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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은 신앙의 일들을 행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제외시켜두고 사람이 원하는 것을 추진해 갈 때가 더러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보다는 사람이 더 원하는 것을 밀어붙일 수 있고, 더 심각한 일은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해 놓고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노라고 쉽게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 그 대표적인 예가 사울의 경우이다. 하나님의 뜻은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삼상15:3)는 명령이었지만 “사울과 백성이 …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9) 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이 사울을 찾았을 때는 “…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13) 라고 큰 소리치고, 그들이 행한 불순종을 지적하자 사실에 있어서는 자신들이 원해서였음에도 하나님을 위해서 이고 또 백성들이 원해서 그랬노라고 변명하는 것을 듣게 된다.(15, 21)
믿음의 사람들이 경성하지 못하고 믿음이 해이해지면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신앙을 단속할 필요가 있다.
[스가랴7:3~5(왕하25:8~9 BC586. 5.7. 예루살렘 멸망과 포로 됨의 날) “…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고 탄식하신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솔로몬의 이 교훈은 그의 전성기 때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의 말년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많은 주경가(註經家)들은 동의하고 있다. 솔로몬은 시작부터 전성기에 이르기까지는 언제나 하나님의 법의 지배를 받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의뢰했으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았고 그런 결과로 성경 밖의 기록들조차 그의 지혜와 영화를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극에 달할 때 그는 많은 이방 여인들과 정략적인 혼인을 하면서부터(이것부터가 불신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여인들의 부추김으로 하나님의 법과 지혜를 멀리하고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 방향으로 행동양식이 바뀌었고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는 몰락하여 그의 다음 왕조인 아들 르호보암은 그 자신의 실수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북쪽의 열 지파를 잃어버린 초라한 모습으로 나라를 이어 받게 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철저하게 섭렵하고부터 다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하나님의 법과 진리의 순종이 주는 엄청난 복과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김이 현재의 세상과 오는 세상의 확실한 보장이 됨을 이 잠언서와 전도서에서 기록한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이 기록들은 검증된 인생성패(人生成敗)의 비결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사람들이 깨닫고 순종하는 자세가 빠르면 빠를수록, 그리고 그 깨달음을 자신의 삶에 빨리 적용하면 할수록 그것이 진정한 복이 됨을 우리에게 경계해 주고 있다.
우리시대의 많은 신앙 하는 사람들은 본문 5~6절의 말씀을 노래로까지 만들어 부를 정도로 이 말씀은 우리의 귀에 익숙한 교훈이다. 함에도 안타까운 사실은 이 말씀이 실행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말씀은 풍성한데도 열매를 보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순종치 못한 것으로 실패한 인생을 부여잡고 탄식하고 절망하면서 원망해 보지만 그것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손해가 되는 것은, 인생은 두 번이 아닌 한번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이런 경계를 함께 들으면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면서도 늘 사실적인 면에서는 멀게 느낀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닌 즉, 생각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우리 각자의 삶을 움직여갈 때라야 비로소 순종이 되는 것이다.
특히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으로 대단히 두려워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속임을 당하실 분이 아닌 이유는 우리의 마음 속까지도 꿰뚫어 보시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갈6:7)
우리는 지금 교회당을 다시 옮겨 지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적어도 우리들이 생각하고 추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일을 하도록 지시하셨다고 볼 때, 어떤 경우라도 인간적인 계산이나 판단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감하거나 앞서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이루는데 온전히 순종하고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 두뇌로 계산하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다만 주님의 도구로서 충성을 다한다면 거기에는 불협화음이나 잘못되는 일없이 모든 일이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며 돌아보면서도 감사를 넘치도록 하게 될 줄로 믿는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나 일꾼들이 인생을 살거나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들과 거기에 따른 약속을 확인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이행했을 때 이루실 결과들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그리하면”이다.
이 약속이 여러분 모두에게 이행됨으로 “그리하면”에 뒤이어지는 복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
Ⅰ.어떤 조건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잊어서는 안된다.(1~4)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이 첫 부분에서도 우리 사람들이 그토록 사모하는 복의 조건이 둘씩이나 약속되고 있다. “그리하면, 그리하면” 사실 하나님께서 안타까워 하시는 음성이 “그리하면” 이라는 음성이다. “분명히 그렇게만 하면 복을 받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복을 얻지 못하는 구나!” 라고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나의 명령을 지키라!(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이 명령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주시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내 아들아!” 우리가 세상일에 깊이 관여하거나 붙잡히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바로 거기에 대한 경계의 교훈이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법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여기서 법이라고 하는 것은 [법, 히, 토라(Torah)]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모세오경 속에 기록된 계명을 일차적으로 말씀하는 것이고 오늘에 있어서는 구속의 십자가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이루신 사랑의 법 새언약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나의 피로 너를 사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둘 때 하나님의 백성 됨의 귀한 우리의 자리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약속의 이행에 대한 언약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어떤 일이든지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이루어가는 일은 그 생명이 길지 못하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주도하셔야 하나님의 영원 하심과 같이 생명이 길 수가 있고, 긴 것에서 끝나지 않고 평강이 그 일에 더하게 됨으로 기쁨으로 진행될 수가 있을 것이다.
2.인자와 진리로 떠나지 않게 하고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여기 [인자, 히, 헤세드(chesed), 은총, 선행, 친절하게, 인애, 자비, 연민]와 [진리, 히, 에메트(emeth), 확실한, 신실한, 옳은, 분명한, 참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과 참됨을 우리의 삶에서 떠나 보내는 것은 결국 세상 사람과 다름이 없고, 짐승과 다름이 없는 삶이 될 것이기 때문에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당부하시는 것이다. 목에 맨다는 표현은 생명을 건다는 의미이며 마음판에 새긴다는 의미는 마치 컴퓨터를 작동시키면 기본 운영 프로그램이 로딩이 되는 것처럼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언제나 마음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이 시작의 힘이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이 모든 삶의 출발지점으로 작용하게 될 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누리게 된다. 우리 사람의 한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든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든지 한가지도 충실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에 목숨을 걸 때 하나님께 은총은 물론이고 사람들에서도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엄청난 약속이다.
