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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로새서는 바로 복음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논증하는 귀중한 책이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7)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골2:2)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구원의 공개된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확신 시킨다는 사실에서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특별하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바로 깨닫고 거듭난 하늘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이 3장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1~4절 한 마당은 하늘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고, 5~11절에는 그리스도인의 수평적인 관계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세를 통해서 그러한 삶이 가능한가를 가르치는 내용이 또 한 마당을 이루고 있고,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택한 이 내용은 하나님의 도구로서 교회라는 하나님의 나라 속에서 어떻게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한 마당이다.
그리고 본문 다음으로는 가정과 사회 속에서 이러한 원리를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오늘 우리가 여러 가지 은사와 달란트를 통하여 주님의 나라를 받들어 섬기고 하늘을 위한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가져야 하는 자세가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그리고 앞부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합당하게 감당하기 위한 자세를 충분히 다룬 다음에 구체적인 과제를 오늘 제목처럼 감당해야 한다는 대단히 논리적이고 영적인 부분들을 세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영적인 일을 감당하기 위해 갖춰 입어야 할 의복과 함께 일하는 자들에 대한 관계와 각자의 내적인 자세와 일에 대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하늘나라의 일군의 모든 부분을 총망라하여 지적해 주고 있다.
사실 우리가 이 죄악 된 세상에 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고 또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일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황송한 일인 만큼 어떤 부분의 하나님나라의 일을 감당하던지 이렇게 충분히 영적인 원리 속에서 행함으로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고 일을 감당하는 모두에게도 큰 감격이 될 수 있기를 …
Ⅰ.하나님의 일을 위한 작업복.(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작업복을 말하고 있다. 어떤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적당한 옷을 입는 것은 당연하다. 소방관은 당연히 열에 잘 견딜 수 있는 특수한 옷이 필요하고, 식당에서 serving을 하는 옷은 당연히 청결하고 거추장스럽지 않은 옷이어야 하고, 결혼 예식을 돕는 사람은 고상하면서도 분위기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움직이게 되어있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신령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육체의 옷이 아니라 영혼의 옷으로 하늘의 일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옷을 입어야 한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을 때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보다는 영적인 전쟁을 어두움의 세력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입어야 될 옷도 바울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0~11)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내용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모습을 당부하고 있다.
1.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이라는 조건을 말씀하신다. 왜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라고 하시지 않고 구태여 뒤에다 “…처럼” 이라고 말씀하실까? 이 말씀을 첫째로 이해할 것은 우리 자신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으로 보기보다는 바로 우리가 옷 입어야 될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를 해보자. 이러한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이라는 모델의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주님께서는 구속의 큰 사명을 이루시기 위하여 바로 종의 형상으로 인간의 몸을 입으셨음을 안다.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 그대로의 이해는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하신 그대로의 내용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서는 진리를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구원을 완료형으로 기록하고 있는 성경말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현은 어찌 보면 부조화 같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며 우리의 생을 마무리하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는 여전히 온전치 못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온전치 못하고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동안 오직 그리스도를 입고 사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 받는 존재이며 긍휼 얻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이라는 표현은 늘 하나님아버지의 택하심과 사랑 받음에 합당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다. “여긴다.”는 의미는 아직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렇게 간주한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그래야 우리가 끊임없이 겸손할 수 있을 것이고 조심할 수 있을 것이다.
2.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앞에서 이미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8)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9b)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 입어서는 안될 옷들을 벗어버리라는 당부를 듣는다.
그러나 벗은 체로 있어서는 안되고 진정으로 입어야 할 것을 다시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는 당부를 듣는다. 바울은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5:3)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입어야 할 옷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한 옷들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옷인가? 바로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죽음의 땅에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실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들이면서 대부분 성령을 통하여 맺어지는 열매의 종류들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하늘의 사신다운 옷을 갖춰 입고 일해야 그 일이 제대로 된다. 믿습니까?
Ⅱ.함께 일하는 자들에 대한 자세.(13~14)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함께 일한다고 하는 것은 생명을 함께 하면서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같이 먹고 같이 쉬는 것이다. 일을 잃으면 같이 잃고, 새참도 물도 같이 나눠 마시게 된다. 그런데 좋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언제나 어렵고 힘겹고 서로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가 어렵다.
1.잘못이 있음을 보게 될 때, 실수를 발견할 때가 문제이다.(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함께 일하는 사람이 모자라고 허물 투성이어서 그것이 나에게 어려움을 가져오게 될 때 우리는 견디기 어렵다. [혐의, 헬, 몸페(momphe), 실수, 다툼, 비난 ← (멤포마이)memphomai, 잘못을 발견하다, 부정한 것을 보다)] 결혼을 하고 보면 상대의 혐의가 보이기 시작하고 직장의 상사도 부하도 왜 저런 사람이 나와 함께 일하게 되었나 한심할 때가 생긴다.
