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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25)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오늘의 제목이 인권이나 남녀 평등을 부르짖는 오늘의 시대에 적절한 표현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내용은 사람을 향하여 하는 표현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삶 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요소를 우리의 삶으로부터 철저하게 쫓아내야 한다는 바울의 안타까운 권면이다.
우리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늘 하나님을 안타깝게 하고 우리 자신들이 돌아볼 때 부끄러운 것은 때로 영적이지 못하고 너무나 육신적인 행동을 한 것들이다. ‘아 그 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그러나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부끄러운 것 뿐이다. 이런 회한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의 신앙의 삶이 점검되어야 하고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Ⅰ.이것은 비유이다.(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창세기 16장과 21장이다
바울은 이 내용을 율법과 복음, 또는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비유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현실적인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응용할 수 있고 그런 비슷한 일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1)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 지 십 년 후이었더라 (4)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이스마엘을
(1)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6)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9)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10)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11)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12)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21:1~12)
Ⅱ.언제나 육체를 따라 나는 것들이 약속과 성령을 따라 난 것을 조롱한다.(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자유를 누리는 것은 분명한 특권이지만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은 경계 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5:13)
에덴의 범죄 후의 죄 투성이인 인간의 육체에서는 절대로 선한 것이 나지 않는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
세상에서 난 것, 육체를 따라 난 것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조롱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애급적인 것, 세상적인 것들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오는 것들을 비웃고 조롱한다. 그리스도인들도 경건하지 못하면 이런 세상적인 편에서 참된 약속을 비웃을 수 있는 경계는 얼마든지 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앞서서 생각하려 하고 경건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우리의 육신의 일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잔 머리를 굴리는 경우까지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분임을 안다면 절대로 그런 어리석음은 범치 않을 것이다.
Ⅲ.하나님의 명령은 육체를 따라 나는 것들을 우리의 삶에서 쫓아내라고 명령하신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1)
이런 육체적인 것들이 영적인 것, 하나님의 약속으로 난 것들에 굴복 될 때 하늘의 예루살렘 온전히 신령한 가족의 일원이 될 것이다.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27)
이 말씀은 이사야서 51:1의 인용이고 3절까지 계속 이 약속의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육체적인 것이 우리의 삶에서 온전히 추방을 당하고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권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될 때 하늘의 가족은 그런 사람의 가족이 될 것을 주님께서도 말씀 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이 약속은 육체를 따라 난 것이 우리의 삶에서 득세한다면 불가능한 약속이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을 우리의 삶에서 쫓아낼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언약이다.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은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힘겨웠지만 순종함으로 하늘의 영광의 이름들을 나란히 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이런 명령을 기쁘게 순종치 못한다면 여광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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