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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4:15~28 2006-01-16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신앙의 사람들의 골인 지점은 이 역사의 마지막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이다. 경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최선을 다하지만 무엇보다도 골인 지점에 가까웠을 때 온 힘을 다하여 승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대로 최선을 다하는 경기와 함께 끝에 가서 반드시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리로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달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멸망과 더불어 예언되는 말세의 교훈들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마지막을 잘 감당하는 것이야 말로 또 다른 승리의 지혜가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신앙의 사람들에게 정확한 골인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징조를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귀중한 교훈을 놓지고 만다면 참으로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예루살렘 멸망은 이 역사의 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소망이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예루살렘 멸망은 이 역사의 종말의 상징이다. 여기에서 말씀 되어지는 교훈들은 육신에 국한된 살아 남는 비결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남는 비결이라는 데 주안점이 있다.

주님께서는 이 예언을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주셨으면서 진정한 역사의 새벽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 역시 경계로서 주고 계시고 당시의 이스라엘은 이 경계를 순종치 못하므로 멸망의 날이 이 예언대로 비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조심해야 할 약속이다. 그러므로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라는 주님의 당부를 여러분 모두의 경계로 삼아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들은 마지막에 한 사람도 가슴을 치며 탄식하는 일이 없이 은혜의 약속에 다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오늘 우리는 현재 일반적으로 전승되어지고 있는 것보다는 좀 달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의 중심 주제가 되는 “깨달으라!, 환난이 있으리라!, 믿지 말라!”는 두 가지의 명령과 한 가지의 예언적 교훈을 통해서 이 말씀을 다루었으면 한다.



Ⅰ.깨달으라!(15~18)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신앙의 사람들에게 깨달음은 언제(시간) 어디서(장소)나 중요한 과제다. 갈대아 우르의 아브라함에서부터 오늘 여기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나서 물으시기를 “…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마15:16)고 안타까워 하신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구약에서 말세에 대해 가장 깊이 예언한 선지자 다니엘의 예언을 인용하시면서 같은 당부를 주고 계시다.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했는데, 그러므로 이 인용된 말씀을 본래 주셨을 때의 의미로 살피고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곧 깨닫는 것이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다니엘서의 말씀은 적어도 세 곳의 말씀이다.(9:27, 11:31; 12:11) 그러나 이 세 곳의 말씀에서 공통적인 내용은 ‘미운 물건’과 함께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11:31, 12:11) 라는 내용이다. 9:27에서는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라고 약간 표현이 다르지만 모두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역시 ‘제사를 폐하’는 것이다.[단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단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단12: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먼저는 [미운 물건, 히, 쉬쿠-쯔(shikuts), 더러운, 우상숭배, 우상, 가증스러운 오물, 몹시 싫은(것); “멸망의 가증한 것” 원문, bdelygma tes eremoseos(브델뤼그마 테스 에레모세오스) = 브델뤼그마(bdelygma), 혐오, 우상숭배, eremosis, 약탈, 황폐] 히브리어나 헬라어가 다 공통적으로 ‘우상숭배’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구체적인 율법서인 신명기서와 대선지의 중심 예언서인 이사야서에 꼭 같이 나타나는 것을 읽어볼 수 있다.[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쉬쿠-쯔(shikuts)]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신29:17);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쉬쿠-쯔(shikuts)]을 기뻐한즉”(사66:3)]

[쉬쿠-쯔(shikuts)]과 발음이 비슷한 탄식도 역시 우상숭배에 대한 책망이다. “너희가 너희 왕 식굿(sikut)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암5:26)

그럼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고 생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 가셨을 때 이미 이러한 사실을 책망하신 사실을 이미 앞에서 상고한바 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2~13)

예루살렘 멸망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물질의 우상을 섬기는 가증한 일을 보시고 그들에게 있어서 이미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의 배를 섬기는 우상의 전각이 된 것을 보시면서 멸망을 예언하신 것이다. 이 사실은 바울이 경계한 말씀과 일반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최고의 성전을 지어드리고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연애하게 되자 그 여인들의 섬기는 우상의 전각을 예루살렘에 세움으로써 그러한 가증한 행위로 인하여 나라가 쪼개지고 국민의 십분의 팔이 우상 숭배자들이 되어 버리는 것을 본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16~18) 역시 마지막의 순간에도 물질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생명을 보존하라는 경계의 교훈이다.

