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믿음의 사람들 조차도 ‘성전’ 하면 떠올리는 것은 경건한 분위기가 나는 예배당을 생각하게 되고 거기서만 경건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곧잘 ‘교회당’이나 ‘예배당’이라는 표현 보다는 쉽게 ‘성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물론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거룩한 예식인 예배를 드리는 일을 중심으로 하는 집이라는 입장에서 성전(聖殿)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성전은 분명히 사람의 기술로 지은 교회당 이상의 성전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구약의 솔로몬 성전을 비롯해서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과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을 때도 헤롯 성전이 사람들에게 위용(威容)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는 말씀으로 성전 된 자신의 육체를 말씀하셨고 주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전까지는 제자들조차도 이것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을 사도 요한은 증거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2:21~22)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대단히 감격스러운 말씀이다. 죄 투성이요 허물 투성이의 인간이었던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가 이 세상에서 거처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개개인은 우리의 몸집에 자신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와 함께 살고 있다.” 공포하신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선언에 대한 바른 이해에 따라서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달리할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이 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영향을 세상에 끼치지 못하는 이유도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바로 의식하지 못하는 데서 올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 이 귀중한 교훈을 생각하면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다는 임재 의식과 함께 성별 된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환경이나 처지에 관계없이 성령과 더불어 천국을 사는 …
Ⅰ.왜 성전인가?(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 말은 다른 말로 ‘어떻게 성전이 되었나?’ 라는 말과 같다. 우리가 성전이 무엇인가를 정의 하는 것 부터가 중요하다. [거룩한 집] 이것으로는 완벽하지 못하다. [성전 헬, 나오스(naos), 나이오(naio, 거주하다)에서 온 말]은 바로 [하나님께서 임재 해 계시는 집]이다. 만약에 구약의 성전이나 장막이 완벽한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무너지도록 두지 않으셨을 것이다.
오히려 구약의 그 영광스러웠던 솔로몬 성전도 헤롯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수 십년 동안 지은 성전도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에 불과한 성전이었다. 출애굽 이후부터 광야의 40년간 세웠다, 뜯었다 하던 성막이나 이스라엘의 솔로몬 성전도 일차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처소였었다. 여기에 성전의 역할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보이는 모습에 매료되고 감동되었을 뿐 진정한 성전의 역할은 깊이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것은 심지어 헤롯 성전에 넋을 잃고 칭찬하던 제자들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막13:1; 마24:1; 눅21:5) 그러나 이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들에서 행해지는 제사로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성전의 실체이셨고 그 성전에서 드려졌던 수많은 제물들의 완성으로서의 제물이셨다. 이런 이유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성전이라고 직접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벽한 무너질 수 없는 성전이요 다시 드릴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제물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들어가는 사람은 완벽하게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실 때는 물론 그리스도의 한번으로 드려진 완전한 제사에 죄 씼음을 받고 거룩한 하늘의 존재가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나는 누구도 결코 스스로의 힘과 방법으로는 절대로 성결 하게 하나님의 거하실 수 있는 거룩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율법이 모든 죄 아래 나는 인류에게 선포하는 선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불경하고 추한 것들과는 함께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신 선언은 불경을 해결한 중생한 하늘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이고, 특히 계속되는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죄와 더불어 거하실 수 없으신 성령이시기 때문에 죄씼음을 받은 사람들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복음의 초청에 완전한 순종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세례를 거침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비로소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하늘의 신령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회개가 선행되어지지 않고 믿음도 없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물속에 골백번을 들어갔다가 나와도 거듭남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죄인이 정결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이 땅에 완전한 복음의 성취로 이루어질 구원과 사죄의 초청을 오순절 날 베드로를 통하여 하셨다.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이 말씀을 성경 어디에 보다도 분명한 사죄와 성령 받음의 분명한 약속이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6~27) 이 말씀은 마가복음의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과 꼭 같은 말씀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죄인이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이 방법을 통하여 비로소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15:3~4f)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15:5)라 하신 은혜의 약속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의 비유는 바로 이 성전비유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 말씀이다.
이런 사람에 대해 바울 사도는 같은 고린도전서6:19~20에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더욱 분명히 확인해 주고 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함으로 거듭 난 사람들은 그의 몸이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다. 왜 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지불하고 산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도 이 사실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할렐루야!
거룩한 성전이 된 것은 엄청난 대가가 치루어졌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의 피의 제사를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보존하고 이제 이 성전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Ⅱ.성전은 어떠해야 하는가?
