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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민족간에나 나라간 지식에서나 과학 분야에까지도 계속 분열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것이 어떤 분야에서는 필요할 수도 있지만 사람간의 관계인 국가나 특히 교회에서는 무엇보다도 분열은 경계 되고 있는 부분이다.
범죄 하여 물로 쓸어버림을 당하고도 다시 번성한 인류는 바벨이라는 곳에서 분열을 방지해 보자는 시도가 오히려 나눠짐을 부채질하는 이유가 되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11:4)고 시도하지만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11:9)
결국 범죄 한 사람의 방법으로는 일치라거나 하나됨을 꾀하는 데는 성공이 불가능함을 확인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벨에서 흩어진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이루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이 땅에 구원의 교회가 세워지는 오순절날, 이 땅의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됨을 성경은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2:11)
그러므로 이 땅의 교회야말로 하나님께서 인류의 하나됨을 위하여 만드신 유일한 기관이다. 그럼에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로 채워진 교회는 세상 속의 같은 나눠짐의 아픔들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사실을 일찍이 아셨던 주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 앞에서조차도 하나님아버지께 절실히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11, 23)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하게 다루시고 보시는 기관이 주님의 교회라고 하는 데는 성경을 읽고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가장 보범적인 교회이고 기쁨이 주제였던 빌립보 교회 조차도 하나됨에 있어서는 바울의 안타까움을 들을 수 밖에 없는 부족된 부분이었고 그러한 안타까운 현상은 이 역사가 다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분열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하나됨을 힘써 지켜가야 할 것이다.
공동체의 일치는 겉모양으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1:27) 그 교우들 서로간의 교제에서도 또한 확인된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받은 귀한 선물들을 열거하면서 호소한다. 빌립보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의 권면, 사랑에서 나오는 위로, 성령을 통하여 이룩된 교제 등등이 있었고, 이 선물들은 이제 공동체의 삶 안에서도 또한 효과를 나타내어야 한다는 권면을 듣는다.
바울은 불화와 이기심이 빌립보 교우들을 역시 위협한다고 보았다(1:17, 27; 4:2~3). 그는 이 점을 너무나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권면에 대한 아주 중요한 근거를 아버지의 인류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입고 종으로 오셔서 순종의 절대적 모범을 보이신 주님의 모습을 연이어 소개한다.(5~11)
마귀 사탄은 분열의 명수다. 구약성경의 솔로몬의 영광 바로 뒤에 연이어지는 남북의 분열이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세 이래로 있어온 역사 속에서 끝없이 분열을 조장해온 마귀 사탄은 예수께서 오셨을 때조차도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놓으려는 맹랑한 시도까지 감행했고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서 이런 일을 더욱 맹렬히 가속시키고 있다.
밤낮 참소하는 마귀 사탄은 기회만 있으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켜 흩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감행하기 때문에 항상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깨어 의를 행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더욱 경계의 자세를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당 재건을 이루는 데 있어 역시 이런 위험이 경계 되고 외형적인 예배의 처소의 보이는 모습을 구성하는 것 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성도간의 강한 하나됨임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일치, 말씀과 일치 성도간의 일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
Ⅰ.하나됨의 요소(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이 말씀은 다른 말로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①[권면, 헬, 파라클레시스(paraklesis); ‘남에게 도움을 청함’에서 유래, comfort, encouragement; 애원, 설득, 간청, 기쁨, 즐거움, 환희, 성가시게 의뢰함, 열심히 탄원함; 히12: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늘 우리를 가까이 부르시는 주님이시다.
②[위로, 헬, 파라뮈디온(paramythion); encouragement, comfort; 달램, 격려, 위문]
③[교제, 헬, 코이노니아(koinonia); partnership; 동료의식, 참석, 상호 교류, 자선, 교통, 분배, 우정; 고전1: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④[긍휼, 헬, 스플랄크논(splangchnon); sponge처럼 흡수하는, 창자(간장, 허파), 심정, 심장, 마음, 감정, 애정; 눅1: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자비, 헬, 오이크티르모스(oiktirmos);. pity, compassion; 불쌍히 여김, 동정, 친절; 롬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바울 사도는 같은 옥중 서신인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3:12) 라고 같은 권면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1)
이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세상의 논리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그야말로 은혜 즉, 선물로 누리는 것들을 의미한다.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부족할지라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우리 자신들이 온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권면을 받는 사람들이요,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도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롬8:26)으로 아버지께 열심으로 탄원하시는 덕택에 오늘 내가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하다.
우리를 달래고 격려하시는 말씀과 성령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성령과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 때문이며, 부족함에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애끓는 심장으로 중보의 기도를 지속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롬8:34)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오늘 믿음생활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감사할 수 있고 결코 고개들 수 없는 은혜 입는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단9:23) 그러므로 은혜 받은 자는 더욱 겸손할 수 밖에 없고 섬기는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Ⅱ.하나됨을 위한 태도(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여기서는 밖으로 나타나는 모든 인간의 내면적인 원인들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다.
①마음을 같이하여 [ho autos]는 단순히 ‘같은 것’이 아닌 ‘바로 그 자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마음을 같이하여”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라!”는 의미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아지려고 애써라!’ 거나 ‘그리스도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힘스라!’는 정도가 아니라 “너희의 마음은 그리스도 자신의 마음과 하나이어야 한다!” 라는 강한 당부의 말씀이다.
