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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6:17~30 2006-03-05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지난 주 우리는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주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기 위하여 이름없는 한 여인의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은 아름다운 헌신을 논한 바 있다.

오늘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유월절 양으로서 온 인류에게 임할 진노를 지나가게 하기 위한 유월절 양으로서 이스라엘의 유월절 절기에 죽으시고 이스라엘 자자손손에게 출애굽의 감격스런 역사를 기억하게 하시기 위하여 유월절을 명령하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님의 희생을 기념할 것을 당부하시는 새언약의 준수를 듣게 된다.

본문의 내용이 주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을 지킬 장소를 말씀하시고 그 유월절을 지내시는 가운데 역시 메시야에 대한 예언에 의한 것이지만 자신의 제자에 의해서 팔리시리라는 비극적인 사실을 말씀하시고 다른 제자들에게는 숨기셨지만 그가 바로 가룟 유다임을 지적하신 사실과 함께 유월절의 무교병과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자신의 죽으심의 기념을 당부하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 우리는 유월절의 배경과 주님께서 유월절 양 이심과 한번으로 영원한 희생제물로서의 완성된 새언약 속에서의 제사인 예배 속에서의 주님의 만찬의 시행을 말씀 속에서 확인하고 가룟 유다의 배신에 관한 부분은 역시 뒤에서 구체적인 행동 속에서 상고하도록 하겠다.

주님의 만찬을 기록된 말씀과 명령을 따라 시행함으로 애굽의 마지막 재앙에서 구원을 얻은 것처럼, 이 세상의 마지막 주신 구원의 약속인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예배를 말씀대로 드려서 이 땅에서도 늘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이 세상에 마지막이 임할 때에도 은혜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복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복되신 이름으로 …



Ⅰ.유월절을 지키심과 가룟 유다의 반역 예고.(17~25)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주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적어도 세 번 정도의 유월절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요2:13~성전 청결 작업, 6:4~5천명을 五餠二魚로 먹이신 사건과 함께 자신이 생명의 떡이심을 가르치심, 11:55~ 주님의 마지막 생애 중에 나타난 본문의 배경과 같은 절기) 요13:1~ 의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지셨던 시간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과 같은 유월절임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

1.유월절 준비 명령.(17~19) 본문의 내용은 주님께서 베다니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 내의 어떤 아는 한 사람에게 유월절을 지낼 장소를 제공하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나타나지만,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공관복음 인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서는 기적적인 내용으로 이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막14:13~16; 눅22:10~1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제자들이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는 내용이다. 제자들이 순종하였기 때문에 체험한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2.가룟 유다의 반역예고.(20~25) 요즘 대단히 억지스러운 내용이지만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외면적으로는 정겨운 자리는 내면적으로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아픔의 자리였다.

주님께서 제자들 중 하나에 의해서 팔리리라는 주님의 말씀과 각각 슬픈 기색을 띄면서 “그 사람이 접니까?” 라며 묻는 제자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만 이러한 일이 그냥 단순한 배신 당함이 아니라 기록된 성경의 철저한 성취라고 하는 데서 안타까움과 슬픔은 더 컸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 모두는 이 주님과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는 제자들의 심정으로 비록 성경에 예언 되었다고 하더라도 비극적인 내용과 힘겨운 일들은 재발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심사를 다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인류를 구원하시려 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예언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희로애락(喜怒哀樂)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감당하겠다는 신앙적 자세가 필요하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18:11b) 이것은 주님만이 아니라 오늘 그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도 동일하게 가져야 할 신앙적 자세이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41:9) 라는 기록이 가룟 유다에 의해 성취될 줄은 제자들 중에 아무도 몰랐고 주님만이 아셨지만, 역시 유다를 생각해서 제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하시지 않는 것은 그 때까지도 유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이셨을 것이다. [가룟 유다는 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도록 정하셨을까?]

주님은 안타깝게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24)고 탄식하신다. 여기에는 주님의 걸어가시고 성취될 삶의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길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비극을 탄식하시는 내용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세상의 거역과 불신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므로 그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르는 것은 헛된 것이며 어리석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룟 유다처럼 비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할 수 없고 오히려 그 악한 자들 조차도 그 성품대로 구원의 역사에 사용하시는 섭리 속에서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기 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음이 더 났다는 안타까운 경계는 오늘 그리스도인이라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경계의 제목이 되어야 한다.

뻔뻔스러운 유다는 이미 은 삼십을 받고 넘겨줄 기회를 엿보고 있으면서도 모든 제자들처럼 입술로 흉내를 낸다. “선생님, 접니까?” 인간의 마음을 읽으시는 주님은 이미 그 가증스러움을 보시면서도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할 만큼 답변하신다. “너가 말한 대로다.”

이왕에 역사 속에 한번 탄생했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면 가룟 유다와 같은 비극을 이루고 거역하는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구원의 도구로서 역할하고 영광을 받는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



Ⅱ.피로 세우신 새언약으로서의 주님의 희생.(26~30)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 가니라”

이 말씀은 막14:22~24; 눅22:19~20; 꼭 같이 중요하게 다로고 있는 주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면서 육신의 삶에 있어서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이라는 데서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누가복음의 내용을 인용하면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고 가르치셨다.

여기서 특히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택하신 사람들과 언약을 새우셨다.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말씀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렘31:31~32)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히브시서 기자를 통하여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7:18~19)고 말씀하셨다.