수시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부부간에도 옆에 함께 살고있는 아내나 남편을 의식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대단히 기분 나빠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부부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철없는 어린이일지라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때로는 울음을 터뜨려서라도 자신이 옆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인식시키려고 한다.
하나님은 죽어있는 동상이나 우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죽어있는 것들에는 함께 하실 수가 없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죽어 있는 건물에 가두어 둘 수 없는 분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교회당이라는 공간 속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
주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선포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한 곳에 가두려고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갇혀계실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믿습니까?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당이라는 공간에 가두어 두고 오로지 일주일에 두세 번만 만나려 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러한 모습으로 계실 분이 아니시다. 앞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에 죽어 있는 것들 속에 계실 수 없으시고 죽은 것의 소리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오직 그의 아들의 피가 흐르는 살아있는 성전인 그의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신다. 믿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죄의 사람, 더러운 사람들과는 함께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시다. 바울은 다시 고린도후서6:16에서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 증거 하신다.
거듭난 사람들을 우리는 성도라고 하고 그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한다. 이 교회는 세상에서 따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다.(ekklesia)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님은 당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7~18)
진정한 그리스도인 이라면 하나님께서 몸서리치게 싫어하시는 죄를 밥 먹듯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기뻐하고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제사를 히브리서 기자는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니라”(히13:15~16)
구약의 성막에도, 성전에도 항상 제사가 끊지 지 않았고 어둠이 없도록 거룩한 향유로 불을 피워 꺼지지 않게 하였다.(레6:12~13) 복음의 시대의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들도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는,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성전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제사를 바울도 증거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복음 시대의 제사장들은 더 이상 짐승의 목을 끊어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 수시로 자신의 구별된 삶을 통해서 자신이 가진 성전 속에서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는 약속을 통하여 가정에서건 학교에서건 직장에서건 이제 보이는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매일 매순간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Ⅲ.성전으로 살지 못할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어떤 것이라도 가볍게 여기고 더럽히는 자는 용서 받지 못할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더욱 치명적인 저주가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이 보이는 교회당을 더럽히는 것 이상을 교훈 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교회 관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에베소서가 아닌, 유독 은사가 풍성하면서도 문제가 많은, 사회적인 환경이 경건치 못한 가운데 있었던 고린도 교회를 통하여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을 강조하시는 것에도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더럽히면=멸하시리라, 헬, 프데이로(phtheiro), ‘파괴하다, 멸망시키다’에서 유래 썩히다, 부패(타락) 시키다, 망쳐놓다] 라는 등등의 의미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하나님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 단어가 같은 낱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의 파멸은 하나님께서 결코 원하시는 것이 아니지만 결국 사람이 그렇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런 영향은 결국 범죄 한 세상으로부터 받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15:33) 경계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
성령과 함께 살고 행하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가진 경건한 사람이라면 영원을 향해 가는데 있어서 함께 행할 대상을 성령과 더불어 바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 모든 믿음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 역사 속에 한 사람이라도 저주로 가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과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면 먼저 하나님의 성령의 전으로 구별된 삶을 사는 하나님의 경건한 백성들을 통해서 복음에 이끌림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서 오늘 우리의 성령과의 임마누엘은 대단히 중요하다.
에녹은 당시의 세상이 경건해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아니었다.(창5:21~24) 일세기의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이 믿음생활 하기에 편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죽고 산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는 경계를 주고 있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인이 경건해야 하는가 하면 주님께서 선언하시기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항상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죄송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는 성전이라고 할 수 없고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하고 듣고 있는 우리 각자가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을 혹시라도 한 건물 속에서만 만나기를 바라고 자신의 삶을 항상 봐 주시기를 원치 않는 나 자신은 아닌지 …!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향하여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님이 너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라고 묻고 계신다. 바울은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성령에 대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고 확인해 주고 있다.
말세에 대한 경계로 주신 데살로니가전서5:19에서 “성령을 [소멸치 헬, 스벤니뮈(sbennymi), ‘불을 끄다’에서 억누르다, 저지하다, 방해하다, 훼방 놓다] 말며”라고 부탁한다. 대신에 갈라디아서5:16 “…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는 적극적인 당부를 주고 있다.
왜 성전인가?(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의 성전은 어떠해야 하는가?
성전으로 살지 못할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3~5, 7~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