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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8:11~20 2006-05-21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주님께서 빈 무덤을 남기고 부활하신 해골의 동산 골고다를 여인들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기쁨으로 떠나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러나 이 여인들과 함께 이 무덤을 떠나고 있는 몇 명의 군인들은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같은 장소를 떠나고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믿음의 사람들과 불신의 사람들의 차이를 보게 된다.

이들은 그 무덤을 지키도록 지시한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되어진 일을 보고하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이 자신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이일을 무마하기 위하여 돈을 많이 주면서 두려워 떠는 이 군인들에게 보고와는 전혀 다른 말을 퍼뜨리게 하고 이 꾸며진 말이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는 시기에도 두루 퍼져 있었다는 내용이 첫 부분이다.

이것은 어쩌면 요즈음 우리에게 진리를 왜곡하여 꾸며진 또 하나의 이야기인 [다빈치 코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내용이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부분은 앞부분과 전혀 다른 반전을 보게 되는데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온 인류의 희생물로 드리신 주님은 그 저주의 죽음을 박차고 일어 나셔서 아버지께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이 이 드려진 희생의 제사와 부활의 역사를 그것이 필요한 온 인류에게 증거 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과 함께 이 은혜를 땅끝까지 또 이 역사의 마지막까지 증거 하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주심을 나누게 되는데 이 약속은 당시의 사도들 뿐만 아리라 오늘 우리에게 또 오는 세대에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할 사람들에게 동일한 약속임을 확신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 복음을 증거 하는 사람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다. 믿습니까? 이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누리도록 주님의 이 위대한 명령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Ⅰ.거짓으로 진리를 대항하려는 어리석음을 본다.(11~15)

“여자들이 갈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부활의 역사 이면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은, 거짓으로 사실을 이기려는 무모함이다. 이것은 이미 승패가 가려져 있는 싸움임에도 진리에 서지 못하는 사람들, 죄의 하수인들은 어리석게도 이런 시도들을 한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런 어리석은 시도를 하게 될 까?



1.진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성령을 힘입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신 후인 27장 말미에서 의심 많은 종교 지도자들의 일련의 행동을 본바 있다.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마27:62~66)했는데 오늘 읽은 본문 앞부분을 보면 또 하나의 사기극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어찌 종교 지도자들이 이럴 수 있는가? 생각 되면서도 영성이 어두워진 허울뿐인 종교가 이럴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경성치 못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오늘 우리도 동일한 모습이 될 수 있다는 두려운 경계를 갖게 된다.

진리에 섰을 때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한다. 성령은 절대로 거짓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대문이다. 그러므로 거짓을 행하면서도 능력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마귀의 역사일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 최근에 성경 통신 교육원에서 성령론 특강의 한 Royce Sartain 의 강의 안을 지난 주에 Paul이 가져와서 잠시 봤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의식치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보게 되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4~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신 주님의 당부는 “You cannot do my work without my Spirit” “나의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나의 일을 할 수 없다.” 라는 단호한 말씀이셨고 이 말씀을 “나의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한 종교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야비하고 수치스러운 일들 뿐이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사울이 했던 일은 국가의 일을 제쳐두고 자신의 정적으로 보이는 다윗을 찾아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과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 이 일세기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다름이 없는 모습이다.



2.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 자리는 반드시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 (12, 15)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거짓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잘 통하는 수단이 [돈]이다. 신앙의 올바른 지도자들이었다면 이런 일이 애당초 있지도 않았겠고 돈을 이렇게 많이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솔로몬은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잠17:8)는 일반 사회적인 표현을 지적했다.

신앙의 사람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움직이고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그 절대적 원리가 깨어져 버리고 진리의 공백상태가 되고 성령의 역사가 없게 되면 당연히 그 역할을 세상적인 능력이 대신한다. 그것은 돈과 거짓이다.

돈은 어느 시대나 큰 죄나 구린 곳을 막는 수단이 되어 왔다. 그리고 그럴 때는 언제나 푼돈이 아닌 뭉칫돈이 오가기 마련이다. 서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액수의 돈들이 오늘도 보면 어두운 가운데 오가는 것이 흔할수록 그 사회는 문제가 있는 사회임에 분명하다.

이들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단순한 사람의 관계 속에서의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감추려 했다는데 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려는 시도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위대한 선지자를 기도로 낳은 한나는 성령에 감동되어 고백하기를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삼상2:10f) 결국 진리의 대항자는, 생명의 대항자는 자신이 산산이 깨어지고 말 것이라는 고백이다.



3.진리를 가르친다는 종교 지도자들이 지어낸 말을 입에 넣어주고 있다.(13~14)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이들은 거짓말을 해도 지나칠 정도의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다. 주님께서 잡히시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그러한 주님의 곁에 가까이 가지도 못했던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제자들, 계집종의 말에도 부정하던 그 허약한 제자들이, 군사들이 중무장을 하고 지키고 있는, 가이사의 권세로 인봉한 무덤을 열고 주님의 시신을 도적질하여 갔다는 전혀 불가능한 말을 하게 한다.

또 죄수를 놓지 면 자신이 대신 죽임을 당해야 하는 로마의 법을 잘 알고 있던 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자신들이 군인들에게 시킨 거짓말에 군인들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에 만약에 이 만든 말이 총독에게 들렸을 때는 무마시켜 주겠다는 위로의 말까지도 잊지 않는다.

여하튼 이러한 입장에서도 많은 돈을 받고 이들의 말을 그대로 실행하는 군인들은 어느 시대에나 돈이면 움직이는 대표적인 사람들의 본보기다.

