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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5:14~30 2006-02-12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여러분들은 지금 일하며 사십니까? 아니 육신의 밥벌이는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묻는 질문은 영적인 부분의 일을 하면서 사느냐는 물음이다. 일하며 수고하는 자들은 그 일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고 결과가 확실 할수록 더 신나게 일하게 된다.

또 천국은 일한 자들에게 반드시 그 수고에 합당한 상급을 약속하고 있다. 세상의 일이란 어떤 경우는 죽도록 수고해도 한숨과 절망과 함께 빚더미에 올라 앉아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수고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보상된다고 하는 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현재적으로는 대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천국을 위한 수고는 어떤 세상의 수고와도 비교될 수 없는 확실한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갖고 살게 되고 그러므로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에 그 오심의 때를 준비하는 자세가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므로 경성하고 깨어서 오심을 준비하는 자세를 경계한 비유적인 교훈이 지난 주의 말씀이었다면 그 기다림을 그냥 시간을 허비함으로 소모하지 않고 마지막 때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세를 당부하는 비유적 교훈이 바로 오늘 말씀의 내용이다. 천국의 사람들은 소모적이지 않고 분명히 생산적이다.



Ⅰ.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재능대로 맡기셨다.(14~18)

(1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주님께서 만 인류를 위한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이제 만왕의 왕으로 심판주로 이 역사에 다시 오실 최고의 시간을 위하여 준비되고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12에서는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라고 쓰고 있다.

처음 이 땅에 모든 인류의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 육신으로 오신 주님은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모든 죄인을 위해 온갖 수치와 고난을 친히 당하셨지만, 죄와 상관없이 다시 오시는 주님의 위엄은 이 역사 속에서는 아직 볼 수 없었던 영광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고, 이 영광의 때를 위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계신다. 그 주님은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각자에게 귀한 것들을 맡기셔서 그것으로 사업케 하신다.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달란트, 헬, 탈란톤(talanton), 어떠한 무게(돈의 액수보다 동전의 무게), (출25:39)“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15년 품삯(8만원)[4억3천8백만] X 5 = 21억9천만원X 2=43억8천만원]

1.각 사람이 가진 재능은 하나님의 것을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이런 입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달란트나 은사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맡겨 주셨다는 사실을 늘 의식할 필요가 있다.

“각각 그 재능(duvnami")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15) 하나님은 각 사람의 형편을 가장 잘 아신다. 이런 분이시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 주신 것은 사람을 차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감당할 분량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우리의 형편에 가장 적절하게 위탁하셨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

이런 입장에서 나 자신의 은사나 달란트에 교만할 필요도 없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2.충성은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하는 것이다.(16~17)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하나님으로부터 나중 칭찬을 들은 이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맡겨 주심에 즉각적으로 충성한 것이다. “바로 가서” 충성은 형편이 나아지면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즉각적이어야만 한다.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활용하지 못할 때 우리는 늘 이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사용하는 한 절대로 잃어지도록 하실 분이 아니심도 분명하다. 그러나 오히려 사용하지 않을 때 잃어지고 빼앗긴다는 것이 본 비유의 교훈이다.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그러므로 주님께 대한 충성을 미루는 것은 특히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변명하면서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불충성이 되는 것이다.

3.재능이나 은사는 보관하는 것으로 온전치 못하다.(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이 사람이 땅에다 감출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맡겨준 주인을 믿지 못해서 임을 뒤에서 읽을 수 있다. 주인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사업에서도 마찬 가지이지만 주인에 대한 깊은 신뢰 만이 충성의 근거가 됨을 여기서도 확인한다. 믿음의 깊이에 따라 충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재능대로 맡기셨다. 그러므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뿐이다.



Ⅱ.일한 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칭찬과 상급을 주신다.(19~23)

하나님은 결과보다도 과정을 귀중히 보시는 분이시다.

1.반드시 회계할 때가 있을 것이다.(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물론 여기서 ‘오랜 후’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의 때를 의미할 것이다.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께는 시간이 의미가 없지만 우리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다시 오심의 약속도 아직은 길기만 하다. 그러나 시간의 길이가 길건 짧건 모든 인생은 결국 인생을 결산할 때가 꼭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매순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도 역사적으로 결산의 때이지만 각 인생의 마지막은 역시 결산이 될 것이다. 분명히 결산의 때는 정해져 있고 그 때를 알지 못하는 우리 모든 인생들은 다만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혜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일할 시기도 결산의 시기도 모르지만 마지막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2.이 지상에서 최선을 다한 자들에게 천성의 더 큰 것들이 맡겨진다.(20~21)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22)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결국 맡은 양은 다르지만 일한 사람들은 다 의기양양하고 기쁨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주인의 맡긴 것으로 일하여 남겼다고 하는 것 자체가 큰 감격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감격인가! 또 숫자는 다르지만 칭찬도 다르지 않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결국 이 약속은 미래의 천상에서의 약속이 분명하다고 볼 때 이 땅 위에서 하늘의 영원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신비를 느끼게 된다.

