풍성이 받은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드림으로 나타낼 것을 권면하고 있는 교훈이다.

오늘 제목으로 선택한 말씀인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 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드림에 대한 기본적인 모습을 일깨워주는 데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우리의 주님께 드림에 있어서 모든 일에 부요하게 드릴 수 있는 조건은 바로 드리려는 마음의 자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언제 어느 때나 주님께서 요구하실 때 몸이든 물질이든 시간이든지 드림에 풍족하므로 자신이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감격과 그 드림에 함께 동참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감격을 함께 이끌어 내는 우리 교회와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



Ⅰ.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8~10)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우리는 이 원리에서 항상 욥의 고백을 떠올리게 된다. “…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사실 이런 고백을 삶으로 실천했던 욥이었기 때문에 잃었을 때도 태연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진 시간도 사람들도 물질도 지식도 공간도 가지고 온 것은 한가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주신 것들을 드림에도 풍족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받음에 합당한 자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기쁨으로 드리는 마게도니아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항상 모든 일에 넘치도록 풍족하였다. 사실 세상적인 크기의 기준은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다. 물질의 크기 시간의 길이 다 우리 시간과 공간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나님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하나님께는 상대성 이론(E=MC2)도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그 드림의 마음이고 중심이다. 사람은 드리는 것의 양과 시간의 길이를 계산하지만 주님께는 그러한 결과 물보다 드림의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이다. 본문의 마게도니아 교회의 성도들을 칭찬하신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치에서일 것이다.

1.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사람들 누구에게나 늘 넉넉하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

그런데 그 넉넉하게 하신 이유를 연이어 적고 있다.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진 넉넉함을 항상 하나님의 주시는 의도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리가 영적인 것 보다는 육신적인 것에 치우쳐 있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일년의 계획을 세우면서도 대개의 경우 하나님 중심이 아닌 우리 자신 중심의 계획이 되고 만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 믿음의 사람들은 대개 연초에 올해는 이렇게 저렇게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지만(성경도 한번 통독하고, 기도를 하루에 한 시간이상은 하고 …) 시간이 가면서 다시 육신 중심의 계획으로 바뀌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뜻을 이루는데 쓰기 위해서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9; 시112:9) 하나님께서 우리 유한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모든 것들을 주셨다는 사실을 이억하고 영원토록 남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위해서 사용해야만 한다.

2.주님은 우리에게 양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뿌릴 씨를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10) 좋은 일을 위하여 심는 자에게 재생산을 위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현재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계속 결실을 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씨를 뿌려야 하는데 뿌리는 것은 곧 주님을 위해서 다시 쓰는 것이다.

여기에서 맺어지는 열매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먹을 것과 뿌릴 씨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것과 같이 악한 것이며 본전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또 그것은 하나님께만 영광이 아니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고 그 의의 결실을 보는 자들이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좋은 것들을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다시 사용함으로 의의 열매가 가득하는 …



Ⅱ.신앙 속에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11~12)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 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여기서는 연보 즉 물질을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결국 두 번씩이나 “…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11b) “…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12b)고 기뻐하고 있다. 특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 하여 …”(11f) 결국 하나님의 채우심에 확신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고 어떤 방향에서든지 드림에 부요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만 부요할 뿐 하나님께 드림에 대하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 하여 …” 라는 표현은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 대개 물질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질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이고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실제로 바울이 모델로 세워 말하고 있는 이 마게도니아 교회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5) 라고 고백하고 있다.

오늘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의 몸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고 바울 사도는 권면했고 주님은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의 기도를 드리시다가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막14:37)고 안타까워 하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제사를 말하기를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5~16)고 일깨워주고 있다.

믿음의 삶 속에서 드리는 헌신이든지 시간이든지 물질이든지 표면적으로는 비록 사람이 받을지라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Ⅲ.드리는 것으로 믿음은 증명된다.(13~15)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우리의 신앙적 행위가 바로 우리들의 믿음의 진실성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 …” 결국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일 수 없으며, 표현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약2:20)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는 증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바로 앞에서 고린도 교회의 교우들을 향하여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8~9)고 같은 말씀을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친히 가난해 지셨는데 그 희생으로 부요해진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대하여 드림에 부요하지 못하다면 주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신앙에 있어서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사람을 의식하고 해서는 안되며, 사람이 마음을 두는 곳은 자신의 사랑이 가는 것이며 보화가 있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도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고 말씀하신 바 있다. 우리가 교육에 그만큼 재정을 많이 쓰는 것은 자녀들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을 위해 어려울지라도 그만큼 물질을 투자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위해 쓰는 물질이나 마음이나 시간을 자녀들을 위한 것보다 못 사용한다면 그것은 사실적으로 하나님을 자녀들보다 못하게 여기는 구체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이 걸림이 될지라도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주님을 위한 시간과 물질과 모든 것을 잘 사용할 때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감격이 될 것이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를 위하여 몸과 시간과 물질을 드림으로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저와 여러분 …



Ⅳ.하나님의 은혜는 드린 만큼 맛볼 수 있다.(6~7)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이 풍족하고 넘친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5) 그러나 그 말할 수 없는 넘치는 은혜는 나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함을 표현할 때 나의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6)

오늘 날 신앙을 한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물질보다도 더 주님께 드리기 어려워 하는 것이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시간은 사실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이고 흘려보내면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을 금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신비한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은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진정으로 주님을 위해서 쓰기만 한다면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큰 것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이 주님의 말씀을 비단 물질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다면 그런 사람은 아직 주님의 구원과 능력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라는 약속은 모든 원리에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다. 사람들은 적은 것을 투자하고도 큰 것을 욕심 낸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죄성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히 주신 분이시기 때문에 풍성한 것을 요구하신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7) 그리고 풍성히 내는 자에게 다시 풍성히 되돌려 주신다. 이 세상에 잠시 있다 없어질 것들보다도 주님을 소홀히 취급한다면 주님은 그러한 사람의 삶을 부요하게 채우실 수 없으실 것이다.

시간이 모자람을 느낀다면 먼저 주님께 충분한 시간을 드리라! 성경을 읽는 시간이든지 기도하는 시간이든지 무엇보다도 예배하는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 보라! 확실히 그렇게만 된다면 시간에 쫓겨 허둥대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거지가 아니시다. 이 세상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하고 그 나머지로 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주님으로 하여금 그러한 초라함을 느끼게 해드려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찌꺼기를 기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최고를 요구 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최고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세상의 어떤 것 보다도 귀중히 대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 자신이 큰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협박이 아니다. 시간이든 물질이든지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곧 현실에서 부요를 넘치도록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