같은 잠언서에서 솔로몬은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16:7)는 진기한 약속을 확인해 주고 있다.
주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마음으로 지키며, 인자와 진리에 생명을 걸며 마음판에 새김으로 경영하는 모든 일들의 생명이 길며, 평화롭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
Ⅱ.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기본원칙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다가도 흐트러지거나 어떤 일의 진행이 늦어지고 지지부진 해지면 쉽게 그런 일을 돌파하기 위하여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일들에서 귀한 경험을 한 솔로몬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함을 경고해 주고 있다.
특히 “마음을 다하여” 그렇게 할 것을 당부하는데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에만 마음을 모을 때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귀한 약속이다. 특히 모든 일에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 되심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쉽게 우리의 일들을 구분하여 어떤 것은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다른 것을 맡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맡길 필요가 없을 정도의 작은 일은 존재치 않으며 하나님께서 어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안을 맡겨 드려도 결코 귀찮아 하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다.
특히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신앙의 부분뿐만 아니라 우리 육신의 삶의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다면 주님을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하다면 명목상의 하나님의 일뿐만 아니라 육신이 살아가는 문제 조차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리라는 것이 주님의 약속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약속은 이러한 확신 속에 비로소 우리의 말씀이 되어질 것이다.
특히 우리 각자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일일수록 더욱 주님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렘45:5f) 당부의 말씀을 주셨다.
어떤 경우는 우리 자신들이 자신의 일을 주도함으로 그르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일수록 주님께서 주도하시도록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럴 때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억지로 우리의 일에 개입하시려 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구원의 일에서부터 모든 일에서 그렇다. 우리가 실패 없는 인생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후좌우(前後左右), 안팎(內外面)을 다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 일의 경영을 맡길 때 반드시 형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범사를 맡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줄 수 없을 것이다.
알량한 우리의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범사에 모든 일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경영하시므로 형통하시기를 …
Ⅲ.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떠나야 한다.(7~10)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 부분에서는 앞의 하나님 경외의 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의뢰하고 경외하며 인정하는 보다 구체적인 요구들이다.
1.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꾸로 행하는 모습을 본다. 악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떠난다. 에덴에서부터 있었던 문제는 사람의 지혜가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라는 사탄의 부추김에 하와가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창3: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러한 교만 즉,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죄악과 자신의 지혜가 하나님과 같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독선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어리석음은 역사 속에 수없이 반복되었고, 언제나 이러한 인간의 사악함이 자신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을 막고 만 것이라고 예레미야는 경고한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5:25)
그런 이유에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그러한 결과로 계속적으로 악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솔로몬은 같은 잠언에서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3:34) 라고 증거하고 있고, 신약성경에 와서 야고보는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고 확인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고린도인들에게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겸손한 자,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악에서 떠나 있는 자에게 은혜를 아끼지 않으신다.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23:4)]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8) 주님은 약속하신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신속히 해결되고 삶의 중심이 강건해서 어떤 조건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권능으로 하나님은 같이 하신다는 약속이다.
2.가장 귀중한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라!(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율법시대뿐만 아니라 복음시대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때로는 주님을 우리의 자녀들보다도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요즘 자녀들은 왕으로 받든다.)
각자가 가진 재물의 가장 소중한 것과 수시로 벌어들이는 소산물에서도 가장 귀한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건강과 시간과 물질, 모든 것의 가장 귀중한 것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새 생명을 주님 때문에 받았다면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첫 것을 받으실 권리가 있고, 또 첫 것을 드리지 않는다면 기꺼이 받지 않으실 것이다. 예배를 드림에서도 연보를 드림에서도 봉사를 드림에서도 가장 귀한 첫 것으로 주님을 섬겨야만 한다. 절대로 세상적인 이유에서 주님께서 둘째 자리로 물러나시도록 해서는 안된다.
우리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의 부분을 감당할 수 있다는 감격을 맛볼 수 있어야만 한다. 나 같은 죄인이요 부족한 삶이 하나님의 일의 부분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맛보며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의 영광 나라의 건설을 감당해 가는 시간의 도구요 물질의 도구요 구원의 도구요 은혜의 도구라는 감격을 누리면서 주님을 섬길 수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바울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10) 이것은 만족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고백처럼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주님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심령에서부터 만족이 넘치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즙이 넘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법을 잊어서는 안된다.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가? 마음 중심에서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즐거워함으로 지키고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목숨을 걸 수 있을 때 우리의 경영하는 모든 일들의 생명이 길고 평화를 갖게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누리고 사람들 앞에서도 귀중히 여김을 입는다는 귀중한 약속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확인해 주신다.
마음을 다함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의뢰하고 사사로운 꽤를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절대로 하나님을 앞서서는 안된다.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 인생을 영원으로 지도해 가실 것이다.
이런 자세로 일한 것들은 결코 헛되이 없어지지 않을 것을 사도 바울은 증거 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에서 출발했다면 육신으로 끝나서는 결코 안된다. 바울은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고 경계한다.
우리 각자의 잔꽤를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안다면 세상의 악에서 떠나야만 한다. 우리의 시간과 건강과 물질의 가장 귀한 것으로 주님을 섬기는데 우선해야 한다. 그럴 대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양약처럼 나에게 역할 하여 인생중심이 견고하게 되고 영육의 넘치는 감사로 만족케 되고 기쁨의 원인들이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약속을 오늘 말씀 듣는 모두가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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