그러나 죄의 습성을 가진 인간은 누구에게나 좋은 면 보다는 허물 투성이이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렵다. 또 우리가 세상 밖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수단은 많아서; TV를 통해서나 여행을 하면서 볼 수 있고, 온 갓 종류의 삶을 보고 평가하고, 요즘은 썩은 창자를 내시경을 통해서 속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지만, 나라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난점이고 자신의 상태를 바로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래서 들보를 가지고 남의 티를 보게 되는 모순을 주님은 지적하신다.(마7:3~5)
그럼에도 세상의 사람들과 달리 하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처리 방법이 다르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받아주고 서로 용서하는데 그 기준이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하란다. 죄로 음흉하고 시커먼 우리의 마음 속의 수치와 허물을 보시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죽이시는 주님이 우리가 서로를 용서해야 이유이고 기준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계시고 십자가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주님의 나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나 주님의 당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함께 일하는 관계를 더욱 견고히 묶어줄 띠가 있다.(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 인간의 관용과 용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한가지, 더 확신한 연결고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남녀의 에로스적인 것도 아니고, 친구간의 우정의 사랑도 아니고, 가족간의 스토르게 적인 사랑도 아닌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인 십자가의 사랑을 더하는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특히 “이 모든 것 위에” 라는 선행사가 중요하다. 동료에게 허물이 보이는 것을 예수께서 나를 십자가의 피로 용서하신 것같이 용서하는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 헬, 쉰데스모스(syndesmos), 함께 묶다, 함께 갇힌 자가 되다]”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동료의식은 허물을 용서하는 소극적인 것에서 끝나지 않고 상대가 자신의 허물로 갇힐 때에 나를 그 사람과 함께 가두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동역자 의식이다.
Ⅲ.일하는 자신의 마음 자세.(15~16)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앞의 내용들이 함께 일하는 동료간의 관계라면 이15~16절의 말씀은 일하는 자신과의 문제이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본인의 일하는 마음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1.평강과 감사의 마음으로 일하라!(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평강, 헬, 에이레네(eirene), (합하다, 연결하다, 에이로eiro 에서) 평화, 화평, 고요, 번영, 일치, 조화- 1세기 보편적인 헬라인들의 평화의 축복] 하나님의 일과 나 자신과 괴리를 느끼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고요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죄로 갈등 하는 인간의 마음은 절대로 고요할 수 없고 수 없는 근심의 파도가 휩쓸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평화의 마음을 소유할 수 없는 죄로 인한 불안의 존재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런 불안의 상태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를 확실히 해결 받은 심령 상태는 그 사람의 육체가 거하는 상황에 관계없이 무한한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상황에 관계없이 깊은 바다 속 같은 평화와 고요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주신 가장 흔한 은혜이다. 466:1.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 하도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세상과 사업과 하나님의 일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조차 잃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일 뿐이다. 주님께서는 죽음의 십자가를 향해 다가 가시면서도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제자들을 격려하셨고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도 이미 이를 누리며 살았다.
수많은 어려움과 사울 왕의 애매한 질시를 받으면서도 다윗은 이 평화를 넘치도록 누린 인물이었고 그러한 고백이 바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1~4)
세상의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하나님의 충성 된 일꾼은 늘 가슴에 양들이 한가히 풀을 뜯고 졸졸 흐르는 실개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말씀과 노래를 가지고 일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꼭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일하는 모양이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콧노래를 부르며 하는가 하면 바로 그 일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일하는 도구를 내동댕이 치며 그 도구들에 화풀이를 하며 일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전자의 모습이어야 옳다. 먼저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되 그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유치한 세속의 노래가 아닌 신령한 영혼의 노래, 찬양의 곡조가 자연스레 흥얼거려지게 되는데 그것은 세상 일의 형통보다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실에 대한 감사로 구원 받은 사실을 감격하여 부르는 찬양의 노래, 영혼의 노래일 것이다.
억지가 아닌 감사의 찬양 기쁨의 찬양이 감사로 흘러 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게 말씀과 찬양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억지가 되지 않고 감사가 되며 기쁨이 되며 일의 형통의 유무에 관계없이 노래가 지속되게 될 것이다. 믿습니까?
이왕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나눠짐이 없는 고요와 평화의 마음, 말씀과 기쁨의 찬양이 어우러지는 일은 힘겹지 않고 즐거움으로 감당하게 될 것이다.
Ⅳ.일의 결과에 대한 자세.(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무엇을 하든지”라는 것은 이해가 어렵지 않다. 믿음의 사람들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마디의 말도 우리를 죄와 절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과 수치를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식하고 한다면 반드시 덕스러울 것이며, 그런 자세로 진행된 일은 그 결과에 대해서도 교만하거나 낙심치 않을 것이다.[아씨시의 프란시스- 하나님은 나보다 더 못한 자가 없어서 나를 택하셨다.]
성취에 대해서도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하셨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이 마지막 부분의 말씀이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고백하는 바울은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게 영광을 드릴 때 비로소 진정한 영광이 될 것이다. 죄인 된 인간이 아무리 거룩하게 무엇을 하나님께 드린다 해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 속죄의 보혈이 드림에도 필요할 것을 깨닫는다. 받음에도 주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고 드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드릴 때 하나님께 감사가 되고 영광이 될 것이다.
유대인의 수사도라고 하는 베드로도 같은 당부를 주고 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10~11)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일하려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의복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고백하고 순종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입은 바 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의 옷으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이다.
함께 천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부정한 것이 발견되더라도 허물을 보게 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을 생각함으로 용서하고, 가장 견고한 사랑의 띠인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함께 묶어, 일체감을 가지고 서로를 위하여 감옥에도 같이 갈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를 위해 일하는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는 평강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한 감사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감격으로 행해야 하고, 어떤 결과를 이루었을지라도 나와 함께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세에서는 실패를 한다고 할지라도 절망치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결과나 조건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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