마치 누가복음17:32의 경계인 “롯의 처를 생각하라!”신 말씀과 같은 당부의 말씀이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거룩한 처소에 우상숭배가 자행될 때 “아 주님께서 곧 오시겠구나!” 라고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섬겨야 할 교회가 맘몬 신인 돈과 땅에서의 영광을 구하고 있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섰다면 거룩한 시온,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도피할 때임을 감지 하라는 경고이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는 나 자신의 마음 속에 세상의 쾌락과 영광이 섬겨지고 있다면 역시 그 마음밭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면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제사를 폐해지게 되는 것이고 최소한의 자기 위안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형식적인 예배만 있을 것이므로 예루살렘이 멸망했고 동일한 경계 속에서 이 역사의 마지막이 오고 있다.

교회가 교회의 모습 즉,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을 잃고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을 잃게 될 때 마침내 주님은 다시 오시게 될 것이므로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15:34)고 바울은 경고하고 있다. 이 경계에 부끄러움이 없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Ⅱ.환난이 있으리라!(19~22)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사실 예루살렘의 멸망의 때에는 육신적인 환란으로 로마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당시 유대인들의 유월절 행사로 예루살렘에 운집해 있던110만 명이 학살을 당하고 10만 명이 포로가 되는 이스라엘 역사상으로도 엄청난 고난의 때였다고 한다.

출산율이 상당히 높았던 당시에 젖먹이들이 딸린 어머니들은 당연히 이 위기를 만났을 때 애기들을 버려둘 수 없어서 실재로 초토가 된 예루살렘에 무너진 집들에는 죽은 부인들과 아이들이 많았고 계속되는 기근과 배고픔으로 나중에는 아이들의 떡까지도 어미들이 빼앗아 먹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연출되었다고 전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예시적인 사건이다. 이 역사의 종말에는 참으로 거짓 교훈으로 종교적 자녀들을 많이 대린 자들이 주님으로부터 더 큰 형벌을 각오 해야만 할 것이다. 야고보는 경계하여 당부하기를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고 했다.

하나님의 진리는 가르칠수록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겠지만 잘못된 교훈은 순전치 못한 젖이며 그것은 마침내 양육이라는 본래의 의무보다는 죽이는 독소를 먹이고 자기가 먹인 자들을 잡아먹는 마치 동화 속의 헨델과 그레텔 같은 악행이, 진리 아닌 인간의 생각이나 교훈으로 가르치고 그들로부터 생명을 부지하는 사악한 거짓 교사들의 모습이고 주님 오실 때에 누구보다도 무서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1)는 말씀으로 봐서 예루살렘 멸망을 두고 하는 말씀은 역시 아닌 이유는 창세 이후의 최고의 환난은 역시 노아의 홍수 사건이었을 것이므로 그보다 더 무서운 환난은 아무래도 이 인류의 마지막 순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이 환난이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는 기쁨의 순간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환난은 저주가 아니라 복이 될 것이다.

꼭 같은 환난이 이 사람에게는 저주의 날이 되고 저 사람에게는 복의 순간이 된다고 하는 사실 역시 이 역사의 마지막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너무나 분명한 간격이지만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구분되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한 노아의 무서운 홍수 형벌이후 이 지구촌 역사위에 살면서 죄의 저주에서 우리를 자신의 피로 사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종의 형상을 입으시고 초라하게 오셔서 33년을 사시고 마침내 영원한 저주의 원인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역사 속에 누구도 겪지 않은 수치와 형벌과 저주를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감당하셨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죄 때문임을 믿고 회개하고 순종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의 부활에 동참하여, 하늘에 오르셔서 자신을 바라는 자들로 끝까지 주님의 말씀에 목숨을 거는 그들을 위하여 오시는 날에도 역시 그들의 완전한 구원을 위하여 환난을 감하시는 사랑의 주님은 환난을 예고하셨음에도 형벌을 감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가 엄청난 희생을 내고 만 예루살렘의 형벌을 교훈 삼기를 바라신다.