결국 왜 그때 당대의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들은 이렇게 초라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맛보지도 못했고 갖고 있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 이류가 가야 할 길이며 진리시고 생명이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이러한 초라한 모습을 가지는 사람들은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가 아닌 지어낸 말로 사람들을 현혹 시키는 사람들일 것이다.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고 주님을 깊이 알아 이런 어리석은 거짓을 지어내는 헛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많은 돈이 있다면 오직 진리를 전하는 도구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용하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Ⅱ.절대로 놓질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약속.(16~20)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전하는 부활 후 몇 번씩이나 그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던 주님의 일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반면에 다른 세 복음서가 다루지 못한 귀중한 은혜의 약속을 오늘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물로 비록 짧기는 하지만 오늘 본문의 함축적인 내용과 같은 기록을 마가가 함께 기록해 주고 있다.

여인들은 천사의 당부를 받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승리의 사실을 알렸고, 비록 육체로는 다르지만 주님께서 만남을 약속하신 산에 이르러 만고의 영원한 생명의 증언자들로 세움을 입고 성령의 오심으로 이 약속을 역사 속에 이루어 가게 된다. 역사 속에 가장 위대한 명령을 감당하는 교회와 주님의 일꾼들이 되라고 하시는 주님의 도전과 약속이다.

이부분 역시 너무나 많이 다루는 말씀인 만큼 좀 다른 부분에서 다루었으면 한다.



1.이 은혜의 역사를 믿지 못하는 가장 가까이 따르던 제자들을 본다.(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부정적인 부분을 먼저 다루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이 사실도 사복음서가 모두 다루고 있는 내용으로 아직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 자체를 의심하는 자들이 많았고 여기에 대해서 주님께서 그들이 믿음으로 행할 때 나타날 놀라운 약속을 함께 주고 계시다.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눅24:11)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20:9)

이 내용에 대해서는 역시 마가가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1~14)

[15~16 오늘 본문의 요약 같은 말씀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사실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신 후 모든 사도들에게 이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짐을 본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분의 말씀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약속이라고 함에도 성경을 그렇게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 마가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라는 약속이 일반적이라면, 이런 표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이 불신하는 사도들에게 주신 약속이 첫째이고 사도들 이후에도 이런 은사를 받은 자들에게 나타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비록 이런 표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며 구원 받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표적을 사모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낙심하거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진리와 약속은 이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인 말씀에 있음을 확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



2.이것은 우주의 권세로 주시는 명령이다.(18~19f)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 이것은 온 역사와 공간 속에서 가장 귀한, 표현할 수 없는 귀한 명령이다. 왜냐하면 영원히 죽을 사람들을 죄와 저주에서 건져 영원한 영광에 살게 하는 엄청난 명령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 이보다 귀한 명령은 없고 아름다운 언약은 없다.



3.모든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19m) 가지 않으면 이 약속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이다. “너희는 가서” 그러나 가는 것은 지난 주에 Paul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족속은 아직도 불신하는 나의 가족일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함께 일하는 동료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타국으로 먼 여행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물론 그런 사명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가야 하는 것이 첫째이다.

제자를 삼는 것은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b~32) 라 하셨다. 다른 어떤 신기하고 어렵고 특별한 것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거하게 하는 것이 제자 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제자 되지 못하는 단서들을 주님께서는 몇 군데서 말씀하셨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 26~27, 33)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4.세례가 먼저이다.(19b~20) 거듭나게 하는 것이 먼저 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①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죄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하나가 되어 의로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 이다. 그러나 이 순서가 오늘날 인간의 염려로 바꿔졌다. 사도행전 속에서는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즉시 세례를 베풀었다.

그것이 밤중이든 어느 장소이건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가 지나면서 이 말씀이 지켜지지 못하고 인간의 우려로 1년이 지나야 세례를 주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저 죄를 씻는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주님의 분명한 명령이고, 적어도 사도의 시대 처음 몇 세기는 그렇게 말씀이 준수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다면 먼저 말씀에 충실할 때 인간의 염려는 가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②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지막 명령도 분명하다. 안디옥의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베드로 사도가 지적하는 것처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15:10) 했는데 적어도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의 교훈 외에는 억압하고 구속하는 인위적인 법을 신앙의 사람들에게 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질 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은 그러한 말씀의 순종자들에게 지켜질 것이다. 믿습니까?



마태는 당시의 세무서원으로 육신적인 삶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육신이 만족하는 삶을 정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온 인류에게 위대한 복음의 증언자가 되었다. 주님께 잡힌바 된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놀라운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한 십자가의 희생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부활하시고 이 가장 귀중한 사명을 사도들과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시고 하늘에 오르시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셔서 이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이 역사가 끝나는 순간과 영원까지 그의 사람들과 함께 하실 성령의 역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성을 이용해서 왜곡한다고 해도 이 역사 속에서 가릴 수 없는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진리이다. 대제사장이나 세계의 모든 군인들이 합세하여 왜곡한다고 해도 마치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가리려는 시도와 같은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지상최대의 명령이라고 하는 이 주님의 당부는 역시 인간의 입장에 상관없이 명령하신 그대로 순종할 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죄의 종으로 어두움의 사람들을 먼저 주님의 약속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천국백성을 삼고 그러한 거듭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 말씀에 거하게 해야 한다. 이 약속이 지켜질 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엄청난 주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이 생명의 약속에 부끄러움이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