사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에게 팔리기까지 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게 되는 이유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어김이 없이 다 이루시기 위해서 였음을 확신한다. 바울은 이 사실을 확인하기를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율법은 영원한 언약이 아니라 한시적인 특별법과 같다.] [롬5:20 율법이 가입한 것(Moreover the law entered-KJV; The law was added-NIV)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 [갈3: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It was added-KJV, NASB, NIV)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비롯한 율법 이전의 사람들도 믿음의 법을 받은 바 있었지만, 믿음의 법인 복음은 율법의 개정이 아니라 완전히 새언약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우신 언약은 구약의 모든 짐승의 피흘림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속했던 그림자의 완전한 실체이다. 이스라엘의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의 구원은 바로 유월절이었고 이 유월절 양으로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신 것이다.

바울은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5:7~8)고 당부한다.

유월절 양은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 보내라고 바로에게 보여주신 10가지의 이적 중에서도 마지막 재앙이라는 데도 의의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세상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마지막 이적으로 최후 통첩인 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으로 그 희생을 의지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마지막 방법이라는 데 의미를 갖는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하였고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진노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주신 유일한 마지막 방법이신 십자가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당당히 담대히 나아가는 …



Ⅲ.오늘도 우리 모두는 이 언약과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전11:23~26)

우리는 본문 말씀과 관련하여 바울 사도의 간곡한 당부를 듣는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바울은 오늘 본문의 만찬의 자리에 없었고 그 때만 해도, 나중 바울을 공격하는 사도행전24:5의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바울을 공격하는 유대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오히려 대적할 때였다. 그러나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복음 속에 들어와서 특히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강력한 당부를 하고 있다.

1.이것은 복음 속에서 제사 즉 예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이다.

우리는 구약 율법의 마당에서 수많은 형태의 짐승의 제사를 볼 수 있다. 그 짐승들은 한 사람의 죄를 지었을 때마다, 죄를 깨달을 때마다 피를 받아 바치고 태워서 하나님께 바쳐졌다. 그것이 번제가 되었든, 속죄제가 죄었건, 화목제가 되었던지 죄를 속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희생의 제물로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린 후부터는 더 이상 그러한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바로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는 약속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 땅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교회가 탄생하면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거나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라는 기록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오늘 본문에 주님께서 명령하신 당부의 말씀을 받들어 준행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 후 세계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이 주의 만찬의 기념을 안식 후 첫날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행20:7) [“안식 후 첫날”이란 빈도가 있는 표현으로 마치 매월 규정된 ‘월급날’이나, 매주 갖는 월요일 ‘정팅(인터넷 커뮤니티나 클럽등의 동호회에서 갖는 정식 채팅모임)’과 같이 구태여 ‘매달’이나 ‘매주’라는 표현이 아니라도 의례적인 것과 같다.]

이 ‘안식 후 첫 날’은 바로 주님께서 죽음을 박차고 승리하신 날이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서 40일간을 그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육체로 보이신 날이요, 이 땅에 성령이 임하신 오순절 날이요, 이 땅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 날이며, 최초로 완성된 복음의 초청의 메시지가 베드로를 통하여 증거 된 날이요, 요한 사도가 계시록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죄와 죽음과 절망을 정복한 이 첫날이 예배를 드리는 날로 자리 잡혔고 이 예배 속에서 바로 한번으로 영원한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로서의 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것은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인물들도 마찬 가지였다. 그러나 지금 개혁교회를 주창하는 교회들조차 이 종교개혁에서 중요시 했던 예배의 중심 과제인 주의 만찬을 말씀중심이라고 하여 잃어 버렸다.

구약의 제사가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고 태워 바치는 제사였다면 신약의 예배는 한번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함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제사를 드리는 자는 짐승을 제물로 태우면서 사실 자신을 태우는 감정으로 제사를 드렸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희생을 기념하면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며 제물로 고난 당하시는 주님을 매주 대하여 죄를 회개하고 희생을 대해야 한다. 신앙의 선배들은 주님의 만찬을 “보이는 말씀”이라고까지 한다.

2.이것은 선택의 항목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다. 우리는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는 직접적인 말씀이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11:24)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25)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26)는 바울을 통한 말씀이 선택의 항목이 아니라 모두 명령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복된 예식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항목이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 하는 계명임을 명심해야 한다.

3.그럼으로 이 명령을 행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우리가 유월절의 배경은 보면 [출애굽11장 유월절의 배경; 12장 유월절 명령과 시행; 1~20절 유월절 명령, 21~28절 시행, 특히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받은 이스라엘은 28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고 기록이 되고 있고, 이러한 말씀의 지킴에 이어 29~36 애굽의 장자들의 죽음, 37~42절 출애굽, 43~51절은 다시 유월절 기념의 명령과 규례의 계승의 당부이다.]

오늘날 예배회복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은 데 진정한 예배 회복은 이 주의 만찬부터 회복되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을 깊이 상고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구분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 하려면 이 주님의 명령이 시행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는 두려운 말씀을 주고 계신다.

4.말씀대로 기념해야 한다. 우리는 기념하라는 명령을 귀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기념에도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던 무교병과 포도즙으로 행해야 한다. 무교병 – 구별됨을 의미한다.

먹는 방법이 독특한 것도 역시 의미가 있다.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출12:7~9)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12:11)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양을 주님께서 명령하신 방법대로 먹었고, 애굽을 언제든지 명령이 떨어지면 떠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유월절 양을 먹었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면서 역시 천국의 이동을 준비하는 자세를 매주 새롭게 할 필요가 잇다.

우리가 매년 두 번씩 만 행하는 그 거룩한 예식을 주님의 명령대로 매주님의 날마다 꼭 같이 기념한다면 얼마나 복될까? 우리는 번거롭다든지 경건성이 떨어진다는 감정과 생각을 하기 이전에 주님의 명령이 먼저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

주님께서 “이것을 하고 싶으면 해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아도 되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기념하라!”고 분명한 명령을 주셨고 교회의 역사 속에서나 성경의 명령을 귀중하게 확신하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강조한 부분이다. 이 생명의 언약을 순종함으로 허락된 영광의 복이 다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