3.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한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땅에서의 일은 아무래도 한계를 가진 작은 일들이다. 다섯 달란트와 갑절의 열 달란트라고 해도 결국 계산되어질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렇게 제한 속에서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숫자로 계산이 불가능한 무한 한 세계 속에서의 영광을 무한히 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이런 입장에서 우리가 담당해야 하는 지극히 작은 것은 미래에 헤아릴 수 없는 큰 것임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4.충성 된 자들만이 즐거움에 참여케 될 것이다. 이 제목에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다섯 달란트에 대한 충성이나 두 달란트를 맡아서 충성한 모두에게 같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 23)

이 가파르고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순종하며 충성하고 사는 자들에게 성령의 위로가 함께하시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하는 것은 외부적으로는 분명히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고 좁은 문이고 힘겨움일 것이다. 이런 세상의 제약을 이기고 충성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천국의 희락을 약속하시고 계신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 모두 하나님의 주실 칭찬과 영광을 기대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더라도 수고를 절대로 모른체 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영광에 참여 할 수고와 충성을 드리는 …



Ⅲ.게으른 자는 가지고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24~30)

충성 되게 일한 종들이 만면의 웃음을 머금고 회개하는 장면은 바뀌어서 굳고 어두운 표정의 한 달란트 맡았던 자의 결산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1.이 사람은 대단히 계산적이다.(24~25)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이 사람의 문제는 맡은 양의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먼저는 주인에 대한 자세가 문제이다. 하나님을 마치 고리대금업자 정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쉬운 번역본으로 보면 “…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님이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남이 심고 뿌려 놓은 것을 거둬들이는 지독한 분이라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워서 주인님의 돈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가져왔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돈이 여기 있습니다.’ 하였다.”(24~25-현대인)

이 말은 “만약 내가 애써서 이득을 남긴다고 해도 당신은 분명히 그 이익을 빼앗아 갈 몰인정한 분이고, 만약에 잃는다면 그 잃어버린 것을 물어내게 할 어려운 분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땅속에 묻어 두는 것 뿐이었다”는 표현이다.

하나님을 일을 하면서 얻고 잃을 것을 계산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주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2)고 말씀하신바 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구원 받은 감격으로 하는 것이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목숨을 내어주시기 까지 사랑하신 사랑에 감격하여 하는 것이 되어야지 앞뒤를 다 재보고 하는 것은 부모를 저울질하고있는 어린 아이와 다를 것이 없는 행위이다. 이것은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모든 입장에서도 그렇다. 연보를 드림에서도 그렇고 예배를 드림에서도 그렇다. 의무와 사랑은 분명히 다르다.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았기 때문에’ ‘은혜 때문에’ 섬기고 드리는 것이 옳다.

특히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한 마디로 ‘당신 것 받았으니 이제 끝났지요!’ 하는 투다.

첨가해서 여기 한 마디 덧붙일 말씀은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라는 말씀의 저의는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있다. 우리 몸은 흙이요, 이 흙 속에 자신의 개인에게 귀한 것을 감추어 두고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주인을 함부로 판단한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 주인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있다. “당신은 굳은[헬, 스글레로스(skleros) - 사나운, 거친, 난폭한, 불쾌한, 강퍅한, 어려운] 사람이라” 하나님의 고귀한 속성은 하나도 찬양하지 못하고 오로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사실 불신의 사람들이 모두 이 모양이다. 사랑보다는 진노를 더 크게 보고, 상주심 보다는 형벌을 더 크게 본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이렇게 알고 있다면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하찮은 인간에게 판단 받으실 분이 결코 아니시다. 피조물인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판단할 길 없지만 무엇 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4:16)는 사실이다.

특히 여기서 “두려워하여” 라는 표현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그러므로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마음이다. 때문에 요한 사도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고 하였고 미래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항목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고 증거 해 주고 있다.

결국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26f) 라고 이 종을 판단한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일하지 않은 것 맡겨진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는 것이 악하다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비록 이런 사람은 부정직하거나 범죄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사람은 단지 자기 자신의 ‘구원’만 생각하는 사람이지 자기 주인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단한 악을 행하는 것이 악이 아니라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행치 않는 것이 악이라는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27) 그는 그의 재능을 자기보다 더 활동적인 딴 사람이 사용하도록 맡겼어야 옳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같은 달란트를 맡겼다면 분명히 본전뿐만 아니라 이득을 낼 수 있었을 터인데 이 악한 종이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라고 책망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 우리는 내가 하지 않으면서 남의 일을 묶어두는 어리석음도 저지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3.받았던 것까지 빼앗긴다.(28~29)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세상의 경제원리, 자본주의 원리 같지만 영적인 원리도 다르지 않다. 믿음은 키우고 활용하면 자라지만, 계속 자신 속에 감추어 두고 나타내지 않으면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는 잃게 되는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하나님께서는 있는 자에게 더 주시고 믿음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있는 자들에게 더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4.영원한 후회를 하게 된다.(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종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결국 유익한 종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광을 기대했다가 영원한 후회를 할 수도 있음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 이 땅에서 시간이 있을 동안 후회로 끝내지 말고 맡은 달란트나 은사가 어떤 것이 되었던지 최선을 다하여 영원히 후회할 어리석은 인생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은사나 달란트가 어떤 것이든지,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다. 남들이 갖지 않은 나에게만 맡겨 주신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것은 다른 사람의 충성이 아닌 나의 충성으로 채워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자가 우리에게 달란트를 맡겨주신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 즉 믿음이 확고할 때 더욱 충성할 수 있으므로 믿음을 키우는 일이 충성에 대한 준비 자세가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반드시 충성한다면 일의 결과에 상관없이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하늘의 일을 한다는 감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에 대한 게으름을 책망하고 있다. 그것이 이 땅에 일이건 하늘의 일이건 늘 최선을 다 할 때 기쁨이 충만하고 후회가 없을 것이다. 충성하는 자는 변명이 없다. 한 달란트 맡았던 자가 최선을 다하다가 그 한 달란트를 잃어 버렸을지라도 주님은 분명 칭찬 하셨을 것이다.

우리 모두 변명을 준비치 말고 최선을 다하여 현실 속에서 충성을 다하자. 그렇지 못할 때 영광을 기대했다가 부끄러움과 함께 절망을 맛볼 수도 있음을 경계로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