우리 각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 이라면 나의 마음은 없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바로 앞에서 빌1: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는 바울의 고백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창자가 다 썩어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내장으로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②같은 사랑을 가지고, 여기의 같은 사랑도 앞의 마음과 꼭 같은 표현이 쓰여졌다.[ho autos agape→ ten auten agapen] 바로 “그리스도 그 자신의 사랑을 가지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사실 오늘날 신앙 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가지가지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예수께 접근하고, 청춘 남녀는 에로스적인 연애 감정적인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예수를 사랑하려고 하는 것들이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고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러한 죄인들을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신 그 같은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긍휼로 사랑해야 한다.
그 외의 다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러한 세상적인 여러 처지와 종류에 따른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접근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거듭났다면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죄인들을 위하여 제물을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져야 될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뿐이다.
③[뜻을 합하며, 헬, 쉼프쉬코스(sympsychos), united in soul; 영으로 결합된, 즉 감정상 비슷한, 일치단결하여] 이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정신”을 의미한다. 세상에서도 어떤 지향하는 목표를 가지는 단체는 하나의 정신을 강조한다.[세상적인 비유이지만, 마치 이번 World Cub에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는 것을 온 국민이 목표로 같은 목소리를 내었던 것처럼]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같은 정신을 갖지 못한다면 여전히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일반적인 사람일 뿐이다.
역사 속에 복음의 능력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사람들은 하나님과 뜻을 합한 사람들이었다. 오늘 우리는 누구며 엘리야는 누구인가!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5:17~18) 차이는 하나님과 뜻을 합한 사람이었다는 것 뿐이다.
④한 마음을 품어, [마음, 엘, 프로네오(phroneo), 심적 훈련을 하다, 즉 감정이나 의견을 즐겁게 하다, 혹은 간직하다, 애정을 두다, 관심을 기울이다, 주목하다, 생각하다; 빌1:7f“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
바로 이 말씀 뒤에 연결되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라는 권면이 이 말씀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또 조금 뒤의 화평치 못하는 빌립보 교회의 옥의 티 같은 인물들인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는 당부에서도 나타난다.
교회의 실제적인 실천항목을 말씀하는 바울은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롬12:16)는 교훈을 주고 있다. 교회의 모든 분쟁은 그리스도와 한 마음을 품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다.
역시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도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는 충고를 주고 있다. 각자의 마음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드려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보고 교회를 보고 세상을 보자!
Ⅲ.하나됨을 위한 방해물들과 필요한 자세(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1.하나됨의 방해물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①[다툼, 헬 ,에리데이아(eritheia), 본래적 의미로 “고용되어 일하다”에서 유래 음모, 경쟁, 맞겨룸, 야망, 당쟁, 파벌; 고후12: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②[허영, 헬, 케노독시아(kenodoksia), 헛된 영광, 자만, 환각, 허영]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6) 하나님께서 약속하시지 않은 모든 것을 기대하며 일하는 것은 다 환상일 뿐이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믿음생활 하거나 일하게 되면 반드시 절망하게 될 것이다.
다툼과 자만심으로 일하는 것은 하지않음만 못하다. 하나님의 일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경쟁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감격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고백이 바로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2.하나됨에 반드시 필요한 자세.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①[겸손한 마음, 헬, 타페이노프로쉬네(tapeinophrosyne), 자기의 비하, 겸양, 낮은데 처하는 마음, humbleness of mind, humility;]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 골3:12“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벧전5:5f “젊은 자들아 …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
②“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누구든지 “그래도 나보다는 낫다!” 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여기에 “각각”이 중요한데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21)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4:2)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 맞겨룸이나 야망 그리고 파벌의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감격하여 하는 것이며 헛된 욕망을 실현하려고 해서도 옳지 않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자세로 언제나 자신보다는 남을 위에 세우는 자세가 그리스도를 높이게 되고 하늘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
Ⅳ.하나됨을 위한 행동(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할 일을 남에게 짐 지워서도 안되고, 자신의 일을 자기가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기서 만족해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의 일까지도 나 자신이 감당하는 자세이어야 한다. 그런 경지에 까지 이르는 것이 바로 ‘희생’이라는 말이다. 바울은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롬15:2) 하였고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 23~24)고 아울러 당부하고 있다.
세상의 논리는 ‘이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이지만,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말을 하거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이것이 주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것이 교회에 덕이 되는가? 이것이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가?” 라는 점검이 먼저 되어야만 한다.
세상에서는 자신의 일만 잘 해도 칭찬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것으로 온전치 못하다. 잘못된 신앙은 나의 짐을 남에게 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된 신앙은 아무 대가가 없이도 남의 짐 조차도 기쁘게 자신이 지려고 한다.
자신의 편리나 이익보다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고 교회의 유익을 생각하고 형제 자매의 유익을 먼저 챙기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때로는 힘겨움도 억울함도 주님께 위로를 구하고 하늘의 상급을 약속 받는 감격으로 이 땅에서의 서운함을 넉넉히 이겨가는 사람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31~33)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1~4공동)
이러한 자세로 주님의 모든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위로가 넘치게 될 줄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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