죄가 관영하고 진리를 거역하는 이 역사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자체가 좁은 문이요 환난이겠지만, 주님을 섬기는 이유 때문이라면 기꺼이 이 역사 속에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환난을 미리 맛보면서 무사 안일을 버리고 천성을 향해 곧은 걸음을 걷는 그들에게 마지막 때의 환난은 찬양의 이유가 될 것이고 감사의 이유가 될 것이다.

이렇게 천로역정의 길을 간 사람들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계6:10) 라고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 아래서 부르짖고 있음을 계시록에서 본다.

도 다른 입장에서 마지막을 예언하고 있는 바울은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살후1:6~7) 라고 예언하고 있다. 평안한 때에도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좁을 길을 걸으며 영적으로 이 역사의 어두움을 하얗게 밝히는 파수꾼으로 살아서 주님 오시는 날이 감사와 영광의 날로 맞는 자와 여러분 …



Ⅲ.믿지 말라!(23~28)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것이니라”

오늘 세 번째의 주제는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부정적으로 들리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믿음의 대상은 항상 영원 불변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뿐임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믿음의 대상은 ‘그럴싸한 것, 아무것이나’가 아니다. 허황되고 거짓된 교훈은 믿을수록 절망하게 되고 멸망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주님은 ‘아무것이나 믿어라!’거나 ‘듣기 좋은 것을 믿어라!’는 말씀은 절대로 하신 바가 없다. 특히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웠을 때 더욱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고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서 이적과 표적을 행하면서 까지 또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리라는 무서운 경계를 주고 계신다.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는 절대로 땅에 나타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거나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경계를 주시는 것이다.

인류의 대속제물로 오신 초림하실 때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 수 있도록 베들레헴 짐승의 우릿간에 오셨고, 역사 속에 몇몇 사람들이 산에서 혹은 기도한다는 골방에서 재림 예수임을 자처했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은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공중으로부터 우리 대한민국과 이 지구의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까지 동시적으로 오실 것이다.

지상에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다음시간에 상고하게 되겠지만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1:11)고 천사가 증거 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이라고 요한도 예언 했다. 믿습니까?

여러분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는 TV를 봐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지만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아무리 듣기에 행복한 얘기를 들어도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면 그냥 기분만 좋고 만다. 그러나 성경 속의 교훈들은 언제나 이 죄악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쓰게 들리는 것이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다.

아무리 귀중하고 행복한 약속도 나 자신이 그 약속을 받을 대상으로 살지 못하면 그 약속은 헛것이다.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증거하지 않는 것이 거짓 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들이다. 우리는 말세에 범람하게 될 거짓 그리스도의 교훈에 귀를 막고 거절할 수 있어야만 영광의 약속에 들어가는 자들이 될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더라도 가려 들을 수 있고 가려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다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기적과 표적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말씀만이 믿음의 대상이요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곳에서 대신 다른 우상이 섬겨지고, 참된 진리가 감춰지고 거짓이 범람할 때 주님께서 오실 마지막 때임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 때에 많은 환난이 있겠지만 늘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좁은 길을 걸으며 진리를 순종하는 택하신 자들에게는 그 환난은 감해지고 환난은 고난에서 영광으로 들어가는 복의 출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빙자해서 거짓 것을 들고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처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중으로 재림하실 것이고 거짓 그리스도는 땅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구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과 경계를 마무리하면서 다니엘의 같은 경계를 인용하고자 한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